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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한나 Sep 26. 2023

너의 의미

김승학, 내 이름에 대한 이야기

너의 의미
김승학, 내 이름에대한 이야기

금보다 더 어릴 적, 내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다. 서준, 사랑, 채리, 민우… 이런 친구 이름들은 나의 것과는 다르다고 느껴졌고, 뭐가 부러운지도 모르면서 부러웠다. 인터넷에 내 이름을 치면 멋진 연예인 한 명 나오지 않는 것도 억울했고, 잘못 발음하면 승악으로 들리기에 ‘학’에 힘을 줘야만 하는 것도 싫었다. 나는 왜 김승학이냐고 부모님께 따져 물은 적도 있다.


그러다 중학교 2학년 한문 수업, 자기 이름의 한자와 그 의미를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살면서 의미에 대해 크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다. 유명한 스님께 어렵게 받아왔다는 이야기를 부모님께 들었지만, 어릴 적 읽은 전래동화처럼 재밌는 전설정도로 넘겼지, 그 속뜻에 대해 고민해 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내 차례가 다가왔다. ‘오를 승’에 ‘두루미 학’ 이름 석자를 표의문자로 칠판에 적었다.


“날아오르는 학이라는 뜻입니다.”


끝인 줄 알고 친구들이 형식적인 박수를 보내려던 찰나, 입안 가득 태동이 느껴졌다.


“학은 저처럼 다리가 길고, 참새나 다른 새들보다 몸집이 큽니다.”


태어나고자 하는 강력한 의지가 입술을 벌려 꿈틀꿈틀 기어나왔다.


“날개짓을 하기도 힘들 것입니다.”


선생님도, 친구들도 나의 다음 문장들을 조용히 기다렸다.


“하지만, 그 무거운 날개를 펼쳐 힘차게 날아오른다면 가장 우아하고, 멋진 모습일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저 또한 언젠가 힘차게, 멋지게 날아오르겠습니다.”


잠깐의 정적 끝에 박수가 쏟아졌다. 어쩌면 그 순간이 내가 나를 처음 사랑하게 된 때였던 것 같다.



원래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 불교적인 메시지라든가 뭐 그런... 하지만 녀석에게 나만의 의미를 부여하였을 때, 비로소 사랑하게 되었다. 수많은 이름과 수많은 당신들, 내가 나의 이름을 사랑하게 된 것처럼,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의미를 가질 때, 새로 태어난다. 그렇게 비로소 사랑하게 된다.


그건 내게서 당신들께로 이어지는 길목에도 필요하지만,

나에서 나에게로 향하는 길목에도 필요하다.


그때부터 비로소 힘찬 걸음으로, 나의 길을 나아갈 수 있게되었다.


당신은 어떤 의미를 창조해낼 것인가.

그 의미가 비추는 길은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김수영 시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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