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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Apr 07. 2024

밤산책, 벚꽃눈

찰나의 아름다움

어김없이 올봄에도 벚꽃이 피었다. 매년 벚꽃이 필 때 즈음 따뜻한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을 실감한다. 겨우내 앙상한 빈 가지로 우뚝 솟아있던 나무에서 하나둘 꽃망울을 맺고 숨겨왔던 우아함을 드러낸다. 올해 벚꽃은 평년의 개화시기보다 유난히 늦었다. 사람들이 애타게 자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까. 필 듯 말 듯 그렇게 약 올리며 평소보다 늦게 찾아왔으면서, 활짝 만개한 벚꽃은 바람이 불면 후두둑 꽃잎을 떨궈낸다. 꽃을 보고 있으면서도 이 아름다움이 금방 져버릴까 애태우는 나를 아는 것처럼.






어릴 때 나는 꽃과 식물을 좋아하지 않았다. 노란색, 분홍색 빛을 가진 꽃들은 그때도 예뻤지만 꽃이야 매년 봄이면 피어날 테고 길가의 나무들도 그랬다. 집 베란다에 자리 잡고 있던 몇몇 화분은 내가 물을 주기 시작하면 얼마 안 가 시들시들해지기 일쑤였다. 어쩌면 그런 것보다 더 새롭고 소중한 것들이 항상 주변에 있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꽃보다 놀이터에서 뛰어노는 게 더 즐거웠고 학창 시절에는 늘상 친구와 시간을 보냈으며 커서는 꽃이나 식물보다는 도시의 야경을 보는 게 더 좋았다. 그땐 모든 것이 영원할 것 같았다. 시간도, 가족도, 친구도, 벚꽃도 내가 손만 뻗으면 그 자리에 있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차츰 지나면서 영원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이제 찰나에 집중하는 일이 많아졌다. 하나에 한 가지에 집중하면서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고, 그 순간을 즐기자고 다짐한다. 자기 전, 문득 그동안 놓쳤던 찰나들이 자꾸 떠오를 때면 후회도 하면서.


매 계절 다른 꽃들이 피어난다는 게 새삼스레 놀랍다. 그 꽃들이란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있었기에 나도 모르게 이름 모를 꽃에 카메라 렌즈를 가까이 가져다 댄다. 예쁜 꽃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다. 화려한 장미와 앙증맞은 튤립, 향긋한 프리지아.. 모두 예쁘지만 정작 내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건 아스팔트 사이에서 빼꼼 머리를 내민 들꽃이었다. 이름은 모른다. 그냥 길을 가다가 혹은 어느 벤치에 앉아 발 밑을 내려다보았는데 거기 작은 꽃이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쟤는 이 단단한 땅을 뚫고 나오려고 얼마나 애를 썼을까.' 작고 연약해 보이는 들꽃이 언 땅을 밀어내고 생명을 틔워낸 데에 기특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는 생각한다. 저 꽃도 피어났는데, 언젠가 나도 필 수 있겠지. 작은 꽃에게서 용기를 얻고 벤치에서 일어나 다시 발을 내디뎠을 때가 있었다.






벚꽃이 만개한 요 근래엔 자꾸만 산책을 나갔다. 얼마 안 가 져버리면 또 내년 봄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걸 알기에 그전에 마음껏 보고 싶었다. 낮에 보는 벚꽃과 밤 산책로에서 알록달록한 조명 아래 보는 벚꽃은 서로 다르게 아름다웠다. 낮엔 파란 하늘과 연분홍빛의 벚꽃의 조화가 마치 그림 같았고 밤엔 조명빛에 따라 다양한 색으로 변하는 벚꽃은 너무 화려해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저께와 어제는 밤산책을 갔다. 집에서 20분쯤 걸으면 커다란 호수가 있는데 호수둘레 주변으로 핀 벚꽃길이 장관이기 때문이다. 밤에 가면 하늘은 알록달록한 벚꽃으로 덮여있고 호수 가운데서는 시원한 분수를 내뿜는다. 사람들은 야외 테라스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고 있다. 걸으며 그 풍경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일상의 평온함이 느껴진다. 이런 걸 보면 행복이 별 다른 게 아니었는데, 그동안 나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뭔가를 해치우듯 지냈을까 잠깐 생각했다.


어제는 사람이 정말 많았다. 원래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데다, 아마도 만개한 벚꽃을 볼 수 있는 마지막 토요일이어서였을 테다. '이렇게 사람이 많을 줄 알았으면 더 가까운 곳에 갈 걸 그랬나'라고 생각한다. 이미 이곳까지 와버렸으니 조금만 걷다 들어가자고 마음먹었다. 걷는 내내 온통 벚꽃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 예쁘다. 바람이 한번 세게 휙 불더니 하얀 벚꽃이 흩날린다. 마치 눈 같다, 벚꽃눈. 유독 한 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벚꽃눈을 사람들은 일제히 바라보았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시선이 한 곳으로 향하는 그 순간을 목격하는 것도 왠지 행운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벚꽃을 즐기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아이와 어른,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연인, 남자 사람 친구끼리 또 여자 사람 친구끼리도, 단출한 가족도 보인다. 서로 다른 주인이 데리고 온 강아지들조차 길 한가운데서 만난 게 반가운지 보자마자 서로를 향해 달려든다. 그 귀여운 강아지들에게서 눈을 떼기 아쉬워 걸음을 늦추다 다시 제 속도를 냈다. 많은 사람들 사이, 나는 혼자였지만 그래서 더 섬세하게 곳곳의 찰나들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전엔 나도 내가 바라본 사람들처럼 벚꽃을 바라보다 서로 사진을 찍어주거나 쉴 새 없이 이야길 하느라 다른 풍경들은 바라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게 된다는 건 나쁘지 않았다. 조금 더 성장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내심 뿌듯해졌다.






작년 이맘때엔 벚꽃이 폈다 졌는지도 모를 새에 사라져 버렸다. 꽃구경을 한다는 게 사치로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출퇴근 길을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가로수길에 핀 벚꽃을 봤다. 예쁘다는 걸 느낄 새 없이 나는 몸과 마음이 바빴고 회사나 집에 들어가선 대부분의 시간에 모니터를 들여다봤다. 하루에 12시간을 일해도 내일은 내일대로 할 일이 쌓여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은 빨리 갔다. 끝은 보이지 않았지만 하루하루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느낌에 도취되어 있기도 했다. 그 사이사이엔 몸을 쉬어줘야 했다. 가끔 술을 마셨고 이따금씩 사람들을 만났다.  


재작년, 몇 년 전 이맘때도 벚꽃은 피었었고 그에 담긴 기억들은 종종 고개를 내민다. 하지만 그저 간직하는 것이 더 아름다울 때도 있기에 내 안에 고이 담아두기로 했다. 꺼내지 않고 두었을 때 온전히 빛을 내는 것도 있는 법이란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았다.


이렇게 벚꽃 시즌은 한 번 더 지나간다. 다른 것들보다 벚꽃이 유난히 더 아쉬운 이유는 정말 짧은 순간이기 때문이다. 빨리 지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축제장에 몰려들고 벚꽃은 수많은 사람들의 카메라에 담긴다. 아마도 언제나 볼 수 있는 꽃이었다면 그 먼 곳까지 보러 가지도, 애타게 기다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얼마 안 가 올해의 벚꽃도 떨어질 것이다. 바람의 포근함이 느껴질 때 어디든 밖으로 나가 찰나를 즐기자. 그리고 꽃잎이 흩날리는 순간에 집중해 보자. 딱 열흘 피우기 위한 벚꽃의 숨은 노력이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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