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 생산직하면 어떤 게 떠오를까요? 고된 노동환경, 반복되는 업무, 박봉, 잔업... 제가 장사를 그만두고 중소기업에서 생산직을 한다고 하니 다들 이와 같은 것들을 언급하며 걱정을 하곤 했습니다. 뭐, 저 역시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비슷하게 생각했었죠.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걱정하던 점들은 저에게 오히려 장점으로 다가왔습니다. 일은 힘듭니다. 하루 종일 몸을 쓰기 때문이죠. 대신 저는 불면증이 사라졌습니다. 최소 6~7시간은 한 번도 깨지 않고 잠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품종 소량 생산의 특성상 다양한 업무를 하는데 그중 하루종일 반복되는 업무를 맡았을 때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허리도 아프고 지루하기 그지없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사색의 시간으로 바뀌어 있습니다. 이런 일을 할 때는 시간이 잘 안 간다고 공장장님은 음악이라도 들으면서 하라고 하시는데요. 저는 오디오북을 듣거나 사색을 하게 됩니다. 사색이라니 뭔가 거창한 말 같지만 별거 없습니다. 그냥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인가 생각하고 내 아이들이 커서 어떤 모습이 될지 상상도 하죠. 우리는 죽어서 어디로 가게 될까 고민도 해봅니다.
박봉은요, 뭐 별거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진짜 박봉이었죠. 그런데 열심히 하니까 급여는 알아서 올려주더군요. 주식 투자를 통해 얻는 수익률보다 제가 1년 사이에 오른 급여 상승률이 더 높았습니다.
잔업은 솔직히 잔업 같지도 않습니다. 평일에는 정규 업무 시간이 지난 오후 5시 반부터 7시 반까지 2시간, 토요일에는 오후 3시까지가 보통 잔업 및 특근 시간입니다. 예전에는 모든 수당이 연봉에 포함된 회사에 다녔지만 지금 제가 일하는 회사의 경우 잔업이나 특근을 할 경우에는 기본 시급에서 1.5배가 지급됩니다. 게다가 장사할 때는 저녁 9시가 넘어서 마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지금은 잔업하고 퇴근해서 집에 가도 7시 40분, 아이들과 매일 저녁 산책을 합니다.
이렇게 주변인들이 걱정을 해주던 요인들은 오히려 저에게는 장점이 되었습니다. 장점이라고 여기게 됐다는 게 맞는 표현이겠죠. 잠도 잘 자고 평소보다 생각도 많이 하게 됐으며 밥도 제시간에 두 끼 이상 먹게 됐습니다.
낙천적인 성격은 아니지만 긍정적으로 살려고는 합니다. 빅터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나서 사람은 '자신의 삶에 대한 의미'만 가지고 있다면 어떤 조건 속에서도 충분히 살아갈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이 아우슈비츠가 아님을 다행으로 생각하면서 좀 더 작고 소소하지만 소중한 삶을 살아가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