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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원 Dec 15. 2024

아내가 우리 회사에 알바 뛴 사연

아내는 다니는 회사에서 2주라는 긴 휴가를 받았습니다. 혼자 서울까지 가서 세상 구경도 하고 집에서 쉬기도 하면서 뒹굴뒹굴 거리는 모습이 참 부러웠는데요. 


어느 날 문득 아내가 저에게 회사일이 그렇게 바쁘냐고 물어보더군요. 회사일이 바빠서 외국인 일용직을 매일 불러서 해도 일손이 부족하다고 하니, 자기가 우리 회사에서 하루 알바를 해보면 어떨까 하더라고요. 저야 좋죠. 아니 그렇게 말이라도 해주는 게 고마웠습니다. 딱 거기까지 일거라 생각했는데 아내는 진심으로 같이 일을 하고 싶어 하더군요. 


그래서 출근해서 공장장님에게 제 아내가 하루 알바를 하고 싶어 한다, 괜찮겠냐고 물어봤는데 정말 좋아하면서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공장장님은 제 부탁에 난감해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좋아했던 이유는 일손이 부족해서 최근에 공장장님 아내분까지 같이 현장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말동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겠죠. 


같이 출근하는 당일날 아침, 제 작업복을 아내에게 입혀놓으니 요즘 유행하는 오버핏 패션이 따로 없더군요. 쪼매난 아내가 두툼한 작업복을 입고 아장아장 걷는 걸 보니 귀여웠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데 5분 만에 직장에 도착하니 적잖이 당황하는 아내, 생각보다 더 가깝다고 느껴서인지 제가 매일 자전거로 출근하는데 비 오면 차 타지 말고 우산 쓰고 걸어가라고 하더군요. 


회사에 도착해서 동료들과 대강 인사를 나눈 뒤 공장장님은 아내가 다음에 또 올 수 있게 최대한 편하고 쉬운 일을 시키라고 하셔서 그나마 제일 편해 보이는 일을 알려줬습니다. 독특하게 생긴 칼로 제품 가공면에 튀어나온 찌꺼기를 제거하는 일이었는데 곧장 혼자서 잘하더군요. 어딜 가도 1인분 이상은 하는 아내라 믿고 맡겼습니다. 


같이 일했던 공장장님 아내분도 점심때 같이 밥 먹으면서 제 아내를 입이 닳도록 칭찬하셨습니다. 분명 아내 칭찬인데 제 기분이 더 좋았습니다. 아내는 5시까지 일하고 퇴근했고 저는 잔업을 하고 나서 몇 시간 뒤에 퇴근했습니다. 


집에 와보니 아내는 전기장판을 틀고 파김치가 되어 누워있더군요. 평소에 안 쓰던 근육을 쓰다 보니 학창 시절 체력장하고 난 다음날 같은 느낌이라는 아내. 그냥 그 모습에 여러 감정이 몰아쳤습니다. 이 날은 서로를 좀 더 알게 된 하루였습니다. 아내는 제가 이렇게 힘들게 일을 하는 모습에 평소보다 퇴근 후에 잔소리가 눈에 띄게 줄었고, 저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더 늘었습니다. 얼른 아내 고생 안 시키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이 간절해진 하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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