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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르티아 Aug 04. 2020

전세냐, 월세냐가 중요한게 아니다.

| 주거안정을 위한 First Principles Thinking

테슬라 CEO인 일론 머스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First Principle thinking이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를 가장 핵심, 본질에 이를 때까지 압축해 나가는 사고방식이다. 번잡한 곁가지에 현혹되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 확신할 수 있는 근본원칙을 판단기준으로 삼는다. 가끔은 중간목표를 과감히 생략하기도 하고, 상식이나 통념을 무시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처음 개념을 창안한 뒤로, 테슬라와 넷플릭스 등 주요 IT 기업들에서도 이런 압축적 접근법을 인재채용과 의사결정의 제1원칙으로 삼고 있다.

https://www.cnbc.com/2018/04/18/why-elon-musk-wants-his-employees-to-use-a-strategy-called-first-principles.html


나는 최근 부동산 3법 통과를 계기로 불거진 '전세냐, 월세냐' 논쟁이 정말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마치 '理, 氣'를 가지고 싸우던 조선 성리학마냥 현실과 하등 관계없는 개념이 옳냐 그르냐를 따지는 논쟁처럼 느껴진다. 머스크가 강조하는 First principles thinking, 1순위 사고방식에 따르면 전세가 사라지느냐 마느냐는 결코 주거정책의 핵심이 될 수 없다. 진짜 중요한 문제는 바로 변하지 않는 목표, '어떤 정책이 국민들의 주거안정을 위해 기능할 수 있느냐'다. 다른 문제들은 부차적일 뿐이다.



전세는 언젠가 사라질 제도인가?

똑같은 논쟁이 전임 정부 때도 있었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의 부상으로 인한 주력 제조업 침체, 가계부채 등 다양한 요인으로 인해 '저성장, 저금리'가 뉴노멀로 여겨졌다. 고성장에 따른 주택가격 상승과 높은 이자율이라는 환경 속에서 태어난 전세라는 제도도 곧 월세로 전환되면서 없어지리라는 '전세 소멸론'을 정부가 나서서 주장한 것이 바로 그때였다. 그래서 5년이 지난 지금, 전세는 사라졌는가?

http://www.m-i.kr/news/articleView.html?idxno=212195


전세가 '고성장, 고금리'라는 독특한 환경에서 유래한 한국 특유의 제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저성장, 저금리'가 되었다고 전세가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훨씬 복잡하고, 세상은 경제이론대로 딱딱 흘러가지 않는다. 세입자 입장에서는 매달 월세로 나가는 현금지출을 줄일 수 있고, 집주인 입장에서는 적은 자기자본으로 적극적인 갭투자가 가능해 지고, 여기에 월세로 수반되는 자잘한 거래비용까지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좋은 제도가 왜 굳이 '없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선진국인 미국에서 최근 실리콘밸리 주택가격이 급등하면서 전세와 흡사한 '공동소유' 제도가 자체 발생하고 있는 상황인데 말이다.

https://www.nytimes.com/2020/04/20/upshot/housing-option-coronavirus-pandemic.html


전세가 월세로 꼭 바뀌어야 주거가 안정되는 것도 아니다. 반대로 월세가 확대된다고 해도 주거비가 반드시 상승하는 것도 아니다.(오히려 목돈 마련이 어려운 저소득층에겐 월세 확대가 나을 수 있다) 저성장 저금리여도 주택가격은 계속 오르면서 전세에 유리한 환경이 지속될 수도 있다. 미래는 어찌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상정하고 현재를 끼워맞추기보다, '미래가 어찌 되든 주택시장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고 거기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지 않을까?


'이러이러하니 미래는 반드시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결정론적 사고관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하지만 10여년 전부터 전세 소멸론이 나오고 있지만 전세가 사라지지 않은 것처럼, 사람들의 선택과 현실경제는 그 누구도 결과를 예단할 수 없다. 오히려 '전세는 사라질수도, 살아남을수도, 오히려 확대될수도 있다. 그러든 말든 우리는 변하지 않는 목표, 즉 주거비를 안정시키는 방법에 집중하자.'라고 생각하는게 본질이라고 난 생각한다. 



본질은 결국 주거안정이다.

쓸데없는 음모론이나 고정관념, 아전인수적인 사례분석, 복잡한 세부사항을 다 배제하고 '어떤 정책이 주거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지금 논의되는 대안들을 분석해보자.


공급 확대는? 당연히 주거안정에 도움이 된다. 주거비용 하락과 국민들의 자가보유율 향상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임대주택 확충, 용적률 향상, 고층빌딩 규제 완화 등등 모든 공급확대는 주거비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재건축 규제 완화는? 당연히 주거안정에 도움이 된다. 양적인 주택공급 증대는 물론 질적으로 국민들이 훨씬 쾌적하고 안정한 환경에서 거주할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재건축이 진행되는 기간동안은 일부 멸실로 인한 수급변동은 있겠지만, 1순위 목표인 주거안정에 비하면 부차적 문제다. (단기적 가격변동이 무서워 중장기적 주거안정 확대를 미루는건 원칙에 맞지 않는다) 강남  일부 지역에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도 부차적 문제다. 강남이 집값상승에 따른 차익을 얻는건 기본적으로 생산성의 문제다. '좋은 입지'라는 자산특성이 변하지 않는 , 정책으로 크게 손대기 어려운 문제라는 말이다. 재건축 규제는 풀되 기존 거주민들의 재산권은 크게 침해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지역의 공급을 실질적으로 늘리는데 집중하는게 1순위 원칙에 부합한다.


임대차 3법은? 일부 효과는 있겠지만 주거비 안정의 근본대책이  어렵다. 임대료 상한제, 재계약 청구권 등은 세입자의 협상력을 높여줘서 단기적으로는 주거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집주인들의 임대주택 공급이 줄어서 주거안정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세입자의 협상력은 해당 지역의 생산성(=주변 상권, 직장) 자체와는 직접적 관련성이 없다. 세입자의 권리가 높아지더라도  지역에 대한 수요가 늘고 집값이 높아진다면 주거비는 오를 수밖에 없다. 임대차 관련 정책으로 집값을 근본적으로 잡기 어려운 이유다. 


대출 규제는?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있다. 투기적 주택수요에 직접 제약을 가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대출을 크게 일으켜 주택을 사려는 이들에게는 아쉬울 수 있겠으나, 과도한 주택가격 상승 이후 버블 붕괴(ex. 서브프라임)는 기존에 빚내서 집가진 사람들의 주거안정을 오히려 위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명분도 있다. 하지만 거듭 말하지만 집값은 장기적으로 해당 지역과 주택의 가치, 생산성에 의해 좌우된다. 따라서 장기적인 주거 안정을 원한다면 공급대책 없이 대출규제만으로는 제한적이다. 


양도세, 보유세 인상은? 주거안정에 대한 직접적 효과는 제한적이다. 사실 세금은 재분배가 1 목적이지, 가격 안정이 근본목적이 아니다. 양도세와 보유세를 올리더라도 근본적인 주택수요와 공급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긴 어렵다. (물론 양도세 인상은 투기적 주택거래 폭증과 가격상승을 완화하는 일시적 효과는 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잠금효과 때문에 오히려 공급부족을 일으킬 수 있다.) 보유세가 다주택자들의 주택보유 비용을 높여서 주택수요를 감소시킨다는 분석도 있으나, 집값이 오르는 근본원인은 보유세가 낮아서가 아니라 해당 자산의 생산성이 높고(=입지) 수요자들의 구매력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따지면 보유세 수준이 높은 외국은 집값이  오르는가? 보유세를 높였는데도 서울과 수도권의 국제적 지위가 높아지고 생산성이 높아진다면 집값은 세금 인상분을 씹어버리고 얼마든지 오를  있다. 세금 정책은 자산불평등 완화를 위한 재분배 정책 차원에서 논의되어야지, 주거안정 차원에서는 1순위로 고려되기 어려운 이유다. 


행정수도 세종시 이전은? 주거안정에 도움이   있다. 정해진 인구와 구매력 한도 내에서 거주인구의 분산은 수도권 주거비용을 낮추는데 기여할 수 있다. 물론 일부 거주민들의 다주택 보유가 증가하면서 수도권 분산효과는 낮을 거라는 예상도 있고, 수도권 인구감소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주거안정'이라는 제1원칙을 다시 떠올려보자. 세종시로 이전하는 인구 전체가 수도권에도 집을 가진 다주택자는 아니다. 세종시에 새롭게 터전을 마련하는 인구 대부분이 무주택자나 1주택자라면, 가만 놔두면 수도권에 집중되었을 주택수요가 분산되는 효과는 분명히 있다. 또한, 생산성 저하는 대전, 청주 등 주변 도시권과의 통합을 통한 대도시권 조성이나 교통인프라 확충을 통한 집적도 향상 등 다른 방안으로 보완이 가능한 부차적 문제다.

  


궁극적으로 주거정책의 제1원칙First Principle은 '최대한 많은 국민들에게 좋은 주거공간을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차적 문제들에 휘둘려 판단을 흐리면 안 된다. 제도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세부적 문제점이나 헛점은 행정적으로 계속 보완해나가면 된다. 사소한 논점을 마치 문제의 핵심인 것처럼 침소봉대하거나 정파적 관점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일 자체가 에너지 낭비다.


이러한 제1원칙을 기준으로 주거정책을 펼치고 쓸데없는 논쟁에 에너지를 쏟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면 한국의 주거정책 관련 논쟁도 한 차원 높게 전개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세줄요약>

1. 전세냐, 월세냐는 주거안정이라는 제1원칙(First Principles) 달성과는 무관한 부차적 논쟁이다.

2. 집값 상승은 기본적으로 주택의 근본가치, 생산성 향상의 결과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국민들에게 좋은 주택을 공급하여 자산가격 상승의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주거정책의 제1원칙이 되어야 한다.  

3. 제1원칙의 관점에서 공급 확대, 재건축 규제완화 등이 장기적으로 주거안정에 도움이 되는 정책들이다. 대출규제, 임대차보호법 등 나머지는 효과가 단기적이거나 제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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