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멈춘 곳에 핀 꽃
현직 교도관의 고백. [어느날, 살인자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세요. 전 교도소에서 일하는 교도관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 사람이 있는 강의실에서 내 소개를 마쳤다. 내가 서있는 이 강의실 양쪽 벽에는 '사랑의 대화', '수화는 언어다.'라는 문구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회색빛이 감도는 교도소, 구치소의 풍경이 익숙한 나에게 수화 교육원의 강의실 내부는 낯설었지만 그간 푸석했던 내 마음을 희석시킬 정도로 이곳 사람들의 표정이나 분위기는 환하게 느껴졌다. 내 소개를 들은 사람들은 잠시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지만 이내 큰 박수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소개를 마치자 내 옆에 서있던 수화통역사는 나를 바라보며 손짓했다.
"손가락을 이렇게 해보세요. 이건 ㄱ, 이건 ㄴ, 이건... 여러분도 같이 따라 해 보세요."
나는 어색한 손동작으로 수화통역사의 수어를 따라 했다. 그리고 인생 처음으로 내 이름을 수어로 소개할 수 있었다. 그때 느꼈던 뿌듯함은 수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내 마음에 남아있다. 입으로 내뱉는 소리가 아닌 손과 몸짓, 표정으로 커뮤니케이션이 된다는 사실이 실로 놀라웠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사실 큰 포부를 안고 전화로 문의했을 때와는 달리 처음 수화 교육원을 방문했을 때 나는 쉽게 교육원의 정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했다. 새로운 배움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지만 나의 무지로 인해 농아인 분들에게 실례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컸던 게 사실이다.
"저도 배울 수 있을까요...?"
쭈뼛쭈뼛 말을 거는 나를 보며 이곳 사무실 직원께서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요! 초급반부터 차근차근 시작하시면 됩니다. 교도관님이시죠.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교도관님은 어떻게 수어를 배울 생각을 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직원분은 교도관 일을 하는 분이 교육을 받으러 온 것은 처음이라며 다소 호기심이 어린 표정으로 초급반 교육신청서와 볼펜을 건네주었다.
"전 범죄피해자분들을 상담을 통해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어요. 어느 날, TV를 보다가 범죄피해를 보신 농아인께서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 보고..."
교도관이 되고 이 세상 한구석엔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이 존재한다는 것을 목격했다. 그 이후로 나도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이 없을지 찾아 나섰다. 한 번은 교정시설에 수감된 아버지를 보러 온 어린 아들이 수어를 통해 면회를 진행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저 어린아이가 부모의 부재로 인해 어떻게 살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기본적인 수어를 몰랐던 나는 그 아이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답답한 경험을 한적도 있다.
"공감과 경청. 이 두 가지가 대화의 기본 요소입니다."
나는 학부와 대학원 석사과정 모두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사실 내가 전공한 '상담심리학'과 '수어'는 많이 닮아있다. 상대방의 몸짓과 표정을 보며 감정을 공유하고 말을 주고받는 면에서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르지 않다. 수어를 배우고 농아인 분과 처음 대화를 할 때도 '공감과 경청'은 역시 인류의 모든 대화방식에서 공통점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초급반과 중급반 수어 교육을 수료했다. 하루 8시간 가까이 진행된 수업이었지만 농아인 분들의 문화를 배우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 과정 동안은 정말 시간이 가는지 모를 정도로 인상 깊었다. 정말 뿌듯했던 건 중급반 종강 날 농아인 분들 앞에서 내 직업인 교도관에 대해서 수어로 얘기하고 많은 동료 교도관 직원분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농아인 분들께서도 소방관, 경찰관의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교도관의 직업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며 응원의 목소리를 내어주셨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들은 동료 교도관께서도 도움을 드리고 싶다며 수화 교육원에 후원금을 지원해주셨다. 처음엔 단순히 봉사를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한 수어 배우기는 점점 내 인생에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고 좋은 사람들과의 인연으로 번져나갔다. 그렇게 우리는 한 공간에서 한 마음으로 각자의 인생을 응원하며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시간이 흘러 내 결혼식이 있던 날, 농아인 분들과 수화통역사분께서 축하를 하러 와주셨다. 그분들은 처음 수화 교육원에서 쭈뼛하던 나를 맞이 해주셨을 때와 똑같이 환한 미소로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축하한다는 수어와 함께 두 양팔을 올려 하트 모양을 만들었다. 말없이 나를 보며 웃는 그분들의 진심은 나에게 수천, 수만의 말들보다 더 가슴 깊이 울리며 다가 왔다. 과연 이 순간 말이 필요할까. 그분들의 환한 얼굴을 보며 나도 대답했다.
"저도 많이 사랑하고 응원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닿는 곳에서 우린, 소리의 울림보다 훨씬 큰 마음의 울림을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 탓에 어려움도 많았을 우리 모두 하루빨리 마스크를 벗고 서로를 마주 보며 다시 한번 그 환한 미소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전하고 싶다.
아내와 나는 지금도 맥주 한잔을 마시며 종종 수어를 배울 때의 기억을 꺼낸다. 당시 수화 교육원 앞 화단에는 분홍 달리아 꽃송이가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그 꽃처럼 아름다운 마음을 지닌 그분들에게 배운 그 환한 미소를 나도 누군가에게 다시 돌려드릴 수 있도록, 그리고 세상의 편견과 불편함에 아픔도 많았을 그분들의 앞날에 따뜻한 은총만이 가득하길 바라며 눈을 감고 마음을 담아 두 손을 모아 본다.
'모두 잘 지내시죠? 참 많이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