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사거리에 낡은 건물을 끼고 우회전을 하니 내 시야에 교도소의 외벽이 작게 들어왔다.요즘은 매일을 오가는 길 위에서 보이는 똑같은 풍경에 권태가 온듯하다. 직장인에게 3.6.9년의 간격으로 찾아온다는 그님께서 나에게도 온 것일까. 라디오 볼륨을 완전히 꺼버리고 과거의 후회됐던 일들을 떠올리던 그때 뚝뚝 소리를 내며 비가 한두 방울 보닛 위로 깨지듯이 떨어졌다. 옷깃을 추스르며 횡단보도로 쏟아져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신호대기 동안 눈에 인공눈물을 집어넣었다.무의미한 삶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내 생활은 꽤 건조하다. 우스갯소리를 조금 보태자면 한 달에 여섯, 일곱 번씩 25시간 근무를 한다는 건, 그들이 아닌 내가 징역을 살고 있는 건 아닌지 헷갈리게 만들었다.환기가 필요하다. 창문을 살짝 내리고 비 내음이 콧속으로 들어오자, 지금 이 가볍고 비릿한 내 속을 묵직하고 텁텁한 담배 한 모금으로 누르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했다.빗물을 밀어내며 좌우로 흔들리는 와이퍼의 움직임을 보면서 마치 최면에 걸린 사람처럼 이상한 상상을 시작했다. 인간이길 포기한 사람들을 바라보며 엄지와 중지를 부딪혀 딱 소리를 내면 펑하고 이 세상에서 지워져 버리는상상. 글쎄, 나도 상상세계에서는 연쇄살인마가 아닌가 싶다. 망상에 빠져버린 시간이 길어지니 뒤차의 클락션 소리가 사납다.깊어가는 망상과 건조한 안구가 말해주듯 심신은 예전 같지 않고 내 바이오리듬은 요즘의 주식차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직장, 교도소에 도착했다. 교도소에 들어오자 비는 더 세차게 쏘아지듯 내려쳤다.주차를 하고 손을 닦으러 화장실에 들렀다가 교도소 화장실 벽에 붙어있는 문구를 한참을 바라보았다
당신의 행동으로 내일 뉴스에 나온다면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어할지 생각해보세요.
보통 화장실엔 '머문 자리가 아름답습니다.'라던지 '한 발짝 더 가까이.'라는 글이 있지 않나.이 문구를 보니 내가 지금 교도소에 들어왔구나를 실감했다.담당실 책상에 앉아 이메일을 확인하고 알아두어야 할 특이사항이 있는지 근무일지를 들춰보았다. 근무일지 사이에는 수용자들이 자신의 요구사항을 적어낸 *보고문이 수북했다.
-교도관님, 상담 요청드립니다.-
그 사람이 상담을 요청한 이유는 수용생활에 대한 불편한 점들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다 큰 성인 남자 여러 명이 한 공간에 모여있기 때문에 불편한 점이 한두 가지는 아닐 것이다. 간단히 면담을 마치고 돌아서려는 찰나, 쓰다 만 반성문이 방바닥에 펼쳐져있는 걸 보았다. 순간 궁금했다. 이 방안에 정말 반성하는 사람들은 있는지, 교도소의 교화정책이 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말이다.
"반성하는 사람들이요? 글쎄요. 여긴 다 억울한 사람만 모여 있으니까요."
그 사람은 자신이 그동안 징역을 숱하게 오래 살았지만 반성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 얘기가 사실일리 없겠지만 그런 얘기를 들은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내가 만난 정말 많은 사람들이 그 사람과 같은 말을 했었다는 것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종종 교도소에 구속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 사람들을 본다. 또 누군가는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한다. 사람은 변할까?형벌의 목적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사람을 해하였으니 당연히 그에 대한 강력한 응징을 통해 형벌의 위화력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과 교육과 치료를 통해 재사회화시켜 다시 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형벌의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실 국제적으로 응보주의를 채택한 국가들보다 교육과 치료를 통한 교정주의를 택한 국가들의 재범률이 더 낮다는 지표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 현장 근무자로서 한마디 해야 할 것이 있다. 치료와 교육을 통한 교정주의로 갈 것이라면 그에 대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된다는 말이다.시설, 인력, 환경은 수십 년 전 구시대에 머물러 있으면서 사상과 이론만 선진 교정을 카피한다면 실제 교정현장의 갈등은 더 심화되고 수용자의 교화의 원하는 결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의 영향은 고스란히 우리의 사회로 돌아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시 위협할 것은 자명하다.
위급상황 발생 시, 산소마스크를 어린아이가 아닌 어른부터 먼저 착용 후, 어린아이가 착용할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기내방송이다.왜 보호해야 할 어린아이 말고 어른이 먼저 마스크를 쓰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아이를 보호해야 할 어른이 한 명이라도 더 살아야 더 많은 어린아이를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교도소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교도관들의 산소마스크는 모두 '이미 다른 사람이 사용 중'이다.
프랑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L'heure entre chien et loup
개와 늑대의 시간.
빚과 어둠이 뒤섞인 시간엔 사물이 흐려지고 나에게 다가오는 저것이 날 지키려는 개인지, 날 해치려 오는 늑대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는 말이다. 오늘 내가 만난 살인자는 멀리 두고 경계해야 하는 존재일까, 가까이 두고 보호해야 하는 존재일까. 처벌일까, 교화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