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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영 Sep 03. 2023

꼴통, 자퇴생, 대학가다.

주저흔#15

 평소 집으로 향하는 로변 옆길로 핸들을 돌렸습니다.  뙤약볕 밑에서 흘린 땀이 목 주변에 흥건했지만 샤워할 틈도 없이 퇴근을 서둘렀습니다. 개강 첫날부터 공사현장 작업이 늦어지거나 지방 시공이 잡힐까 봐 미리 마음 졸이며 입학식을 기다렸습니다. 주말에는 동네 이발소에 들러 머리도 단정히 다듬었습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봄꽃이 화사하게 핀 캠퍼스를 미리 찾아가 본 적도 있었어요. 일곱 자리로 이루어진 숫자가 제 학번이라고 하더라고요. 괜히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몇 번이나 들여다본 학생증을 지갑 안쪽에 고이 집어넣었습니다.

드디어 첫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다행히 겨우 늦지 않게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거나 샤워할 틈이 나질 않아 현장에서 곧바로 1톤 트럭을 몰고 대학교 정문을 통과했습니다. 먼저 화장실에 들러 얼굴에 묻은 페인트와 회색 시멘트가루 급하게 아냈습니다. 휴지로 대충 물기를 쓸어내고 옷에 묻은 흙먼지 들도 털어냈습니다.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현수막과 각가지의 동아리들의 설명이 적힌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있었습니다. 대학생이 된 것이 그제야 실감이 났습니다. 저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 학교에 모습을 천천히 눈 안에 담고 나서야 강의실에 들어가 구석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강의실 창문밖으로는 달이 떠있었습니다. 바늘을 손가락으로 구부려 놓은 것 같은 달은 얇게 달빛을 내비치고 있었어요. 제가 도착하기 한참 전부터 이미 하루 일과를 끝마친 사람들이 강의실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공사장에서 일을 하고 있고 일을 한지는 1년 조금 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대학에 온 이유는... "

취업이나 이직을 위해 대학에 입학한 건 아니었습니다. 어떤 특별한 계획 같은 건 없었습니다. 저를 십수 년간 괴롭혔던 과거로의 이별. 너무 오랫동안 중심에서 튕겨져 나가 주변을 맴돌았던 쓸쓸함, 그리고 제 마음속에 깊게 묻어놓은 한에 대한 반응이었던 것이죠.

"캠퍼스 잔디 꼭 한번 밟아보고 싶은 마음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캠퍼스 잔디를 밟고 싶어서 입학했다는 말에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를 쳐주었습니다. 어찌 됐든 개강 첫날 무사히 자기소개를 마쳤습니다. 곧이어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제일 놀랬던 건 이곳에서 제 나이가 어린 편에 속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다니는 직장 승진에 학사학위가 필요한 청년, 정년퇴직 이후 배움에 대한 목마름으로 입학을 선택한 남성,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제2의 진로를 위해 입학을 결정한 중년의 여성,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삶을 들여다보기로 결정한 저까지. 달이 하늘에 걸려 세상을 은은하게 비추는 어느 저녁의 한가운데서, 우린 모두가 각자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조금만 더 크게 이야기해 주세요."

개인과제를 발표할 때 교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강단 앞으로 나와 과제를 발표하는 제 목소리와 마이크를 잡은 손이 가늘게 떨렸습니다. 어릴 적엔 목소리도 컸습니다. 드팀을 할 땐 공연무대에 올라 수천 명의 대중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던 적도 있었습니다. 지만 스로를 짓눌렀던 그 오랜 시간이 저를 참 겁 많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네요. 친구들과 새카맣게 탈 때까지 뛰어놀던 청소년기, 전 참 외향적이고 즉흥적이었습니다. '역마살이 꼈다.'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죠. 하지만 저의 성인기는 내성적이고 계획적인 성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잃어버린 십수 년의 세월은 저의 기질마저 손바닥 뒤집듯 뒤집어 버렸요.

수업을 마치고 복도를 걸어오다가 벽에 붙어있는 포스터가 제 발길을 멈춰 세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 한 줄을 기다리겠습니다-

표어 공모전 포스터였습니다.  학교의 랜 역사와 전통이 잘 드러나는 문장을 대학 홍보문구로 사용한다는 것이었어요. 이미 홈페이지에 수백 개의 참가작이 올라왔더라고요.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 여러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단어와 단어를 조합해 보고 마음에 드는 문장 몇 개를 포스트잇에 적어 침대 머리맡에 붙여놓았습니다.

십 년 전 군 생활을 할 때에도 표어 공모전에 입상을 해서 포상휴가를 나갔던 적이 있습니다. 쓰기는 사실 작사와 많이 닮아있습니다.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발음했을 때 어감이 좋은 글자는 무엇인지, 어느 부분에서 맥락을 넘길지, 번에도 이러한 요소들을 고려해서 포스트잇에 적어두었던 문장을 공모전 홈페이지에 제출했니다. 망하고 싶지 않았지만, 대하는 마음이 또 한 번 주책없이 튀어나왔습니다.

하지만 매일같이 홈페이지 '새로고침'단축키를 눌렀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한 달이 지나도, 제 표어가 입상했다는 알림은 울리지 않았습니다.


태국친구들은  "오~아인슈타인~"이라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습니다. 제가 대학에 다닌다는 걸 알고 그러는 것이죠. 그중 한 친구대학생은 몸에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며 앞치마를 둘렀습니다. 수업이 없는 날은 숙소에서 기름진 태국음식과 함께 술 한잔을 기울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태국에 있는 가족들과 영상통화를 하다가 저를 바꿔주기도 했어요. 설픈 태국어로 인사를 건네고 괜히 쑥스러워 고개를 돌리기도 했습니다. 김새도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도 달랐지만, 어느새 우린 '삶'이라는 원형 안에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현장 시공이 없는 날은 대부분 태국 친구들과 공장에서 작업을 했습니다. 우린 쇠파이프를 일정한 간격으로 자르고 자갈을 퍼 날랐습니다. 안전휀스의 망을 씌우고 페인트칠을 하면서 재고를 미리 비축해 두는 작업이었죠. 가끔은 망을 찢어먹거나 파이프를 잘못 잘라서 한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돈도 벌고 공부도 할 수 있다는 그 자체가 마냥 좋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문화에서 다른 성장과정을 경험한 태국친구들과의 교류도 좋았어요. 익숙한 환경, 익숙한 사람들 속에서 제 마음이 평온해져 갔습니다. 마치 십수 년 전 엄마가 익숙한 동네, 익숙한 거리, 익숙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우울에서 벗어났던 것처럼요.

일이 끝나고 학교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빈자리에 앉아 창문에 머리를 잠깐 기댔는데, 그만 깜빡 잠이 들었습니다. 행히 띠링-하고 울리는 문자 메시지 알림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하마터면 학교 정류장을 지나갈뻔했죠. 전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에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습니다.

-공지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제출하신 표어가 우수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화요일 오후 2시까지 총장실로 오시기 바랍니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났습니다. 공모전의 존재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살다 보니 학교라는 공간에서 이런 기분을 다 느껴보네요. 머리가 나쁘다고 뒤통수를 출석부로 참 많이 맞았었는데, 곰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더니 제게는 글재주가 있었나 봅니다.


총장실에 도착한 입상자들은 대학총장님께 상장을 수여받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상장이란 걸 받아본 적이 있었까요. 초중학교 때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상장을 삼십 대에 다 받아보네요.

"여러분이 학창 시절에 암기 위주로 공부를 했다면, 대학에서는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탐구하는 것에 더 가치를 두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창작물 입상을 축하합니다."

짧은 축사였지만 학장님의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살면서 저를 옭매여왔던 건 바로 학업이었습니다. 공부라는 것은 저의 최대약점이었죠. 이 모든 불행은 제가 14년 전 학교를  뛰쳐나왔을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요. 반에서 매번 꼴등을 했고 방과 후엔 교실에 남아서 나머지 수업을 들었습니다. 집중이 잘 되지 않았어요. 책상의자에 앉으면 5분도 안 돼서 말도 안 되는 상상에 빠져들거나 괜히 갑자기 떠오르는 무언가를 빈 종이에 끄적이기도 했으니까요. 당연히 그런 머릿속 생각들은 과목점수를 얻어내는 것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런데 총장님의 말씀은 꼭 암기만이 학문을 수행하는 기준이 아니라는 것이었죠. 제 머릿속 상상들도 대학에서 요구하는 학업능력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것이라면 저도 학문에 흥미를 가질 수 있겠더라고요.

초중학교 때는 선생님한테 참 많이 혼났습니다. 반 꼴찌를 했을 때마다 항상 교실 앞으로 나가 엎드려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학에서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고 제 성취를 축하해 주는 교수님들의 격려에 기분이 참 좋아지더라고요. 간은 조언과 훈계보다 인정과 격려 속에서 더 많이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전 그때 살면서 인정이라는 것에 강력한 힘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신의 작은 승리를 모두 인정하세요.
그것은 결국 대단한 것을 만들어 낼 거예요.

                      -카라가우처, Kara Goucher-


서른하나, 그때 저는 또 한 번 제 과거와의 싸움에서 작은 승리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자신을 한번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저를 향해 미련하 다하더라도,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고 하더라도, 고개를 들고 당당히 웃어 보이기로 다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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