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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돋을볕 Jul 15. 2024

나에게 맞는 운동 찾기

일단 하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 번 보자

운동을 시작한 지 만으로 한 달이 조금 넘었다. 처음엔 한 달만 등록해서 해봐야지, 했던 게 6개월 선납 시 1개월 추가 등록이라는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6개월치를 끊고 말았다. 나라는 사람은 실행하기 전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 지금 운동하는 곳을 알게 되고 등록하기까지 자그마치 2년이 걸렸다.


  체력이 매우 부족해서 애들 보내고 나면 계속 누워있다가 아이들이 하원할 때가 되면 억지로 몸을 일으켜 놀이터로, 공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놀이터에서 2~3시간을 보내고 오면 푹 쉰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저녁을 준비할 힘도 없고, 아이들을 씻길 여력도 없었다. 억지로 짜내서 할 일을 마치고 꾸역꾸역 아이들을 재우고 하루를 마감하기 위해 녹슨 톱니바퀴처럼 움직였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인 건지, 아들만 둘이라서 그런 건지, 내가 정말 체력이 부족해서인 건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모두 다 일지도 몰랐다.


  운동을 해야 하는데 운동을 할 힘이 없었다. 근력을 키워야 하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이런 생각이 반복되자 우울해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아이들이 좀 더 크면 할 수 있을 거라는 주변의 말들도 부담으로 다가왔다. 도대체 얼마나 더 커야 가능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누군가 나에게 여성 전용 피트니스를 소개해줬다. 본인도 다니고 있는데 일반 헬스랑 달라서 초보가 하기에 좋다고 했다. 나에게 소개해준 사람은 다른 지역에 살았지만, 그 피트니스는 전국 체인이라서 우리 동네에도 있었다.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였다. 하지만 아이의 어린이집과 반대 방향이라서, 등원 이후 그곳까지 걸어가는 것도 부담이었다. 겨우 걷기만 해도 맥이 빠지는 사람이 나였다.


  처음엔 실내 자전거를 들였다. 책을 읽으며, 유튜브를 보며 페달을 굴렸다.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20분 정도 타는 것을 목표로 했다. 좀 더 자신감이 붙었을 땐 추가로 가장 가벼운 무게의 아령을 들였다. 손으로 아령을 들고 발로 페달을 밟았다. 그런 내 모습이 신기했는지 아이들이 따라붙었다. 순식간에 실내 자전거와 아령은 탐구 대상으로 변했다. 아이들은 서로 자전거에 앉으려 했고 급기야 페달을 거꾸로 돌리기 시작했다. 실내 자전거는 얼마 못 가 고장이 났다. 아이들은 서로 아령을 들어보겠다고 다퉜다. 아이들이 다칠까 봐 아령을 감추고, 홈트용 라텍스 밴드를 샀다. 밴드도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환자용으로 쉽게 늘어나는 제품으로 구했다.



  유튜브로 홈트를 시작했다. 조회수가 높은 인기 있는 영상들은 나에겐 너무 과했다. 사람들이 보통 살을 빼려고 운동한다는 걸 깨달았다. 대부분 살 빼기와의 전쟁 같은 제목이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서 태권도와 결합된 국민건강체조와 간단한 스트레칭, 매트 필라테스와 요가, 노인용 근력운동 등의 운동을 따라 했다. 안 하던 운동을 하려니 쉬운 게 없었다. 아무도 봐주는 사람 없이 혼자 꾸준하게 운동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사람이 많은 낯선 공간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으로 세네 달 정도를 했다.


  운동을 하자 몸이 더 아팠다. 거의 없다시피 한 체력으로 아무 기초도 없이 홈트를 하려니 몸 여기저기가 쑤셨다. 하루 운동을 하고 삼일을 누워있었다. 더 이상 집에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심코 보던 인터넷 기사에서 '만보 걷기'의 효능을 읽었다. 심폐 기능을 강화하고 하체 근육을 단련한다고 했다. 다음 날, 만보 걷기를 시작했다.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갈급함이 있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물 조금과 텀블러에 아이스커피를 챙겨 근처 공원과 수목원을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만보를 채우긴 힘들었다. 산책길과 공원과 수목원과 산길을 걷기 앱을 켜놓고 뱅글뱅글 돌았다. 만보를 채우기 위해선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가 걸렸다. 처음부터 내 체력과 타협하면 다시 시작하기 힘들 것 같아서 배우고 싶은 강의를 귀로 들으며 꾸준히 걸었다. 걷고 나면 하루 종일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덜덜 떨렸다. 툭툭 튀어나오듯이 다리에 근육 경련이 일었다.


  황사가 심하거나 비가 많이 오거나 해가 너무 뜨거운 날이 지속되자 걸을 수가 없었다. 하루 이틀 걷지 못하게 되자 다시 시작하기 힘들었다. 땡볕 아래를 혼자 걸으려니 재미도 없었다. 산길에서 위험한 일을 겪었다는 기사를 보자 혼자 걷는 일이 무서워지기까지 했다.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아파트 계단을 걸어서 올라갔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이 온몸에 줄줄 흘러내렸다. 이마저도 아이가 푸쉬카나 유모차, 킥보드 등을 이용해 등원한 날에는, 집까지 다시 들고 올라가야 한다는 핑계로 계단을 오르지 못했다.


  요가 학원과 탁구장을 다닌 적도 있었다. 결혼도 하기 전이니까 벌써 10년 전인데 요가는 꽤 재밌었지만 한 시간 동안 각종 자세를 취하고 나면 집에 오는 길에 거의 기어서 와야 했다. 초급반은 팔을 벌리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많았고, 중급반은 따라가기 벅찼다. 탁구학원은 국가대표 탁구 선수 누구를 어린 시절에 가르쳤다는 강사가 있는 곳이었다. 나이가 많은 할아버지셨는데, 탁구로 단련된 분이었다. 침착하고 날카롭게 자세를 잡아주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와 탁구를 쳐 줄 짝이 없었다. 알고 보니 탁구장은 동호회 성격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말 같은 허벅지 근육을 가진 분들이 총알처럼 탁구공을 쏘아댔다. 그 공을 피해 저 끝 구석에 있는 탁돌이와 서브 연습을 하다가 강습을 받고 집에 돌아왔다. 그마저도 탁돌이 사용 시간이 1인당 20분으로 제한되어 있어서 많이 칠 수가 없었다. 탁구 동호회 분들과 나이대도, 실력도 전혀 맞지 않아서 탁구장 사용료가 포함된 비싼 수업료만 내고 다니다가 3개월 정도하고 그만두었다.


  아파트 헬스장에 등록했다. 1개월에 3만 원이라는 파격적인 가격이었는데 운동복이나 수건, 샤워실은 제공되지 않았지만 가성비가 좋은 곳이었다. 성실한 여자 사장님이 오랜 시간 운영한 곳이었는데 기구들이 그만큼 낡고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사장님은 기구 사용법을 몰라서 러닝머신만 줄기차게 타는 나를 가엾게 여기고 가끔씩 운동 기구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나에겐 유산소보단 근력 운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헬스 기구의 핀을 다 뽑고 중량을 0으로 만들어도 기구가 내 힘으론 움직이지 않았다. 낑낑대며 몸을 부들부들 떨며 여러 가지 기구를 시도했지만 모든 동작이 어색하고 주변 시선이 부끄러웠다. 사장님이 상시 거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혼자 운동을 해야 하는 날이면 다시 러닝 머신만 타다 와야 했다.


  운동은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대체 무슨 운동을 해야 할까? 살을 빼고 싶은 것도 아니고, 바디 프로필을 찍고 싶은 것도 아니고 그저 기본적인 체력을 갖추고 싶을 뿐인데 운동의 세계는 너무 복잡했다. 다시 아이들을 보내고 힘겹게 집안일을 마친 뒤 이불속에 기어 들어갔다. 자주 몸살이 나고 아팠다. 기분이 가라앉고 사소한 일에 쉽게 짜증이 났다. 이유 없이 슬프기도 했고 작은 일에도 부담감을 느꼈다. 어떻게 하면 이 습관화된 무기력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위험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공부하는 삶>을 쓴 프랑스의 철학자 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의 말이 떠올랐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은 반드시 아픈 시간이 있을 것이다." 내 꼴이 딱 그 모습이었다. 아마 지금은 30대라는 젊은 나이라서 그나마 버티는 거겠지만 나이가 더 들면 걷는 것조차 지팡이에 의지해야 할지 모른다. 집 안에서 보내는 순간을 최고로 치는 내가 드디어 밖으로 나갈 시간이었다.


  전에 지인이 소개해 준 여성 전용 피트니스를 검색했다. 2년 사이 자리를 옮겨 집에서 조금 더 멀어져 있었다. 걸어서 15분 거리에서 2-30분 거리 정도로 늘어났다. 상담을 예약하고 가보니 생각보다 공간이 작았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헬스장에서 전에 느끼던 중압감이 없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쉽게 운동할 수 있다는 설명답게 50-60대 분들이 많았다. 유산소와 근력, 스트레칭을 종합해 30분 코스로 이루어진 운동이었다. 30초를 걷고 30초는 유압식 기구를 이용해 근력 운동을 했다. 유압식 기구라는 걸 처음 들어봤는데 공기의 저항을 이용해 몸을 빠르게 움직이면 무게가 증가해 매우 무거워진다. 반면 천천히 움직이면 가벼워져 쉽게 움직일 수 있었다. 상담을 받으며 그중 세 가지 기구를 직접 해보았는데 내 힘으로 움직이는 기구는 처음이라 신기했다. 내가 정말 꾸준히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자, 상담해 주던 점장님은 본 지점의 최연장자의 나이가 82세라며 젊은 나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그렇게 되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했다. 여기에서도 운동을 하지 못하면 다른 데서는 아무것도 못할 거라는 말에 조금은 서글퍼지기도 했다. 냉정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운동을 등록하고 정해진 코스대로 3번의 개인 PT를 받았다. 정확한 기구 사용법과 바른 자세를 배웠다. 기구들이 스펀지로 쌓여 있어서 부드럽고 사용하기 편했다. 개인 코치가 끝난 뒤에도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늘 상주해서 모두의 자세를 바로 잡아 주었다. 운동 기구 자체가 둥그렇게 배치되어 있어 함께 원으로 서서 마주 보고 운동을 하기 때문에 같이 운동하는 기분이 들었고, 매번 자세 교정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았다. 신나는 음악에 시원한 에어컨 바람까지 나오니 밖에서 걸을 때와는 딴판이었다. 땀이 나기 무섭게 식었다.


  처음 2-3주 정도는 매일 아팠다. 팔, 다리, 어깨, 허리 안 아픈 데가 없었다. 긴장한 탓인지 두통도 심했다. 이게 정말 맞는 것인지 수없이 반문했다. 내가 곡소리를 내며 너무 힘들어서 6개월이나 괜히 등록한 것 같다고, 이렇게 까지 아픈 게 맞냐고 물을 때마다 남편은 "너무 잘하고 있어. 원래 그래. 안 쓰던 근육들이 늘어나고 새로 생기면서 아픈 거야. 이것만 지나면 괜찮아져. 계속 다녀봐. 되도록 매일 가. 나는 네가 운동 다니니까 너무 좋아."하고 말했다. 나는 아픈데 즐거워하는 남편을 보며 은근히 괘씸한 생각이 들어서, 나도 남편이 수영을 쉬려고 할 때마다 안된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도 다녀왔는데, 오빠도 가야지."


이렇게 동그랗게 마주 보고 운동을 한다. 민망함과 든든함이 공존하는 진영


  2개월 안에 30회 이상을 출석해 양말을 선물 받았다. 피트니스 이름이 쓰여 있어서 평소라면 거들떠도 안 봤겠지만, 내가 뭔가 해낸 것 같아 감격스러웠다. 내 한계를 뛰어넘어 아파도 참고 다닌 상급 같았다. 다닌 지 3주 정도가 되자 체형의 변화가 느껴졌다. 허리가 꼿꼿해지고 어깨가 펴지고 옷맵시가 더 좋게 느껴졌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이 교복 치마 아래로 드러난 내 다리를 보며 '닭백숙'이니 '뼈다귀 앙상블'이니 하는 별명을 붙였다. 너무 마르고 하얘서였다. 그 탓에 마른 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었는데, 운동을 하며 내 몸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됐다. 말라도 건강하게 마르자, 튼튼한 근력으로 일상에 충실한 삶을 살자 라는 생각이 싹텄다. 남이 내 몸을 바라보는 것보다 나 스스로 내 몸을 받아들이고 신체의 움직임을 알며 미세한 변화를 깨닫는 기쁨이 생겼다.


  피트니스에 가면 대부분 몇 년씩 다닌 분들이 많다. 비슷한 연배의 분들이라 많이 친해 보인다. 그분들은 거의 쉬지 않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 사이에서 운동하려니 처음엔 조금 뻘쭘한 기분이 들었는데 이젠 마주치면 인사하고 조용히 내 운동을 하고 온다. 운동을 하러 갔으니 운동을 하고 오면 된다.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도 늘 상냥하게 내 자세를 자주 봐주시고, "오늘은 밥 먹고 왔어요? 든든하게 먹어야 해요. 단백질도 먹고, 고기도 먹고. 먹기 싫어도 잘 챙겨 먹어야 근육이 붙어요."하고 챙겨주신다.


  5월에 등록해서 7월 중순을 향해 간다. 스쿼트도 좀 더 많이 할 수 있게 됐고, 유압식 기구라 빠른 속도로 무거운 무게를 들면 슉슉 소리가 나는데 드디어 나도 소리가 난다. 한 번은 목소리가 크신 분이 "아이고. 그렇게 말랐는데 거기서 살 더 빼면 큰일 나."하고 나를 보고 말할 때가 있었다. 사람들이 모두 쳐다봐서 당황스럽긴 했지만 당당하게 대답했다. "하하하.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니고 근력운동하러 왔어요"


  한 달마다 인바디 검사를 하는데 솔직히 좀 기대를 했다. 이렇게 열심히 했으니 뭔가 변화가 있지 않을까? 저체중, 저근력에서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기길 바랐다. 한 달 전, 등록할 때 인바디 검사를 한 이후 처음으로 다시 잰 것이었다. 그런데 결과가 이상했다. 기계가 오류가 난 게 아닐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분명 전에 들지 못했던 기구를 움직이고, 팔에 안 보이던 근육도 보이고 스쿼트도 잘한다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는데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체중과 골격근이 모두 빠졌다. 빠진 양이 겨우 300g 정도이긴 했지만 기분이 좋지 않았다. 한 달 만에 너무 큰 기대를 했나 싶었다. 이렇게 쉽게 변하진 않을 텐데, 앞으로 더 꾸준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처음으로 운동이 재밌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운동할 때 기구에서 슉슉 소리가 나면 쾌감이 든다. 어제보다 스쿼트를 시간 안에 몇 개 더 하면 자랑스럽다. 하루하루 늘어나는 운동 횟수와 어플에 연동되어 나오는 꾸준한 운동 일지를 보면 동기부여가 된다.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는 게 참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운동을 하지 못했던 건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지 못해서 일 수도 있다. 반면 지금 맞는 운동을 찾은 것은 그동안 맞지 않은 운동들을 여러 번 시도하며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이것만이 정답은 아닐 것이다. 전에도 여러 가지 운동을 하려 노력했지만 오래 하진 못했다. 그래도 밑바닥 어딘가에 쌓여서 지금의 운동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 되고 있지 않을까? 지금도 언제까지 이 운동이 맞을지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6개월이 끝나는 올해 12월까지는 해보려고 한다. 어떻게든 매달려서 꾸준하게 말이다. 맡겨진 일, 선택한 일을 꾸준히 내해는 것. 원하든, 원치 않는 때가 오든 일단 약속한 기간을 채울 것이다. 일단 하자.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한 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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