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 마지막 날 몸이 좋지 않아 사진이 없는 관계로, 앞서 다닌 이틀간의 리스본의 사진입니다. 내용과는 관계없이 봐주시면 됩니다.
2014년
리스본에서 마드리드
일찍 일어난다고 서둘렸는데도 밖은 엄청 밝았어. 이미 한낮 같았지.
오늘도 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에서 시작. 걸어서 페드로 4세 광장을 거쳐 어제 들렸던 피게이라 광장까지 걸어갔어. 이대로 직선으로 길을 따라가면 코메르시우 광장까지 갈 수 있어. 그리고 그곳에서 타구스 강도 볼 수가 있지. 어제 다니며 광장에서 광장으로 이어가는 코스를 생각해뒀어.
엽서 보내기
어제 엽서를 보내려 잠시 이 근처 우체국을 들러서 길은 이미 잘 알고 있었어. 잠시 우체국 이야기를 하자면 구글맵을 따라 우체국이라는 빨간 건물 앞에 섰어. 간판에는 나팔 불며 말 타는 아저씨 그림과 ctt라고 적혀 있고 내부는 상점 같아 보였어.
정말 제대로 찾아온 건가 의심하며 들어갔더니 안쪽에 우편 업무를 하고 있었어. 입구에 엽서며, 휴대폰 충전기 등 다양한 잡화도 팔고 책을 많이 팔고 있어서 서점의 팬시 샵 같았어. 다른 우체국과 조금 다른 분위기였어.
그곳에서 엽서를 사고는 구석에 테이블로 가서 테이블에 꼬불꼬불한 고무로 이어진 볼펜으로 내용을 썼어. 요즘에는 쓰지 않지만 어릴 적 은행이나 우체국 가서 보던 물건이었어. 역시나 이곳에도 볼펜 없는 지지대가 테이블에 붙어 있었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어. '이런 건 어디 가나 똑같구나.'하고 말이야.
다 적고는 번호표를 뽑고 대기하는데 생각보다 기다렸어. 손님이 많았거든. 한참 지나 내 차례가 되자 직원에게 엽서를 드렸어. 이곳에는 우체통에 안 넣고 바로 직원이 처리해주셨어. 이런 게 편할 텐데 왜 다른 곳에는 우체통에 넣어서 두 번 일할까?
아무튼 또 다른 점은 이곳에는 뭔가 편안하게 일하는 느낌이 들었어. 손님들도 다들 아는 사이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야. 포르투도 그렇지만 다들 서로 아는 사람들 같아.
포르투갈에서 엽서를 보내고 싶다면 빨간색의 ctt!! 우체국이 맞으니 나처럼 앞에서 어물적 거리지 않아도 돼~
헤스타우라도레스 광장
리스본에서 더위 먹기
아무튼 오늘로 돌아와 코메르시우 광장을 향해 걸어가는데, 벌써 햇볕에 녹을 거 같았어. 그리고 오늘은 특히 사람이 더 많은 거 같았어. 그런데 일자로 쭉 뻗은 이 거리는 그늘 한 점 없었어. 리스본 와서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햇볕이 강한데도 가림막도 없고 심지어 처마도 너무 짧아 그림자가 바닥에 닿질 않아. 그늘이 있는 곳을 찾아 얼굴만 그늘 속에 넣어두고 서 있었어.
그때, 경찰로 보이는 제복 입은 사람이 전동 휠 쉐그웨이를 타고 가는 걸 봤어. 오래된 건물과 달리 리스본은 상당히 앞서 있는 곳이었어. 와이파이도 다른 유럽 도시에 비해 쉽게 이용할 수 있고, 빠르게 변화하는 곳이었어. 역시 미지의 바다를 건너 다니던 후예들이라 새로운 것을 찾고 받아들이는 데 빠른 거 같아. 혼혈도 많아서 인종차별도 유럽 도시에서 적은 편이라고 들었어.
벨렝 탑 근처 공원
그만 쉬고 세그웨이를 따라 코메르시우 광장으로 갔어.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핑 돌고 구역질이 났어. 주위 소음이 크게 들리며 웅웅 거렸어. 그래서 형에게 어지럽다고 했더니 '너 얼굴이 너무 하얗다고, 많이 안 좋아 보인다'라고 했어.
구석으로 걸어가 앉았더니 어지러운 게 조금 나아졌어도 토하고 싶은 느낌이 사라지질 않았어. 그곳에서 크게 숨을 내쉬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어. 형이 물을 주어서 잘 마시지 않는 물을 한참 마셨어. 그러니 조금 괜찮아지는 거 같았지. 결국 게하로 다시 돌아가야 했어.
게하 사장님께 말씀드리니 비상약을 하나 주셨어. 그리고 원래 있던 6인실에는 다른 여행객이 오기로 해서 짐을 2인실로 옮겨 놨으니 그곳에서 쉬다 가라고 하셨어. 내게 만능 통치약 같은 컵라면을 꺼내서 형과 하나씩 먹으니 오히려 열이 내리기 시작했어.
그래서 리스본 여행은 어쩔 수 없이 그만하기로 하고 공항 가기 전까지 자기로 했어. 게하에는 이미 다들 여행 나가서 사람이 없어도 새로운 여행객이 드나들었지. 다행히 2인실이라 조용히 잘 수 있었어.
한숨 자고 났더니 괜찮아졌어. 형이 제대로 더위 먹은 거 같다는데 더위 같은 걸 먹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제대로 안 것은 '다시는 먹고 싶지 않아'. 맛없어..... 형과 사장님, 컵라면 덕분에 더위를 금방 쫓아내서 다행이야.
제로니무스 수도원
리스본 포르텔라 공항에서
비행기 시간에 맞추어 사장님께 감사와 작별 인사를 전하고 지하철로 향했어. 한적한 골목이 떠나가는 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 뭔가 허전했어. 그렇게 덥던 아침이었지만 내려가는 길에는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 나뭇잎이 떨어질 정도야. 그다지 한 거 없는데 정들었나 봐. 그것보다 익숙한 동네 같아서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거 같아.
헤스타우라도레스 지하철 역에 오니 골목과 달리 사람들이 많았어. 안녕 리스본 하고는 지하철을 타고 공항으로 향했어.
공항에는 광장과 지하철보다 더 많은 인파로 채워져 있었어. 여행 중에 비행기를 많이 탔지만 이 정도 붐비는 건 터키 아타튀르크 공항 이후 처음인 거 같았지. 빨리 벗어나고자 조금 일찍 게이트로 향했어.
원래 사람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검색대가 길어서 레일 위에 가방과 여권을 놔두었어. 그리고 여직원이 내 여권을 보더니 대뜸 본인 여권 맞냐고 물어봐서 그렇다고 대답했어. 그랬더니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여권이 예쁘다고 했어. 아마 포르투갈 국기 바탕색이 초록색이기 때문에 말했던 거 같아.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잘 모르는 눈치였어. 그래서 동아시아라고 설명하는 도중에 검색대에 도착했지. 그래도 여권이 마음에 든다고 해서 왠지 기분이 좋았어. 하지만 곧 일어날 일의 등가교환 같은 일이란 걸 몰랐지.
포르투갈 대성당
검색대를 지나자 검색대 뒤에 있던 직원이 내 가방을 대뜸 열라고 하는 거야. 그래서 열어줬더니 마구 헤집더라. 아, 가방 검사는 예전에 한국에서 한 번 당한 적이 있었어. 그때 정말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서 짜증 났는데 역시나 헤집다 못해 밖으로 마구 꺼내놓더라.
당연히 걸릴 게 있나. X-ray 모니터를 보던 직원에게 말하더니 그 직원이 모니터에 있던 한 물건을 가리키며 이걸 찾으라는 거야. 그래서 다시 내 가방을 뒤져 먼가 집어 들었어. 그건 카메라 렌즈 세척액이었어. 이거 엄청 작아. 규정인 100ml는 어림도 없어. 10ml도 되려나. 이걸 매번 여기에 넣고 다녀도 검문에 걸린 적이 없는데 짜증 잔뜩 나더라. 뭐 문제없이 통과지.
가방을 뒤지려면 다른 곳에 옮겨서 하던가. 뒤에 있는 가방들이 밀려와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하고 마구 쑤셔 넣었어. 엄청 붐비는 공항이었으니까. 당연히 본인들 일을 할 뿐이니 사과 한마디 있나. 백인 여자 한분과 흑인 여자 한분이었는데 'that's ok'라는 한마디가 너무 밉더라. 그런데 가방 여는 것만 승객이 직접 하라는 걸 보면 열다가 폭탄 같은 게 터질까 봐 그러는 건가?
아무튼 가방을 다 챙기고 가려는데 여기에 기다리래. 아, 또 뭐야. 신체 소지품 검색도 한다는 거야. 확인했잖아. 별거 아니란 거. 그러고 보니 검색대 직원들이 전부 여자들이었어. 이것도 설마 여자 직원이 하나 싶었어.
그때, 안쪽 복도에서 은발의 한 아저씨가 다가왔어. 그리고 신발을 벗고 비닐 덧신을 신으라고 주더라고. 정말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사했어. 그런데 아주 친절하셔서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았어. 매번 익스큐즈 미라고 말하고 발 검사할 때는 의자에 앉게 하더니 본인이 무릎 꿇고 하셔서 부담스러웠어.
다 끝나고 땡큐라는 말과 차렷 자세에 고개를 살짝 숙이시더라고. 그래서 같이 고개 숙여 인사했지. 마치 동양 문화를 아시는 듯한 자세였어. 그리고 밝게 미소 지으시는데, 이런 일의 전문가라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는 것 같았어. 다들 나처럼 기분 나쁜 상태이니까. 하지만 아저씨의 자세와 예의에 나쁜 기분은 사라졌어. 진정한 프로를 만난 거야. 친절이란 작아 보일 뿐 실제로는 정말 큰 거 같아. 한 사람의 마음을 덮어 줄 정도로.
베라르도 미술관
다시 스페인
리스본 면세점이 생각보다 컸어. 대항해시대 리스본에는 더 신기하고 많은 물건들이 있었겠지? 구경하다 보니 금방 탑승 시간이 되었어.
그리고 금방 마드리드 도착. 하지만 휴대폰을 켜고 시간을 확인하니 한 시간이 더 지났어. 시차의 마법이지.
바르셀로나에서 마드리드를 바로 가지 않고 포르투, 리스본을 거쳐 온 것은 이렇게 가는 게 비행기 값이 더 저렴해서야. 비행기는 요일별로 운항구간이 다르고 요금도 다르니까.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2주 동안 이동 편을 검색해 본 결과지.
참고로 유럽은 로마, 파리, 바르셀로나, 런던을 중심으로 비행 편이 구성되어 있는 거 같았어. 즉 이베리아 반도는 바르셀로나를 통해 출입하는 비행 편이 가장 많고 가장 저렴해. 만약 나처럼 주로 비행기로만 이동한다면 앞서 말한 공항들을 중심으로 짜면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도 6년 전 일이니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
마드리드 지하철과 교통 카드
공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도심으로 이동했어. 마드리드 지하철도 이용하기 어렵지 않아. 바르셀로나랑 같은 스페인이니 당연히 똑같아. 다시 말하면 한국의 예전 종이 티켓과 같은 형태고 하얀색이란 것만 달라. 예전에 하얀색도 있었나? 아무튼 여기도 구역제인데 관광지는 대부분 zone A라 상관없을 거야. 그리고 티켓을 살 때 도착역을 지정하기 때문에 그에 해당하는 요금을 지불하면 돼. 마지막으로 트램, 버스, 지하철 티켓이 모두 동일해.
추가로 이곳에도 마드리드 카드가 있어. 지정 시간 내에 대중교통과 관광지 무료입장, 상점, 레스토랑 할인까지 가능해. 빠르게 열심히 다닌다면 유용하겠지? 또, Abono transportes turistico (여행자 카드)는 교통만 지정 시간 안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 자신의 여행 타입에 맞춰 구매하면 더 이득이겠지.
형과 나는 더운 날씨라 가까운 곳만 천천히 다니기로 했어. 특히 마드리드는 이베리아 반도 한가운데 내륙이라 엄청 덥데. 더 이상 더위 먹고 싶지 않으니까. 열심히 다닐 때가 있었지만 이번 유럽여행의 원래 목적은 천천히 다니기니까.
공항에서 도심 가기
공항에서 메트로 표시를 따라 한참을 걸어가면 공항 역이 나와. 이게 8호선으로 이걸 타고 종점까지 가서 원하는 역에 가는 노선으로 갈아타고 가면 돼. 우리는 종점에서 환승 후 한번 더 환승해서 Ópera역에 도착했어. 공항버스가 싸면서 가장 편하다고 들었지만 정류장과 숙소가 너무 멀어. 어차피 또 갈아타야 해서 번거럽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했어. 그리고 학창 시절부터 지하철만 타고 다녀서 어딜 가나 지하철이 쉽고 편한 거 같아.
Ópera역도 게하에서 멀어서 10분 이상 걸어가야 했어. 조금 힘들긴 해도 가는 길에 잠시 마드리드 구경을 할 수 있었지. 그런데 이미 노을이 져 어둑어둑해지고 있어서 많은 걸 볼 수는 없었어. 그러다 넓은 공원에 들어왔더니 노랫소리가 들렸어. 노래를 따라가 성악을 전공하는 대학생의 버스킹을 볼 수 있었어. 그 노래에 새로운 여행지에서의 긴장이 녹는 듯했어.
게하에 도착해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저녁을 먹기 위해 짐만 놔두고 잠깐 나왔어. 아침에 고생해서 무리하지 않기로 했어. 그래서 저녁을 먹고 잠깐 공원 산책 정도만 하고 다시 돌아와서 일찍 쉬었어.
이번 편은 분량 때문에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매번 너무 길어서 걱정이었는데 이번에는 너무 짧아서 걱정이에요. 더욱이 사진도 없어서 글로만 전해드려야 하니까요. 여러 생각 후, 컨셉대로 하루 내용을 한편씩 전해드리기로 결정했어요. 이럴 땐 기본을 지키는 게 좋은 거 같아요.
제가 유명 작가는 아니지만 웹툰 분량 적다고 댓글을 많이 봤는데 작가들의 마음을 알겠네요. 그래도 재밌으면 괜찮은데 그렇지 못할까 봐 더 걱정이네요. 걱정이 태산이라 넋두리도 태산같이 되어버렸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