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기원을 읽고
일요일 오후에 밀리의 서재에서 읽기 시작한 '행복의 기원/서인국'을 그날에 독파했다. 책을 빨리 못 읽어 아무리 재미있는 책도 2박 3일이 걸리는 내게 매우 이례적이다.
변덕스러운 나의 마음을 읽기 위해 힐링, 느림, 자존감 등 행복에 관한 책을 수도 없이 봐오며 '거기서 거기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쯤 신선하고 통찰력을 주는 책을 만난 것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다 빈도다'라는 이야기는 상식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금방 적응해버리는 동물이라는 것은 나 자신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지에 대한 대답을 해주는 책은 없었다.
대부분의 책이 'HOW'적 접근이라면 이 책은 'Why'적 접근이라는 데 신선함이 있다.
이 책의 해답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우리의 생각과 행동 기원은 생존을 위해 설계되었다는 것이다.
행복이라는 감정도 생존을 위한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장치다.
고기를 먹으면 기분이 좋지만 그 기분이 제로로 세팅이 되어야 즐거움을 다시 느끼기 위해 사냥을 하러 나갈 수 있다.
모든 긍정 감정(행복)도 생존을 위한 행동을 다시 유도하기 위해서는 얼마 못가 제로로 세팅이 되어야 한다.
계속 기분이 좋고 매사 만족스러우면 누워서 아무 행동도 안 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복권 당첨도 며칠 못 가서 적응의 마법에 걸려 만족감이 제로로 세팅된다.
충격적인 것은 복권 당첨 같은 강한 자극에 노출되면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기쁨에 대한 더듬이가 무뎌지는 부작용까지 생긴다고 한다.
명예퇴직하고 몇 년간 세계여행을 하던 분이 처음에만 즐거웠지 금장 시들해졌다고 하는 이야기도 생각났다.
밥 세 끼만 해결된다면 행복은 돈과 크게 상관관계가 없다고 한다.
객관적인 외모도 상관관계가 없고 나의 외모에 대한 주관적인 생각은 상관관계가 있다고 한다.
즉 얼마나 가졌나 보다 내가 가진 것을 어떻게 평가하고 좋아하느냐가 관건이다.
또한 돈, 외모, 사회적 지위 등 외적인 요인은 행복과 관련이 거의 없지만, 기질이나 성격, 신경증 같은 유전적인 요인은 상관관계가 높은 편(50%)이다.
저자는 자신의 여동생이 행복지수가 높다면서 행복 달리기를 할 때 남들보다 10미터 먼저 나와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여동생이 부럽냐고 물으면 꼭 그렇지는 않다고 한다.
행복은 인간이 가진 여러 특성 중 하나일 뿐이니 그것을 맹목적으로 쫓을 필요가 없다고 한다.
저자가 우연히 지나가다가 구청에 걸려있는 "행복 100%"라는 현수막을 보고 저게 무슨 뜻인지 의아했다고 한다.
중세 때는 구원이 최고의 가치였던 것처럼 시대에 따라 추구하는 가치는 변하며 현재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도 절대적인 가치는 아니라고 한다. 불안, 분노, 슬픔 등 부정적인 감정도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이니 모두 소중하다고 한다.
9.11 사태 때 처음 빌딩이 폭격을 당했을 때 바로 옆 빌딩까지 진동이 와서 사람들이 비상계단으로 다 몰려들었다고 한다. 그런데 안내방송에서 폭격을 당한 것은 옆 빌딩이니 사무실로 돌아라고 했다.
일부 긍정적인 사람들은 괜찮겠지 하고 사무실로 돌아갔고 불안도가 높은 까칠한 사람들은 안내방송을 무시하고 뛰쳐나왔다. 곧이어 옆 빌딩도 폭격을 당했고 최악을 상상하는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불편한 감정인 불안이 시도 때도 나와서 문제이긴 하지만 생존에 필요한 기술로 예민한 기질 덕에 살아남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이다.
어느 뉴스에서 의사, 검사 등 전문직의 기질을 조사해 본 결과 부정적 기질의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어느 정도 걱정과 불안이 있어야 노력을 하지 마음이 너무 편하면 뭘 하겠냐 싶기는 하다.
그렇다고 마음 편하고 행복한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행복만 우선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잘 다루고 지속적으로 생존하는 게 목표니까 모든 감정이 다 소중하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추구하는 자아실현도 생존 본능과 연관이 있다고 한다.
원시 시대 때 현재 자원에만 만족하지 않고 미지의 자원에 대한 호기심과 발견이 생존에 필요한 기술이었다고 한다.
탐구력, 도전정신, 자아실현 같은 생존과 당장 연결되지 않는 기질에 행복 회로 가 반응하는 것도 결국 장기적인 생존을 유도하기 위한 감정 반응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충분히 먹을 수 있는 것, 추위와 위험을 피하는 것이 행복이었다.
이런 것들이 해결된 현재는 권태와 무기력이라는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고통보다 괴로울 수 있는 것이 권태라고 한다.
그래서 요즘은 행복한 삶보다는 풍요로운 삶에 대한 개념이 떠올랐는데 이는 항상 기분 좋은 것이 아니고 삶의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 긍정적 감정과 부정적 감정을 다채롭게 느끼는 삶이라고 한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집단주의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면서 남에게 좋아 보이는 삶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정욕구를 버리고 내가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추구해야 한다고 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므로 미래의 기쁨도 슬픔도 생각보다 금방 잊히는 데 사람들은 그것을 확대해석해서 현재를 살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현재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사람이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는 사람보다 하루의 삶의 밀도는 엉성해 보여도 10년 뒤에는 오히려 더 잘 산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모든 감정은 소중하니까 계속 행복하다고 좋은 것은 아니다.
행복만을 무조건적으로 쫓을 필요는 없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고 긍정적인 감정만 느끼고 싶은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진다고 해서 몰아내지 못하는 나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소소한 즐거움에 대한 감각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큰 즐거움보다는 소소한 즐거움을 일상에 얼마나 많이 두고 잘 느낄 수 있느냐가 행복의 핵심 열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