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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온써니 Jul 27. 2024

인간은 나약한 존재

의지의 문제가 아닐 수도

글쓰기 모임 숙제로 동물 or 식물에 관한 글을 써야 한다.

동물과 식물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나에게 난해한 주제다.

집 앞 공원만 잠깐 나가도 아니 공원까지 가지 않더라도 강아지들이 사람만큼 많다.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도 없기에 ‘반려동물’ 하면 사랑이나 기쁨보다 노동력과 비용이 먼저 떠오른다. 솔직히 그보다 더 무서운 건 한 생물체에 대한 책임감의 무게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굳이 하나를 더 보태고 싶지 않다.

(평소에 나의 어깨가 너무 무거운가? ㅠ)

 

수고를 감내할 만큼 반려동물을 통해 기쁨을 느끼는 주변을 보면 그런 감정에 대해 호기심이 일고 죽기 전에 한 번쯤 느끼고 싶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며 행동으로 가지는 않는다. 

 

식물도 다르지 않다.

우리 집에 왔던 화분들은 내 손을 거쳐 모두 다 죽어 나갔다. 

친정엄마는 화분을 참 잘 키우셨는데 보고 자랐다고 배우는 건 아닌가 보다. 반려 식물 이야기를 읽으면 태생적으로 식물 친화적인 것 같은 저자도 사실은 여러 번의 쓰디쓴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터넷으로 저렴하고 이쁜 옷을 잘 사는 직장동료에게 비법이 뭐냐고 물었더니 많이 사 보고 실패하면서 내게 맞는 쇼핑몰과 옷을 알게 된다고 했다.

 

결론은 노력과 반복되는 시행착오와 실패 그리고 성공

내 손만 거치면 식물이 죽는 태생적으로 식물과 친화적인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하려 했는데 안 통할 듯하다. 노력의 부족이니..

어쨌든 식물과 동물에 시행착오를 겪을 만큼 시간과 정성을 투자하고 싶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글쓰기 숙제를 하고 써야 할 분량이 있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거리에 나무들을 보면 마음속에서 좋은 느낌이 몽글몽글 일어난다.

엄마가 사주를 보았는데 나는 가는 덩굴 나무라고 한다. 벽을 타고 올라가는 덩굴처럼 환경에 맞게 요리조리 구부러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단다.

진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동물과 식물 통틀어 내가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거리에서 보는 꽃과 나무 그중에서 특히 나무다.

 내가 나무라 동족을 알아보는 것일까?

 

예전에 중요한 시험공부로 힘들 때 도서관 안에 있는 나무들이 위로해 주고 따뜻한 말을 해주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좀 이상한 현상이긴 했다. 마음이 힘들 때는 무엇이라도 붙들게 되고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위로를 받는 것 같다.

 

지금도 자잘한 스트레스는 수도 없지만 그때만큼 생존을 위협하는 스트레스는 없기에 나무들을 봐도 ‘그냥 좋네’ 하는 가벼운 느낌으로 지나친다. 

자질구레하게 챙겨야 할 스케줄이나 소소한 고민들이 머리에 뒤죽박죽된 체 나무에 깊이 말을 걸 여유가 없다. 

마음에 깊은 어려움 없으니 자연에게도 깊숙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 때문에 ‘미미미누’가 운영하는 입시 유튜브를 자주 본다. 

어떤 사연자가 군대에서 생각해 보니 자신은 공부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며 제대 후 1년 동안 죽을 만큼 공부해서 인 서울 공대에 가고 싶다고 했다. 현재는 전문대에 다니고 있다고 한다.

 

미미미누 게스트인 윤도영(무물보의 서장훈 같은 캐릭터로 서장훈과 함께 내 스타일이다.)은 이렇게 대답했다.

" '죽을 만큼 공부해 보겠다.'라는 것은 추상적이다. 공부 근력도 서서히 키워지는 거다. 막상 해보면 생각만큼 되지 않을 거다.  

집안이 망해서 내가 안 하면 우리 식구들이 다 쓰러진다는 절박한 상황이 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동력은 그 공부를 해내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운도영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성향이 아니라 외부적인 상황 즉 절박한 환경의 부족 때문에 안 될 거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신박하다고 생각했다. 절실함을 억지로 만들 순 없지 않나?

내가 나무를 보면서 절박할 때는 위로를 느꼈는데 왜 지금은 그 때의 느낌이 안 살아나지?라고 생각하면서  나무를 뚫어지게 바라본들 지금은 그 상황이 아니기 때문에 되지 않는다. 그건 내 잘못이 아니다.

 

고로 무탈한 일상에 감사해야 하고 소소한 행복을 느끼면서 살자고 다짐해도 생각만큼 안된다고 자신을 탓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큰 스트레스받는 일 생기다가 해결되면 느끼지 말라고 해도 감사한 마음과 행복이 저절로 샘솟는다.

오래 못 가는 게 문제긴 하지만... 

평상시 때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해도 개인적 성찰, 지혜의 부족 혹은 노력의 문제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가 횡설수설 이상한 대로 흘렀지만 어쨌든 숙제 분량은 채웠으므로 마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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