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학생들의 다양한 사례들
목동 이사 오기 전에 고민했던 부분은 크게 두 가지다.
‘과연 올바른 선택일까?’
‘아이가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4학년 때 공부 1도 안하고 교육청 수·과학 영재교육원에 합격(우리 학교가 영재교육원 운영 기관이라 모교 재학생을 무조건 4명 뽑아주었다.)하면서 그때쯤인가 대형 학원 영어 레벨 테스트에서 언어 영재라는 말을 들으면서 목동을 향한 남편이 마음은 확고해진 듯했다. (지금 학업 상태로는 초등학교 때 이런 애였는지 상상하기 어렵다. ㅠㅠ)
4학년 겨울방학 때 분양받은 아파트에 입주했는데 2년 의무거주 때문에 초등 6학년 겨울방학에나 목동으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토록 원하던 새집에 살면서도 2년이 지나면 떠야 한다는 생각에 크게 정이 가질 않았고 애는 목동에 안 간다고 펄펄 뛰니 나의 마음은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있었다.
‘중 1이면 한창 사춘기인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면 어떻게 하지?’
‘공부야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데 가기 싫다는 애를 꼭 끌고 가야 하나?’
‘초등 저학년 때는 가야 공부를 따라잡을 수 있지 않을까?’
‘애를 설득해야 하나? 남편을 말려야 하나?’
두 가지 갈래길 앞에 서서 방황하다가 목동에 사는 직원이 떠올랐다. 중학교 입학할 무렵에 남매 교육을 위해 이사했는데, 고등학교 때 한 명은 자퇴하고 한 명은 휴학했다고 했다.
“나는 신중히 결정하라고 말하고 싶어. 애들이 원해서 갔는데도 힘들어하더라고. XX중학교로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목동에서도 좀 드센 곳이었어. 우리 아들이 예민하긴 해. 성적, 인간관계, 생활격차로 스트레스받고, 외톨이처럼 지냈나 봐.
애들이 난리를 치니 케어하느라 나도 휴직하고 힘들었지. 아들은 부산대학교 가서 집을 떠났는데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어, 딸은 고려대 갔는데 다행히 대학 입학한 후로는 아주 신났어.”
‘아주 신났어.’보다 ‘자퇴’,‘휴학’,‘휴직’이라는 단어가 크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주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한 나의 탐문이 시작되었다.
중학교를 입학하면서 경기도에서 대치동 학원가로 들어간 직원이 있었다. 집이 말로만 듣던 타워팰리스 바로 건너편이라고 했다.
“선생님~ 애들 잘 지내요?”
“우리 애들은 너무 적응 잘해. 여기 애들 엄청 순하고 착해”
“어머! 대치동 아이들은 공부에 치여서 성격이 안 좋을 것 같은데 아닌가 봐요”
딸을 다른 구에서 목동 학원으로 매일 픽업해 준다는 친한 직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선생님~ 매일 학원 데려 주는 거 힘들지 않아?”
“힘들지. 나도 목동으로 이사 가려고 했지. 애가 친구 때문에 절대로 안 간다고 해서 못 갔어.
애가 외고 가기를 간절히 원했거든.
(현재에 충실한 해맑은(?) 딸을 보며, 초등학교 때 이런 진취적인 생각을 하는 아이가 있다는 게 신기했다.)
외고 때문에 중학교 입학하면서 목동 학원 보냈는데, 지금은 목동 친구들하고만 어울려 다녀. 애들이 엄청 착하고 순하대. 2학년이 되니 본인도 이사를 원했는데, 목동 학교 시험 문제지 보더니 너무 어렵다면서 내신 때문에 무서워서 못 가겠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애랑 내가 이 고생을 하는 거지. 초등 6학년 겨울방학이면 늦은 거 아니니 애가 뭐라든 그냥 데리고 가. 나도 외고 떨어질 걸 대비해서 고등학교 입학 전에 양천구로 들어갈 예정이야. 양천구로만 들어가면 목동에 있는 일반고 지원 가능하대 ”
이 직원은 2020년에 양천구로 이사했고, 딸은 결국 2021년에 유명 외고에 합격했다.
첫 번째 안 좋은 경우와는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흔들렸다.
엄마들 말이 아니라 학생들의 말도 들어봐야 했다. 내 주변에 친한 중고등학생이 없어 그나마 나이가 어린 도서관 공익과 알바생에게 물어보았다.
연세대 다니는 공익은 중학교 때 목동으로 이사 왔다고 했다.
”목동으로 이사했을 때 마음이 어땠어요?“
”저는 적응이 힘들었어요. 특히 교우관계가요. 그래서 중학교 때 공부에서 손을 놨어요. 저는 어디에 가든 마음만 먹으면 잘 할 수 있으니 목동갈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목동 이사 추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그렇게 안 하고 어떻게 연세대를 갔어요?“
”고등학교 때 정신 차렸죠.“
”아~ 그렇군요.“
우리 동네에서 중학교 나오고 외고합격하여 서울대 갔다는 우리 딸 친구 언니가 떠올랐다.
'그래, 마음만 먹으면 어디서든 잘할 수 있지. 꼭 이사갈 필요가 있을까?'
주말 알바생에게도 물어봤다.
”대학생이니까 요즘 분위기 잘 알 것 같은데, 목동 이사 어떻게 생각해요?
“저는 일반고 나왔는데요, 자사고 갈까 하다가 내신 생각해서 간 건데 너무 후회돼요. 저는 고등학교 때 전교 1등이었거든요. 2학년 때까지 당연히 ‘스카이’간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고3 모의고사 보고 충격을 받았죠. 그때부터 마음 잡고 죽기 살기로 했는데도 다 열심히 해서 그런지 한계가 있더라고요.”
“중앙대 문헌정보학과면 좋은 대학 갔는데 뭘 그리 후회해요?”
“저는 아쉬움이 남아요. 주변 분위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목동으로 이사하시길 추천해 드려요.”
2020년 딸이 서울대 수학과에 수시입학한 직원에게도 연락했다.
“우리 애가 XX 고등학교(일반고)에서 완전 탑이었잖아. 의대가 목표였고 무조건 합격할 줄 알았지. 고3 때 1시간에 몇십만 원 하는 대치동 입시컨설팅에서 상담받았는데 고등학교가 안 좋아서 의대 수시는 포기해야 한대. 서울대 수리과학부를 추천하더라고, 애를 설득해서 결국 보냈지. 요즘은 수학과도 진로가 다양하니까.”
여러 사람의 말을 들으니 점점 더 혼란스러웠다.
그 와중에 목동 이사로 마음을 굳히게 된 결정적인 분이 있었으니, 바로 목동에 있는 중학교에서 근무하시는 현직 사서 선생님이었다. 선생님 따님이 우리 딸과 동갑이라 교육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제가 다녀보니 애들 너무 착해요. 저도 여건만 되면 이사하고 싶어요. 직장 다니니까 애들한테 세밀히 신경 쓰기가 어렵잖아요. 여기는 대체로 아이들이 순해서 이상한 방향으로 빠지지 않아 안심될 것 같아요. 사춘기 때는 친구가 인생의 1순위잖아요. 분위기가 중요해요. 고민하지 마시고 오세요.“
사서 선생님 말씀대로 애가 6학년이 되니 친구가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온종일 핸드폰을 보 있길래 시간 좀 줄이라고 했더니 누구는 자기보다 더 많이 한다며 친구를 기준으로 삼았다.
진한 화장으로 엄마들이 싫어하는 아이가 우리 딸이랑 친해졌다. 말을 들어보니 언니들이 많아서 화장을 좀 일찍 시작한 거지 그리 나쁜 애는 아닌 것 같았다. 그 친구는 우리 애가 다니는 영어 학원을 다니고 싶어했는 데, 자녀가 많아서 경제적 사정으로 못 보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보드 관련 카톡 오픈 채팅방에서 만난 사람들과 월드컵 경기장에서 보드를 탄다고 자기도 따라간다고 했다. 채팅방에서 알게 된 사람과는 만나는 거 아니라고 했다. 다른 친구들이 이미 여러 번 만났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난리를 쳐서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겨우 허락하긴 했지만 영~ 탐탁지 않았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게 이런 것일까?
‘이사해야겠다.’
목동 소재 중학교 사서 선생님의 말씀을 믿어보기로 했다. 다행히 2년 동안의 세뇌 교육으로 아이는 목동으로 당연히 가야 하는 줄 알고 받아들였다. 과연 아이는 잘 적응 할 수 있을까?
(지금은 이사한 지 6개월 되었습니다. 적응 이야기 계속 이어집니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