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다짐했던 인생 첫 수영강습
2022. 8. 17
석 달간 받아온 심리상담을 종결했다. 10회기 동안 '슬픔'이라는 막으로 겹겹이 쌓여있는 감정들을 세밀하게 살필 수 있었다. 가족사를 입으로 직접 뱉어내면서 제3의 눈으로 재해석할 수 있었던 지점도 좋았다. 하지만 비용에 대한 부담과 어딘가 만족스럽지 못한, 가려운 데를 정확하게 긁어내지 못한 찜찜함을 안고 상담을 끝냈다. 스스로의 힘으로 마음의 습관을 잘 만들고 훈련하는 과정을 잘 해내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날 일기에 이렇게 썼다.
"수영을 배우고 싶다. 물에 뜨지도 못하는 쫄보인 나지만,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하면 행복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배우고 싶었는데 가난은 기회를 주지 않았다. 대학생 때도 돈이 없었고 아르바이트하느라 바빠서 다니지 못했던 수영. 숨을 참고 물에 뜨는 법부터 차근차근 배우면서 나의 마음의 기본기도 탄탄하게 다지고 싶다. 미루지 말고, 등록해야지. 내일은 꼭 전화해서 등록할 거다."
2024. 3. 4
2년 전의 나는 선착순에 밀려 결국 수영을 배우지 못했고, 마음의 습관을 잘 만들지도 못했다. 취재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체력과 심력 둘 다 달렸다. 약은 꾸준히 먹었지만 그때그때의 증상에 따라 대증적으로 처방이 바뀔 때마다 약물 부작용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좌절감이 들었고, 병원을 다니는 게 무의미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 시기를 잘 넘겨야 한다는 상담사 친구의 조언에 힘입어 단약은 면했다.
고성에 이사 온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좋은 의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김천에서 잡은 약으로 그대로 처방받아서 꾸준히 먹고 있다. 작년 11월부터 지금까지 지난한 겨울을 보냈다. 계절성 우울을 겪으며 긴 겨울방학을 아이들과 함께 보냈고, 항우울제로 인한 무성욕증으로 남편과 갈등이 있었다. 최근에는 악몽으로 새벽 2시에 꼬박꼬박 깨고, 다시 잠이 들면 아이들이 깨어난 시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운동을 안 해서 체력이 말도 안 되게 쓰레기가 되었고 편두통이 심해졌다. 매일 소화가 잘 안 되고 후각이 예민해지다 못해 환각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까 엉망진창이 되고 있다.
아이들 개학날만을 기다리면서 2월 말에 충동적으로 수영강습을 신청했고 운 좋게도 추첨이 되어 나는 오늘, 인생 처음으로 수영 강습을 받았다. 무력감을 떨치기 힘들었지만 돈을 냈으니 아까워서 가긴 갔다. 숨 참는 법과 발차기를 배웠는데 둘 다 제대로 해내지는 못했다. 물을 많이 먹었고, 너무 추워서 오들오들 떠느라 온몸에 근육통이 생겼다.
또 충동적으로 신청한 정신분석 상담을 내일부터 시작한다. 개학으로 인한 조증 삽화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으로 충동적으로 신청한 것들이 나날이 연달아 쓰나미처럼 밀려오는데 이것도 이미 예약금을 냈으니 가야지. 그리고 내일은 병원도 가는 날이다. 상담 후에 병원에 가니까 의사에게도 좀 더 적극적인 태도로 내 약물치료계획에 대해 이야기나 잘했으면 좋겠다.
최악의 상태로 많은 도전을 할부 끊듯 끊어놨다. 그런데 이번엔 피하지 않고 맞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