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던 감정꼭지 개봉

더 깊이 나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

by 얄리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반쯤 감긴 눈을 비비며 방에서 빠져나오는 길, 거실 탁자 위에 사용한 티슈가 산더미인 풍경을 본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마주한 익숙한 얼굴, 눈꺼풀이 퉁퉁 불어 오른 게 꼭 원두를 닮았다. 어젯밤도 한참을 운 것이다. 근래 들어 잦은 일이다. 아마도 전날 본 드라마가 슬펐던 모양이다. 해 뜨고 나면 울 일도 아니었을 것들, 사방이 고요한 깊은 밤이 얕아진 이성의 구멍을 내고 그 틈으로 한 없이 마음을 들이 붙게 만든 까닭일 것이다. 애꿎게 드라마가 죄를 뒤집어쓰는 순간이고 깊었던 밤이 공범이 되는 순간이다. 탐탁지 않은 심증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갑자기 감정이 널을 뛰는 일. 그런 일은 뜬금없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지금의 일상이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올 때 차고 넘치는 행복과 폭풍 같은 상실감을 동시에 동반하거나, 오래전에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 두고 다시는 꺼내어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이야기가 주인의 허락도 없이 툭하고 튀어나와 하나씩 주워 담는 와중에 감당하기 힘든 그리움과 떨쳐내고 싶은 깊은 후회가 엄습할 때 생기곤 한다. 마치 삶에서 언젠가 한 번은 마주쳐야 할 운명처럼. 요동친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할 것"


어쩌면 이 주문이 그 효력을 다했다는 싸인 인지도 모른다. 어른이 된다는 미명 하에 남에게 잘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고 교육받아 왔거나 스스로 다짐하게 된 그 순간 봉인되었던 감정들이 통제권 밖으로 불쑥 머리를 내민다. 안 쓰던 마음속 수도꼭지의 피치 못할 개봉, 사용하지 않았던 감정들이 내 안에 쌓이고 또 쌓였다가 어느 시점이 되면 더 이상 가두어 둘 수 없어지는 게 아닐지. 더 세게 잠가봐야 소용이 없다. 차라리 수도꼭지를 틀어서 쌓였던 불순물을 맑은 물이 나올 때까지 흘려보내는 것이 나을 테다.


그러고 보니 굳이 가둬 둘 일도 없었다.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일, 어린 시절에는 그것이 일상이었다. 감정이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나오던 때 말이다. 그러다 나이가 들어 사회와 가정 안에서 역할을 위한 일상에 집중하면서부터는 감정의 유출 통로는 바뀌었다. 머리를 반드시 경유해야 바깥으로 내 보내지도록. 방문이 줄어든 이전 통로에는 이물질이 가득 찼고 빈번하게 방문하던 통로는 경유하고 있음을 알아챌 틈도 없이 변질된 나를 흘려보냈다. 하지만 여전히 삶 안에서 유효한 관계란 포커페이스 속의 진짜 얼굴을 들켜버렸던 이들이다.


"내 안에 있는 무엇이 감정에 스며든다"


요 근래 잦아진 감정의 요동은 무엇인가. "우리 안에 없는 것은 절대로 우리를 흥분시키지 않는다"라고 헤르만 헤세는 말했다. 감정이 들끓는 것은 그것이 내 안에 있는 무엇과 닿았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 자신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자신을 이끄는 것, 감정은 그런 일을 하기 위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 유독 요동을 치는 건 나 자신에 대한 새로운 탐사를 할 때가 지금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러니 이젠 지난날의 감정의 통로를 빠져나와 변질되지 않은 나를 찾아보러 갈 일이다. 익숙하지 않음에 당황할 것이 아니라 경로를 과감하게 변경하겠다고 선언할 일이다. 드라마가 되었든 그림이 되었든 글이 되었든 머물러 볼 일이고, 깊은 밤의 고요에 기대든 흔건하게 내려앉는 노을에 기대든 마음을 줄 일이다. 유통기한이 지나려 하는 포커페이스의 가면을 내려놓고 퉁퉁 부은 두 눈으로 휴지를 꺼내 코가 뻥 뚫리도록 풀어 재 끼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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