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관찰에 의한 개인화 과정
‘사회적 관점에서의 나’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관찰의 결과를 토대로 한 나'를 세울 시간이다. 살아온 과정에서 내가 담당했던 여러 역할들이 나 자신을 온전히 대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시점이 지금이다. 이제야 조금 자유로워졌다는 생각을 한다. "과거에는 내게 주어진 역할을 감당하는 것조차도 버거워하는 시간을 살았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지 그러지 않아도 되는 줄을 몰랐던 까닭이다. 그 사이에 나의 내면은 들끓었다. 압력솥의 증기가 뚜껑을 뚫고 뿜어질 듯 요란스러웠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보니 그런 게 틀림없다.
이전이 '사회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개인화 과정'을 밟는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 지난한 사회화 과정은 나라는 개인을 이해하기 위한 다양한 케이스 스터디였는지도 모른다. 사회를 배우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사회라는 도구를 이용해 나를 배우기 위해 사는 것 같다. 삶을 살아가며 내가 부여잡고 기록해 가는 것은 '세상에 적응하기 위한 안내서'가 아니라 '나 사용 설명서'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느끼고 움직이는 모든 것들의 작동원리, 나라는 사람이 무언가를 하도록 만드는 원리 말이다.
쓸만한 사용설명서를 얻기 위해 종종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 휴식의 시간에 반드시 타인이 함께 해야 한다는 건 아직 제대로 혼자될 준비를 하지 못한 것이다. 무리하게 시도할 필요는 없다.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될 것이다. 계획을 세우고 떠 밀리듯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그러자고 할 때 움직이는 것 그것이 혼자만의 시간에 적응할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다. 세상의 신호가 아니라 내 안의 신호.
끔찍할 만큼 힘들었던 프로젝트를 마치고 망가진 멘탈을 복구하기 위해 한 달 간의 휴가를 냈다. 그동안 '시간만 된다면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를 테면 좋아라 하는 한옥이 많은 공간을 찾아가 풍경을 둘러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사진에 담아온 후 스케치북에 옮겨 담아 보는 일이라든지, 책이 한가득인 대형 서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한잔의 커피를 홀짝이며 앉은자리에서 한 권을 모두 완독 하는 일이라든지, 관심이 가는 영화를 예매해서 대낮에 홀로 영화관을 찾아 관람을 하는 일처럼 하루에 하나씩 이벤트를 체험하는 것이었다. 마음이 동할 때 뜸 들이지 말고 움직인다.
'과연 내가 한 달간 이 일을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외출이 반복되는 날이 연이어지다 보면 때때로 외출이 일상처럼 느껴져 지루한 감이 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굳이 억지로 집을 나서려 하지 않고 머무르면서 눈에 보이는 공간 중 바꾸고 싶은 것에 마음을 두고 집안을 정리하며 다시 길을 나서고 싶은 마음이 들 때를 기다려 보기도 했다. 내가 나를 기다려 준 일이 얼마나 있었던가? 쉬기 위해 일하고 쉴 때는 다시 일할 것에 대해 생각을 했던 나였다. 머릿속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음을 내버려 두는 것, 재촉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것. 쫓기지 않는 시간 속에 머물러 본다.
우려했던 것만큼 소일할 거리가 금방 바닥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가 이벤트라고 생각하는 범위가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해 보지 않았던 요리를 만드는 일이, 무심코 서핑하다 만나게 되는 묘한 그림을 직접 보러 나서는 일이, 제법 울림이 있었던 책의 저자가 하는 강연에 참가신청을 하는 일이, 대낮에 푸짐한 회 한 접시를 배달시켜 배가 터지게 먹는 일이 모두 이벤트였다. 놀아보지 않은 사람은 시간이 남아돌아도 여유를 만끽할 수 없다. 역으로 놀기 시작하면 또 다른 놀이거리는 저절로 떠오른다. 자신이 무엇에 더 흥미를 느끼는지를 알면 그와 유사한 또 다른 무엇은 쉽게 찾아지기 때문이다.
일을 그만하게 되었을 때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넘쳐나는 시간은 넘쳐나는 새로운 관심거리들로 금세 채워질 수 있었다. 그동안 내가 삶에서 일 외에 생각하는 다른 것이 그만큼 두리뭉실했었다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일을 하지 않을 때의 그 무료함과 무기력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나를 일로 부단히 밀어 넣었는지도 모른다. 그것 말고는 다른 삶을 살아본 적이 없었고 해 보지 못한 모든 것은 시도하기 두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일로 돌아가면 자신도 모르게 삶의 방경을 좁히게 될 것이다. 삶의 여러 단면이 있음을 되새기고 또 되새겨 본다.
그렇게 어느덧 한 달이라는 시간이 가고 직장에 다시 복귀했을 때 나는 이전과 다르게 일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일과 일 사이의 공백을 초조하게 생각하며 일을 만들어서 하려고 하는 것을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 짬을 내어 조금은 장기적인 관심사를 실행하는 데 사용했다. 혼자 있는 시간에 느끼게 될 공허함과 외로움은 단지 혼자이기 때문에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나를 잘 사용할 줄 몰라서 맞이하게 되는 것 같다. 짧은 시간에 혼자 보내는 연습을 해보고 난 후 생각보다 막연한 것이 아님을 느끼면서 점점 그것을 즐기는 내가 되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