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대상의 효과

내가 모르던 나를 만나러 가는 통로

by 얄리

좋아하는 대상에 몰입해 보는 것, 그것만큼

삶을 획기적으로 바꿔 놓는 것도 없을 것이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그 대상이 가지는 어떤 모습이 내가 추구하는 무엇과 닮았거나, 반대로 간절히 원했지만 결국 이룰 수 없었던 것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20대의 무모한 도전을 할 틈도 없이 각박한 삶의 무게를 견디는 일에 젊음을 모두 소진해 버린 나와 정반대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며 그들을 응원하는 것을 잃어버린 20대를 다시 사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종의 대리만족이다. 좋아하는 대상을 통해 과거의 나를 소환하고 위로하며 품어주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은 것.


내가 좋아하게 된 대상은 인디밴드였다. 척박한 음악세계에서 대중성의 갈망보다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의 결을 끊임없이 주창하고 있는 모습이 나를 매료시켰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내 갈길을 간다'는 것, 나는 그들의 관객이 되어 "당신이 맞다! 포기하지 말아 달라"라고 외치고 싶었다. 과거의 나에게 지금의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고 현실에 너무 쉽게 백기를 들었던 지난날에 대한 자기반성이었으며 지금이라도 내게 남은 열정을 불태워 미련을 남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렇게 나는 그들을 만났고

만남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첫 번째로 바뀐 것은 나의 몸이었다. 좋아하는 대상이 생기자 그 대상에게 더욱 가까이 가고 싶은 욕구가 생겨났다. 멀찌감치 의자에 앉아서 바라보기보다는 무대와 가까운 스탠딩 자리에서 함께 소리치고 뛰며 만나고 싶었다. 그럴 때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이미 낡아버린 내 몸뚱이. 하지만 욕구가 충만하면 현실은 장해가 되지 않았다. 첫 콘서트를 보기 위해 한 달 남짓 그들의 음악을 반복 재생하며 러닝머신 위에서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걷는다는 것이 하나도 힘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체력이 채워지고 그들의 음악이 머릿속에 박재되고 난 후 난생처음으로 스탠딩이라는 자리에 섰다.


두 번째로 바뀐 것은 표현하는 것이었다. 마음속에 가득 찬 대상을 상상으로만 그리워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표현 수단을 빌어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옮기는 일은 어쩌면 숙명인지도 모른다. 그동안 간간히 해 오던 글쓰기는 그들에 관한 이야기로 풍성해졌고 한동안 손을 대지 않던 그림도 자연스럽게 다시 그리게 되었다.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멈춘 것은 무언가를 좋아하고 관심을 가지는 일을 멈춘 것이었다. 대상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내가 표출할 수 있는 표현의 수단이 드러난다. 비록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아 녹이 슬었을 지라도 말이다.


세 번째로 바뀐 것은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대상이 온 마음을 바쳐서 하고 있는 것을 나 역시도 해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다. 그동안 낯선 사람들과 마주하며 낯선 일들을 하는 것에 주저하는 내가 되어 버렸지만 대상을 닮아가고 싶은 소망은 그런 두려움을 이기게 해 주었다. 수학만큼이나 싫어하던 악기를 배우기 위해 제 발로 가르쳐 줄 사람을 찾아 나섰다. 나이와 재능, 이전까지 도전에 있어서 걸림돌이 되었던 것들은 의미가 없어진다. 연주할 수 있기만을 소망할 따름이다. 도전에 있어서의 순수한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네 번째로 바뀐 것은 세상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었다. 대상이 탐닉하고 있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 이를 테면 대상이 감명 깊게 본 책들을 나 역시도 탐닉하게 된다. 처음에는 대상이 읽었던 책으로 시작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은 더 깊은 지적 호기심을 유발하고 서서히 유사한 다른 것들로 옮아간다. 문학과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게 되었던 주효한 동기가 되어 주었다. 그동안 바라보던 세계에 내가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세계가 증설되는 것을 느끼며 생각의 범주가 넓어진다.


다섯 번째로 바뀐 것은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소위 말하는 덕질이라는 새로운 세계, 좋아하는 대상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만의 방식으로 그것들을 만들어가게 된다. 자연스럽게 터득한 제작의 노하우는 좋아하는 대상을 담는 것에서 나라는 사람을 담는 것으로 전환된다. 나만의 무엇을 만들어내는 나만의 방식이라는 것이 생기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는 대상으로부터 나로 물 흐르듯 관심의 변화가 일어난다.


좋아하는 마음은 가도

좋아했던 나는 남는다.


좋아하는 대상을 가진다는 것은 그만큼이나 삶의 변화에 주효하다. 뭔가 다른 삶을 살고 싶을 때 무엇으로부터 그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가장 쉬운 방법은 내 마음을 맡길 대상을 찾는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시작은 대상일지 몰라도 마지막에 남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미 나이에 무릎 꿇었던 몸을 일으키고, 상실했다고 생각했던 표현 감각을 되살리고, 두렵기만 했던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궁금할 것도 없다던 세상을 다시 보고,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내 것을 만드는 것을 해 본 나는 전과 같을 수가 없다. 무엇이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중요하다. 그 행동의 기폭제는 '좋아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좋아하는 대상에게 머물렀다가 나 자신에 머물게 하는 것은 행동으로 옮겼을 때 느꼈던 것을 기억하고 잊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모르는 나는 언제나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