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의 취득

의견이 없다는 그 무심함

by 얄리

관점과 취향이 너무나도 분명했던 한 사람을 기억한다. 일터에서 그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였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순서와 규칙에 민감하고 자신만의 일처리 방식을 고수하며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한치의 양보가 없었다. 때때로 그것이 나를 포함한 여러 사람에게 불편함을 초래하기도 했지만 일관적인 모습에 '이 사람은 이런 사람이구나'하고 반은 포기하다시피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런 그가 퇴근 후 동료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긴장을 푸는 때면 현대와 근대가 공존하는 판타지 소설에 대한 얘기로 열을 올리는 모습은 가히 인상적이었다. 달뜬 얼굴로 장면을 그려내듯 설명하는 그를 보며 '대체 그게 얼마나 흥미롭길래 그런가?' 하는 관심이 생겨 났고 덕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어떻게 보면 현실에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정신적 피로감을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상상의 세계에 대한 흠모로 덜어내고 있는 것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는 내게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한 사람'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그런데 나는? 나는 두드러지는 관점이나 취향이 드러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주로 청자의 입장에 놓이곤 했다. 나의 색깔을 논할 어떠한 톤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저절로 말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것이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특정 방향에 기울어 있지 않아 보였고 그만큼 논쟁에 휩싸일 일도 없었으며 딱히 의견 충돌로 각을 서게 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누구와도 트러블 없이 어울릴 수 있는 사람, 아마도 나는 그러기 위해 내 관점과 취향을 가지지 않으려고 했을 수도 있다. 마찰은 피곤하고 소모적인 것이라고 여겼으니까.


그렇다고 내 안에 관점이나 취향이 전혀 없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그것을 밝히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는 본의 아니게 입김이 센 사람의 의견에 동조하는 표현을 한 셈이 되거나, 다수의 의견에 힘을 보태는 역할을 하게 되거나, 결정의 순간에 관여된 모든 사람들을 표류하게 만들기도 했다. 어느 순간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아 졌다. "나도 내 관점과 취향을 타인 앞에서 분명하게 밝힐 수 있었으면 좋겠어"라고 생각하는 순간 당혹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관점이라는 것을 가지려면 여러 경험을 바탕으로 내가 고수하고자 하는 나름의 가치관을 세워 놓았어야 했지만 나는 그게 많지 않았다. 취향이라는 것을 가지려면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알고 있어야 했지만 나는 그 또한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소모적인 마찰을 피한다는 명목 하에 세상에 무관심한 것을 선택해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문학이나 문학과 관련된 서적들을 읽기 시작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뉴스와 칼럼들도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은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궁금해졌고 그런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그 안에 내가 동의하는 것과 동의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어린아이가 한글을 익히고 난 후 세상의 글자들에 의미를 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조금씩 나의 시각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세상에 대한 관심도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도대체 얼마나 무신경하고 무심하게 살아온 거냐"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선거철이 다가오자 각자의 진영에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내며 TV 안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 장면을 바라보던 아들이 말했다. "그래서 뭐가 옳고 뭐가 잘못되었다는 거야?" 남편의 대수롭지 않다는 듯 "그게 뭐가 중요해. 다 똑같은 사람들이야. 별 차이 없어"라는 말에 발끈한 나는 "차이가 없는 게 아니라 차이를 모르는 거야.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까 보이지 않는 거고. 그런 무관심이 차이를 인식하려는 의지를 뭉개니까 세상이 안 바뀌는 거야"라며 반기를 들었다. 실로 오랜 시간만에 '의견 없음'의 입장에 변화가 생긴 것이다.


물론 삶에서의 그런 입장 변화는 때때로 말싸움이나 상호 간의 조심스러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적어도 무심하게 마찰을 피해 가며 살아가는 삶보다는 나았다. 원치 않는 동조나 결정장애의 표류에 머물지 않게 되는 것은 물론 내가 내 삶을 좀 더 적극적으로 살아가려는 의지를 갖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부모로부터 아무 저항 없이 물려받은 무관심의 유전은 막을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자녀가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면 부모가 자신의 관점과 취향이 명확한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늦깎이 어른은 그렇게 겨우 말문을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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