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지 않을 권리

공용적인 큰 딸이라는 프레임

by 얄리

아버지는 4형제의 맏이였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사업실패로 인한 충격에 쓰러져 세상을 뜨신 후 할머니는 자식들을 건사하기 버거운 나머지 4형제를 내버려 둔 채 사라지셨다가 나이가 들어 의지할 곳이 없어진 후에서야 아들들을 찾아오셨다. 졸지에 부모가 없다시피 한 4형제, 맏이였던 아버지는 동생들에게 있어서는 큰형이자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랐고 내가 서른이 채 되기도 전에 보모님이 투병 끝에 돌아가셔서 혼자가 되었다. 작은 아버지들에게 나는 큰형의 유일한 혈육이자 집안의 큰 아이, 작은 아버지 세대보다는 밑이고 사촌동생들 세대보다는 위인 '자식도 아니고 부모도 아닌 중간자'였다. 문제는 그것 때문에 생겨났다.


과분한 관심은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후부터 시작되었다. "휴가가 언제니? 그때 가족들 데리고 내려와라. 얼굴 보고 싶다" 거절을 할 줄 뻔히 알면서도 휴가 때나 명절 때마다 작은 아버지들은 아우성이었다. 일 년에 몇 번 없는 휴식기간에 내 가족들과 단란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빠듯한데 먼 곳까지 오가는 시간을 버려가며 내려가는 것도 부담스러웠지만 무엇보다 남편과 아들을 낯설고 불편한 자리에 며칠씩 머물게 하는 것이 싫었다. 작은 아버지들과 함께 하는 그 시간 내내 나는 가족들과 친척들 사이에서 눈치를 살펴야 할 게 분명했다. "저도 보고 싶은데 휴가기간도 짧고 제가 휴가기간에 해야 할 일도 있고 해서 내려가기 힘들어요"라고 말하면 한 시간이 넘어가도록 실랑이가 벌어진다. 마지못해 "다음번에요"라는 말을 들어야만 통화가 끝이 난다. 평소에 전화통화를 길게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는 끝이 나지 않는 긴 통화는 진을 빼는 일이었다. 전화통화를 한 날이면 일상에 짜증이 묻어났다.


수년의 밀당 끝에 내려간 날, 작은 아버지와 작은 어머니들은 그동안 못다 한 잔소리를 한껏 늘어놓으신다. "손자를 보고 가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게 좀 일찍 아이를 가지지 그랬니"로 시작해서 "무남독녀 외동딸이라는 것 때문에 외로웠을 텐데 왜 아이를 하나만 낳았니?"로 이어지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가져라"로 끝나는. 아이를 가질 시점은 내 삶에서 적절한 때를 부부가 상의할 일이다. 생각하는 것만큼 내가 외동딸인 것 때문에 더 외로웠던 경험도 없고 그 이유로 아이를 최소 두 명 이상 가져야 할 의무도 없다. 더군다나 이제 조금 있으면 고등학생이 될 아들이 있는데 지금 시점에 아이를 더 가진다는 것은 양육에 할애할 시간과 돈 그리고 심적으로 부담이 되는 큰 변수다. 그것을 떠밀리듯 감내해야 할 이유가 없다. 한 귀로 듣고 흘리기에도 지친다.


무엇보다 듣기 싫은 말은 "네가 아이들 중에 맏이니까 우리가 없어도 동생들 잘 챙겨야 한다"는 것. 나도 사촌동생들도 어렸을 때 잠깐씩 보았던 기억 외에 아무런 교류가 없었던 데다가 친형제자매도 아닌데 어떤 의무감으로 챙겨야 하는지 납득이 안된다. 사촌동생들에게 "너희들도 언니(누나) 잘 따라야 한다"며 당부를 하는 통에 안 그래도 불편한 사촌지간이 더 어려운 사이가 되어간다. 사촌동생들에게는 뜬금없이 모셔야 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고 나는 어른 노릇을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 것이다. 굳이 쌍방의 연을 이어주려 하는 건 언젠가 본인들이 가고 없는 자리에 후손들끼리 기댈 어깨를 마련해 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은 알지만 나는 작은 아버지들의 공용적인 큰딸이 아니다. 그건 나의 아버지가 짊어졌던 맏이라는 프레임을 딸인 나에게 씌우려는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불편함과 부담감이 깊어지면서 점점 거리감이 생겨난다. 명절이면 4명의 작은 아버지와 돌아가며 안부를 묻는 통화를 했었지만 그 마저도 하기가 싫어진다. 도돌이표 같은 레퍼토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다 보면 문득 술에 잔뜩 취한 채 한밤 중에 전화가 걸려온다. "너는 항상 내가 전화를 해야 하니?" 또 시작이다.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는 발음으로 내가 집안에서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히스토리를 읊다가 연락이 뜸하고 얼굴 보기 어렵다는 것에 대한 서운함을 거쳐 반 협박이 이어진다. "너 우리랑 인연 끊을 작정이냐?" 이쯤 되면 지치다 못해 화가 난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저도 가정이 있고 그게 우선이에요. 그리고 제 가정의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동생들도 다 컸고 제가 챙겨야 할 나이들 아니에요. 제가 작은 아버지 큰 딸도 아니고요. 그러니 지나친 간섭은 삼가주셨으면 좋겠네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술 취한 사람한테 뭐라고 하겠나 싶어 참는다. 며칠간 분이 삭지를 않는다.


나이가 들면 남아있는 혈육에 대한 정이 더 애틋해지는 모양이다. 아버지나 다름없던 형의 부재가 이전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형이 남긴 피붙이를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더 커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조카에게 딸처럼 관여하려는 작은 아버지들의 행동이 내 부모의 부재를 더욱 절감하게 만드는 일이 되기도 한다.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형제간에 나누고 끝냈을 일이 그렇지 못하다 보니 나에게로 넘나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참아왔던 말을 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내 가정의 휴식을 깨는 일이 잦아지고 간섭이 심해지고 과도한 책임감에 부담이 커지다 보면 "인연을 끊을 셈이냐?"라는 말을 참아내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다. 압박의 강도가 세어지면 탈출 욕구도 비례하여 강해지는 법이니까 말이다. 참지 않는 것, 그러지 않을 권리는 내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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