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떨어질 간은 있고?
하마터면,
대학원을 또 갈 뻔했네!
내 표정이 정말 그랬다. (ㅡ.ㅡ;) 이렇게...
옆에 있던 남편은 그 순간 빵 터져 버렸다. 공명이 느껴지는 웃음소리 뒤에 숨기고 싶었을 안도의 한숨을 나는 느꼈다. 그동안 조마조마했겠지. "이러다 또 학교를 가겠다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 그 많은 시간과 돈을 또다시 퍼부어야 한다면 아뿔싸! 앞이 캄캄하겠지. 다 알고 있다. 나도 내심 그게 불안했던 참이었지만 들키지 않았다. 그의 불안이 나의 불안을 가려 주었기에, 모름지기 고마웠다.
내게는 고질병이 하나 있다. 뭔가를 배우면서 느끼는 '아하!'의 감정을 미친 듯이 갈구하는 병, 내 삶에 있어서 쾌감이라는 것은 늘 '알았다'는 한 마디를 내뱉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곤 했다. 그런데 이 병에도 정도가 있어서 그저 책 한 권으로 그 쾌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굳이 배움의 정석을 가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진학을 해서 학위를 따야만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모양이다. 불행히도 나는 후자에 속하는 중증의 환자였다.
그러고 보니 그 병의 치료를 위해 털어 넣은 돈과 시간이 얼마이던가. 두 번의 석사과정을 마쳤으니 도중에 휴학했던 시간들을 포함해서 꼬박 8년의 시간을 들여 대략 6천만 원은 갖다 바친 것 같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무슨 소리야! 그것뿐이겠어?"라며 거품을 물겠지만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는 선에서 대충 계산하면 그렇다는 거다. 적합한 말이 있더구먼. '퉁친다'라고. 필요 이상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소모전을 지양하기에 딱 좋은 말이더라.
물론, 그때는 그때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이를테면, 처음에는 현재 밥을 벌어먹고 사는 업무와의 연관선 상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였다. 당시에 웹에이전시에서 디자인전략팀을 운영하고 있었으므로, 브랜드와 마케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광고홍보학'이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에는 현재의 업무를 그만두게 되면 차후에 소명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을 배운다는 것이 취지였다.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발판 삼아 자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사람들을 돕고자 '상담심리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하지만 취지가 곧 나의 본심은 아니었다는 것을 시간이 꽤나 지나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그저 일정한 시간에 현실의 시간을 빠져나와 강의실에 앉아서 평소에 듣지 않던 이야깃거리를 들으며 없던 호기심까지 끌어 모아 탐구욕이라는 미명 하에 갈증을 채우는 시간들을 즐겼던 것이다. 그 시간마저 없으면 현실에 매몰되어 허덕이던 내가 삶을 살아갈 힘을 얻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다만 굳이 그 방법이어야 했던 이유라면, 버팀의 시간 속에서 추구하는 변화가 내게 조금은 발전적인 방향으로 가는 과정이기를, 또 그 과정의 끝에 합당한 결과물이 얻어지기를 원했던 것 같다. 그러지 않으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마음 편치 않을 것 같았다. 나의 동반자에게도 그렇고 나 자신에게도 그렇고. 예쁜 핑계가 필요했다.
두 번의 과정을 겪는 일이 일탈의 즐거움만 준 것은 아니었다.
첫 번째 도전에서는 '정해진 과정을 모두 마친다'는 것 자체가 고역이었다. 회사일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학교에 가는 날마다 하던 일을 내려놓고 회사를 빠져나오는 일이 미로 속의 탈출구를 찾는 것만큼 힘들었다. 엄청나게 눈치가 보이는 일이었으니까. 내심 '그만둘까'하는 생각을 얼마나 했으면 밤마다 '대학시험조차 치르지 않은 나와 마주치는 악몽'을 꾸기도 했다. 해서 과정을 마치는 날 "절대로 이런 무모한 짓을 다시는 하지 않을 테다"라고 했었다. 분명히...
두 번째 도전에서는 '솔직하지 못한 나를 인정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처음 밟았던 과정은 그나마 현업의 경력사항에 유관성이 있어 실효성이 있었지만 그다음에 밟은 과정은 전혀 유관성이 없었다. 나름 제2의 인생에 있어서의 변곡점이라고 여겼지만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나를 알고자 함'에는 충족하지만 '타인을 돕고자 함'에는 충족하지 않는 소망이라는 것 말이다. 나는 이것을 업으로 삼을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에게는 더없이 좋은 시간이었지만 그 이상일 수는 없었다. "마음에 없는 이유는 대지 말아야 되겠구나" 싶었다. 이것을 배워서 어떻게 하겠다는 이유에 진심이 없다면 말이다.
이 정도로 충분하지 아니한가?
두 번의 과정을 겪으면서 배우고 느끼는 바도 많았지만 그만큼 시간과 비용의 소모도 많았고 무엇보다 그것을 아무 말 없이 용인해준 배우자의 인내심도 이만하면 충분했다. 그래서 무언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했을 때 자동적으로 "대학원을 가 볼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나 자신을 일깨우곤 했다. 문학, 철학 등등. 수없이 많은 것들의 유혹을 무사히 빗겨나가면서 나름의 내성이 생긴 것 같았다. "학교는 아니야. 책을 읽어. 책을"이라는 내 안의 목소리는 제법 힘을 발휘했다.
그렇게 방심하던 차에 내 모니터를 보고 화들짝 놀랜 것이다. 코로나로 인하여 일 년 넘은 시간들을 칩거 아닌 칩거로 지내다 보니 삶에 대한 무기력감이 스멀스멀 스며들기라도 한 것일까? 모니터에는 각종 사이버 대학 또는 대학원의 자료가 한 가득히 펼쳐져 있었다. 심지어는 입학지원서를 다운로드하여 열어 놓은 것까지... 아차!
휴우. 간 떨어질 뻔했네
하던 차에 바로 들이닥치는 말 한마디,
아직도 떨어질 간은 있고?
순간 우지끈! 감정이 요동을 쳤다. 더 이상 댈 수 있는 예쁜 핑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게 분명하지만, 그건 알랑가 모르겠다. 열심히 하는 것보다 잘하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것을 하는 것이 더 낫다는 말. 그야말로 내가 "좋아하는 일을 드디어 찾았어!"라고 한다면 어쩔 테냐? 그건 약도 없어서 제 풀에 나가떨어질 때를 만나지 않고서야 헤어 나오기 쉽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날 저녁은 몹시도 위태로웠다. 시키지도 않은 설거지를 한다고 설레발을 치는 남편의 뒷모습이 우리 사이의 위태로움의 반증이라면 반증이랄까. 아직도 내 간이 무사한지 궁금한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