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허하게 찍힌 마침표
미술대학교 3학년, 이쯤되면 슬슬 졸업 작품전에 낼 그림을 준비하기 위해 실기수업 시간은 물론이고 수업이 없는 때에도 학교 작업실에 진을 치고 있어야 하는 게 맞았다.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보면 수업이 있는 시간대 중간에 교수님이 들어오셔서 한바퀴 휙 둘러보며 개별적으로 학생들에게 작업 중인 상황에 대한 코멘트를 해 주시곤 했다. 그런데 내 키를 훌쩍 넘는 화판 뒤로 빼꼼히 얼굴을 들이밀며 다가온 교수님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아이고,
넌 꼭 누드를 해야겠니?
내가 졸업 작품전에 내고 싶어했던 그림의 주제는 '자신의 외면 안의 숨은 또 다른 자아'에 대한 것이었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인간의 주변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여러 감정들을 상징적인 모티브로 둘러 대비를 줄 구상을 했더랬다.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친구에게 부탁해 나의 알몸 사진을 촬영했다. 모델이 될 사람을 앞에 두기에는 사람이 서 있을 공간도 없거니와 알몸으로 그림의 모델이 되어 줄 이도 딱히 구할 수 없었기에 스스로가 모델이 되는 수 밖에 딱히 방법이 없어서였다. 촬영한 사진들을 작업실 한쪽 벽에 덕지덕지 붙여둔 채 화판 위의 그림으로 옮겨가고 있던 참이었는데 그것을 본 교수님은 마땅치 않아 했다. 적나라하게 노출된 살덩어리의 행태를 불편해 하는 기색은 그림의 진행을 체크하기 위해 마주 칠 때마다 사그러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한발 양보해 슬그머니 주요 부위에 천을 둘러 적나라한 형태를 가린 후에서야 교수님의 얼굴에 일그러진 흔적이 옅어지는 걸 느꼈다. 그림속의 주인공이 알몸일 때는 괜찮았는데 왠일인지 천을 두르고 난 후부터 나도 모를 수치심이 생겨났다. 마치 이브가 뱀의 유혹에 못 이겨 금단의 사과를 먹고 난 후 알몸이던 자신의 몸을 가리며 불편해 하던 것처럼 말이다. 그 후로 한동안 수업시간에 귀청이 떨어져 나갈 만큼 큰 볼륨으로 메탈음악을 듣는다는 핑계로 이어폰을 귀에 꼽고 그림을 그렸다. 교수님이 작업실로 들어오는 것을 인지할 수 없을 정도라 내 앞에 얼굴을 내밀거나 등뒤에서 손으로 톡톡 건드릴 때에야 비로소 내 차례가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이 바뀌었네?
그랬다. 나는 어설프게 가리워진 자화상을 끝내 계속 손을 보지 못하고 급하게 마무리한 후 화판 옆으로 옮겨 버렸다. 화판에 세워진 새로운 그림에는 고구려 동굴 속의 벽화를 재현한 모습이 덩그러니 담겨 있었다. 교수님은 전시회가 얼마남지 않았는데 하던 것 말고 다른 주제를 선택해 완성하는 것이 시간 내에 가능하겠냐고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전의 그림보다는 훨씬 편안한 어톤으로 그림속의 표현요소에 대해 기법적으로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해 조언을 해 주셨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이어폰을 꼽고 있는 것은 여전했지만 나름 마음은 평온을 되찾아 갔다.
마무리가 된 그림은 동기들의 그림과 함께 전시회에 무사히 걸렸다. 전시회가 있는 동안은 찾아온 손님들을 안내 하기 위해 동기들과 조를 나누어 번갈아 가며 전시회장에 머물러야 했다. 자신의 차례가 되지 않았을 때에도 늘상 전시장이나 그 주변에 있었던 동기들과 달리 나는 거의 대부분을 전시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수일 간의 전시회가 끝나고 난 후 거대한 그림은 아버지가 프리랜서로 일했던 사무실과 가까운 공사장 창고에 덩그러니 놓여졌다. 시간이 되면 찾으러 가겠노라 했지만 가지 않았다. 그림을 보관할 공간도 딱히 없어서.
내가 그리려고 했던 것이 꼭 누드였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보여지는 껍질과 다른 나를 내 안에 숨겨둔 채 살아가는 자신의 민낯을 드러내고 싶었고 그 방식이 누드일 뿐이었다. "꼭 누드를 그려야겠냐?"는 질문에 내가 했어야 할 답변은 이것이었지만, 나는 천으로 몸의 일부를 가리는 것으로 답을 하지 않는 걸 선택했다. 천을 두르고 있는 나의 모습은 내가 아니었기에 더이상 그 그림을 완성할 수 없었다. 대신에 새로 그린 고구려 벽화는 말 그대로 재현일 뿐이었다. 아무런 생각과 상상이 묻어 있지 않은 재현, 고구려 벽화를 소개하는 책자에서 본 모습을 있는 그대로 옮겨다 놓은, 나라는 정체성이라는 것은 1도 묻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말장난 같은 그림을 그리면서 나는 비웃고 있었다. 위험한 도발보다는 영혼없는 재현이 더 환영받는 현실을, 논쟁을 감수하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을 관철시키기 보다는 잔소리를 피해 달아나는 비겁한 나 자신을 말이다.
넌 그냥 쳐 박혀 있어
동굴 속 깊은 곳에
전시회가 끝난 후 그림을 옮겨다 놓은 곳은 재개발이 이루어질 거라는 소식이 들려오던 곳이었다. 아무도 모를 그곳에서 건물과 함께 무너져 버리기를. 스스로를 방치한 비웃음 소리와 함께 박제되어 버린 젊은 날의 나는 그렇게 내 기억에서 조차도 흔적을 찾아볼 수 없도록 지워져야 했다.
어차피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는 형편도 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집은 끊임없이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더이상 떨어질 나락도 없어보이는 상황에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사치일 뿐. 4년간의 대학생활 동안에도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리는데 열중할 여유란 없었다. 졸업이란 것을 하려면 열심히 공부해서 반액이라도 장학금을 받아내고 나머지 반액을 벌기 위해 부지런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다음 학기를 이어가야 했으니까. 그런 내게 생각과 감정을 담은 그림에 집착할 여유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졸업장을 받기 위한 전시회만 끝나면 취업을 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어차피 직장인이 될 텐데 짊어지고 잘 수도 없는 그림은 쓰레기보다 못한 짐이었다. 버리자. 그런 미련의 애물단지 같은 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이른 봄, 드디어 대학생활의 마침표를 찍을 날이 왔다. 졸업 전시회를 마치고 마지막 겨울방학을 보내기 전에 나는 이미 자체 제작한 원단으로 인테리어를 해주는 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있었다. 회사에 연차를 내고 졸업식에 참석한 나는 미리 찾아서 깨끗하게 빨아 다려입고 나와야 할 졸업가운조차 챙기지 못해 당일 아침 학교 근처의 세탁소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다림질이 완성되기를 기다려야 했다. 부모님과 친척들 그리고 졸업식에 맞추어 휴가를 나온 남자친구가 함께 한 가운데 단상에 올라 졸업장을 받고, 와준 사람들과 기념촬영을 한후 다시 가운과 학사모를 반납하며 정신없이 움직이다 보니 식은 끝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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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래?
졸업식이 따 끝난 후 학교 정문 건너편에 세워둔 남자친구의 차에 단둘이 남게 된 후 갑작스럽게 울음이 터져 버렸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며 남자친구는 내 등을 토닥였지만 4년의 시간을 노심초사하며 달려왔던 것이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는 안도감에 눈물이 났던 게 아니었다.
억울해!
또 달려야 하는 거잖아
이제 다시 시작이잖아
동기들이 '무엇을 그려야 할까?'를 고민하던 때에 나는 '장학금은 확보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동기들이 '뭔가 색다르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것을 찾으려면 어디로 가면 좋을까?'를 고민하던 때에 나는 '아르바이트에 늦으면 안되는데 차가 왜 막힐까?'를 고민했다. 동기들과 나는 다른 세계에 있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 좀 더 자신의 색깔과 생각을 담은 작품을 만들어 보고 싶어했던 동기들을 보면 부러웠다. 그들은 또 다른 그림들을 그려나갈 충분한 시간을 확보했지만 나는 영혼을 다 덜어낸 빈깡통같은 그림을 마지막으로 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시작점부터 달랐던 동기들과 나는 어울릴 수가 없었다. 시간도 마음도 결이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이 남았다. 어차피 마지막이라도 바닥에 있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원하는 것을 표현했어야 되지 않았을까? 취업을 위해 더 신경을 쓰는 건 무리라는 핑계로 도망쳐 버렸던 게 아닐까? A라는 감방에서 B라는 감방으로 말이다. 이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어 버렸는데, 다가 올 미래라는 것은 4년간의 아르바이트에서 했던 예행연습의 실전 뿐이었다. 대학생과 사회인 사이에 공백도 없이 오버랩 되어 있는 시간들, 늘 쫒기며 살아온 내게 주어진 현실은 졸업식이 있는 오늘만 쉬고 내일은 출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다시 쓰고 싶었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재학생이 아니었다. 마지막 작업만큼은 삶의 현실보다 내안의 신념으로 관철시켰더라면 이렇게까지 억울하지 않았을 텐데, 다시 운동화 끈을 조여메고 달려야 한다고 해도 남보다 조금 늦을 뿐 언젠가는 내가 느낀 희열로 회귀하기를 희망하며 씩씩하게 맞설 수 있었을 텐데 너무 일찍 놓아버렸다.
결승선에서 한눈팔기 금지
국문과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다가 육아에 전념하던 나의 절친은 뒤늦게 그림을 그리는 것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 화실에 나가기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에서 방황하던 친구가 번번히 만나야 했던 표현의 한계 속에 힘들어하다가 어느날 몸이 가는대로 화면 가득 붓질을 한 후 해방감에 한참을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의 그림 속에는 그녀의 일탈을 위한 몸부림과 격정적인 감정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그림은 형태와 색깔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그릴 때의 감정이 투영된 채로 남는다.
졸업 전시회에 내가 그렸던 그림의 제목은 '어제로부터'였다. 수십년이 지난 후 책장 속에 겨우 하나 남아 있는 전시회 도록을 열어 과거의 내 그림을 바라보았다. 어둡고 매마르고 텅빈 시선을 가진 형체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 그것을 그렸던 당시의 내 감정 그대로 남견진 채. 그림을 그리는 것을 포기했다고 해서 그림 자체가 포기라는 이름으로 박제되고 끝이 나버리는 건 아니다. 그저 그림은 포기하려는 마음으로 공허했던 그 당시의 감정 앞에 멈춰 서 있을 뿐이다.
나는 아직 결승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이미 가슴을 내밀어 선을 끊어냈다고 생각했지만 나의 몸이 그 선에 닿은 적은 애시당초 없었던 거다. 달려오느라 지친 다리에 시선이 머물다가 나를 바라보는 관중들을 훔쳐보고 아직 다 토해내지 않은 호흡들에 정신을 빼앗기며 한눈을 파는 사이 내 뒤를 쫓아오던 현실이라는 놈이 나보다 먼저 결승선을 치고 나가 버린 것이다. 이제서야 정신이 들어 어제라는 시간속의 시선으로 오늘의 나를 바라본다. 이게 고작 어제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