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척, 그만 할래?

불행의 서막이자

by 얄리
모든 것을 다 잘 하는 것은,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과 같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은 매일 일기를 쓰게 한 후 일주일 간격으로 학생들의 일기장을 걷어 가셨다. 가져간 일기를 꼼꼼하게 읽어보시고는 중간마다 코멘트를 달아주셨는데, 그것을 받아서 읽어보는 것이 좋았던 나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써내곤 했다. 이날의 코멘트를 받았던 나의 일기는 뜬금없이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태권도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는 나에 대한 자랑'으로 가득차 있던 자뻑으로 도배가 된 기록이었다.


이게 뭐지?


선생님의 코멘트를 보면서 등줄기가 쎄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 잘난 체한다고 생각하셨던 걸까? 남이 아니라 본인이 대놓고 자기자랑을 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는데, 아무리 선생님이 어른이라고 해도 그냥 보아 넘기기 어려울만큼 재수가 없어 보였던 걸까?’ 아니면 ‘무언가 한 가지를 선택해서 그것만 꾸준히 해야 성공할텐데 이렇게 이것 저것 마구잡이로 해대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어느 한가지에서도 제대로 된 성공을 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걱정스러운 마음에 방향을 잘 잡으라는 충고를 해주고 싶으셨던 걸까?’ 담임 선생님의 진심이 뭔지 몰랐던 나는 한참을 혼란스러워 했다.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다 열심히 하고 잘하려는 게 왜 나쁜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잘하는 것이 여러 개라도 하나만 고르고 나머지는 버려야 한다면, 내가 고른 것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때 고르지 않은 다른 것에 대한 미련이 생기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그나저나 모든 걸 떠나서 선생님의 코멘트가 화이팅 넘치는 응원이 아닌 것은 맞는 것 같았고, ‘뭔가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려서 그동안 받았던 코멘트와는 사뭇 다른 찬바람 부는 말을 남기셨나 ? 실망하셨나?’ 하는 생각이 들자 두려워졌다.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이날 이후 일기장은 일상의 기록으로 변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의 코멘트가 일기장에 달려서 돌아왔지만 그것을 받아서 읽어보는 것이 예전처럼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일이 있기 전에는 선생님과 나 사이에 일기라는 것이 일종의 메신져 같다고 생각했었지만, 이후에는 통상적인 숙제 검사의 행위로 느껴졌다. 숙제를 빼먹지만 않는다면 선생님이 내게 실망할 일도 일어날리 없었다. 두려움 따위는 소리없이 사라졌다. 평화로웠다. 모든 일상이.




모든 것을 잘 하는 나에 도취된 듯 호기롭던 초등학교 5학년 시절의 나는 사실 '긍정과 의욕에 넘치는 아이'가 아니었다. 물론 그 전까지는 어두운 구석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개구진 아이였지만 그건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사가 되어버린 후였다. 정성스럽게 싸주시던 도시락을 잊어 버리시곤 점심때가 다 되어 급하게 사가지고 온 음식이 담긴 비늘 봉투를 건네고 돌아가던 어머니를 볼 때, 아침마다 학교에 입고 갈 옷과 머리핀을 챙겨 놓으시던 자리에 전날 입은 옷이 그대로 놓여져 있을 때, 습관처럼 집안 구석 구석을 물걸레로 닦아내던 손길이 눈에 띄게 줄어 발바닥에 까끌거리는 먼지가 달라붙을 때 나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꼈다.


잘 다니고 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린 나의 눈에도 사기꾼 같아보이던 친구분과 사업을 하시겠다고 벌어 놓은 돈을 전부 쏟아 부었던 아버지는 예정된 결말처럼 폭망했다. 그 즈음부터 아버지는 밖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던 것을 멈추고 매일 저녁 달그락 거리는 맥주병 소리와 함께 귀가하여 밑반찬을 안주로 혼술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어머니는 갑작스럽게 허리통증에 시달리더니 급기야 디스크 진단을 받았고 하루가 다르게 소소한 집안 일을 처리하는 것조차 통증 때문에 버거워했다. 몸은 불편한데 가진 돈을 탕진한 남편이 매일 저녁 벌이는 술판을 달가워 할리 없었던 어머니는 아버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고 결국 맞붙어 서로에게 비난을 쏟아내는 일이 잦아졌다.


서로 간의 공격이 한참 극단으로 치달아 갈 무렵 쯤엔 그 한가운데 서 있는 어린 나 역시도 두 분의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긋지긋한 싸움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하셨지만 두 사람만 갈라서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나였다.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무남독녀 외동딸로 자라던 나는 몰락해 가는 가정에서 이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각자 갱생을 방해하는 유일무이한 장해물이 되어 있었다. 무능력하고 매정한 남편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고 생각한 어머니에게 나는 족쇄와도 같은 존재였다.


너만 아니었으면 나는
훨훨 날아갈 수 있었을 거야


하지만 어머니를 자유롭게 해 줄 마음은 내게 없었다. 어떻게해서라도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이 모두 필요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하거나 혹은 어느 한쪽도 선택할 수 없는 일이란 일어나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두분의 다툼이 하루도 빠짐없이 반복될수록 내가 지옥의 문지기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어떻게든 두 분의 싸움을 중재해 보려고 했다. 그나마 가장 나은 쪽은 나까지 공격하지는 않는 아버지를 말려보는 것이었다. 두 사람의 언성이 높아진다 싶으면 아버지의 팔을 잡고 그만하라고 눈짓을 보냈다. 그러면 적어도 어머니가 쏟아내는 비난에 아버지가 덩달아 역정을 내던 것은 멈출 수 있었다.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척, 아버지는 더 이상의 대응을 하지 않고 술만 연신 들이켰다. 대응이 없는 벽에 대고 소리를 치던 어머니도 점점 지쳐서 목소리가 잦아 들었다. 하지만 그날 뿐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나는 중재자로 두 분의 싸움판에 끼어들어야 했다.


중재자로서의 약빨이 떨어져 갈 무렵 나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어쩔 수 없이 함께 해야 하는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여 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 나라도 두분에게는 희망이고 보람이 되어야겠다. 나 때문에 산다는 두 분이 아닌가? 아주 예쁘고 탐나는 24k 족쇄라면 견디기에 좀 낫지 않을까? 내가 잘하면 그 맛에라도 조금은 참고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방법이 통했는지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오거나 이런 저런 경연대회에서 상장을 받아 오는 날이면 그나마 짧게라도 가정에는 웃음꽃이 피기도 했다. 내가 잘 할께. 그게 뭐든. 누구나가 인정할만큼 알아서 척척 잘하는 능력있는 사람이 되어서 "너 없으면 안돼"라고 붙잡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나라는 사람은 누군가의 발목을 붙잡고 기생하듯 연명하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버려지면 살 수 없는 연약한 어린 아이가 아니라 혼자라도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는 튼튼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 내 머리 속에는 온통 그 생각 뿐이었다.





잘하는 척, 그만할래?



어린 시절의 사진 속에 나는 언제나 어머니의 세심한 치장에 맞춰진 옷을 입고 뻘쭘하게 서서는 뚱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다. 삶이 평탄하지 않았던 어머니에게 딸은 복잡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한 대상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쏟아 부을만큼 애지중지하는 대상이기도 했지만, 반대로 가정의 불화로 인해 본인의 감정이 극에 치달았을 때에는 탈출을 막아서는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나에게 모든 걸 다 거는 눈빛을 지켜보는 것도, 본인의 삶에 걸림돌이 되어 버린 나에 대한 원망의 눈빛을 견뎌야한다는 것도 어린 나에게는 힘겨운 일이었다. 그냥 나와 별개로 어머니가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의 수호신도 악마도 되고 싶지 않았다.


지난 날 무모한 도전이 실패로 끝난 후 상실감에 술잔을 기울이던 아버지와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에 시달렸던 어머니가 서로를 향해 비난을 던지는 것 대신에 “너무 치치고 힘들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막상 마주했을 때는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라고 받아쳤을지는 몰라도, 돌아서서는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너도 힘들었구나”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나라는 사람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는 마음도 덜해지지 않았을까? 서로가 서로의 위안일 수 있었다면 말이다. 두 사람은 나로 인해 맺어진 게 아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겠다는 맹세는 내가 세상에 나오긴 전부터 성립했던 두 사람의 언약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일기장에 대한 선생님의 코멘트를 다시 떠올려 본다. 어쩌면 그것은 자기 자랑에 도취되어 있는 철부지 어린아이를 꾸짓는 것도, 여러 가지에 맹목적으로 매달리는 것을 우려해 방향성을 잡아주고자 함도 아니었을 수 있겠다 싶다. 뭐든지 가리지 않고 잘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싶어하는 강한 욕망에 사로 잡힌 어두운 속내를 들여다 본 것은 아니었을까? 무엇이 이 아이에게 슈퍼우먼이 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일까?하고 혹시라도 들여다 보아주었을까? 만약에 그런 마음이 선생님의 숨은 진심이었다면 그 코멘트는 이렇게 바뀌어야 할 것이다.


잘한다고 생각하는 것 중에서
네가 정말 좋아하고 원하는 것이 뭘지
한번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