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 여전합니다.

그날의 편지는

by 얄리

조금은 늦은 아침, 투박하게 내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어설프게 잠이 깨어 버렸다. 아버지?


이거 좀 읽어보고
틀린 글자 좀 고쳐줘봐


잠결에 건네 받은 A4용지 두장을 훌쩍 넘기는 분량의 글에는 "언제적인지도 모를 봄은 몹시도 푸르렀다."며 시작한 느닷없는 풍경이야기가 4분의 1, "서로 얼굴만 마주 봐도 웃음이 절로 번지던 때를 기억하느냐?"로 시작한 질문의 폭주가 4분의 1, "이제서야 불현듯 이름도 특정하지 못할 그대들이 떠오른다."며 몹시 그리워진다로 시작해서 한번 만나보고 싶은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말이 4분의 1, 함께 첨부할 거라고 예상되는 손수 그린 그림들의 사진에 대한 설명과 함께 "옛 동무들의 마음에 화답할 것이라고는 이것 뿐인데 무엇을 마음에 들어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4분의 1. 이렇게 애써 나누어 보아야만 겨우 파악될 이야기들이 두서 없이 오락가락 이어져 있었다.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뭘까?


읽다보니 고쳐달라는 글자들은 고사하고 시를 쓴 것인지 편지를 쓴 것인지 도무지 알아 들을 수 없는 말들이 빽빽하게 들어 앉아 전하고자 하는 말의 핵심을 알기조차 어려웠다. 스물스물 올라오는 짜증, 그렇지 않아도 새벽까지 과제 작업을 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난데없이 불쑥 딸을 깨운 것에 더 화가 났었던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경을 곤두세워 찬찬히 글을 읽기를 반복하니 요지는 "그동안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꺼내서 미안하지만, 여력이 된다면 내 그림을 하나 사 주면 좋겠다."는 말인듯 했다. 뭔 말을 이렇게 애둘러 하나 싶었지만 간만에 글을 쓰려니 막막해서 그런가보다 하고, 핵심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기승전결이 분명하게 새로 고쳐 쓰고는 퉁명스럽게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 내가 알아서 고쳐봤어.
이제 훨씬 간결할거야.
-
이게 뭐야!
니가 뭔데 이걸 바꿔!


뒤돌아서는 내 등뒤로 날벼락 같은 괴성이 내려 꽂혔다. 고쳐 쓴 종이 안의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불같이 화를 내는 아버지, 살다 살다 종이에 쓴 글을 고쳐 쓴 일을 가지고 그렇게 노발대발하는 모습은 처음 봤다. 피곤함을 무릎쓰고 고치느라 애쓴 것에 고맙다는 화답을 하기는 커녕 막무가내로 화부터 내는 아버지가 야속한 마음에 씩씩대며 내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소리나게 쾅 잡아 당겨 닫았다. 눈물이 났다.


해 준 게 맘에 안들면
고치지 않으면 그만이지
왜 화를 내고 난리야.




시간이 제법 지난 어느 날, 아버지와 연세가 비슷할 어르신이 본인의 회고록을 자비를 들여 만드신 후 주변인들에게 나눠 주셔서 읽어 보게 되었다. 한장 그리고 또 한장씩 넘겨보다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터져 버렸다. 그날의 편지에 담겨져 있던 글들, 나와 비슷한 세대에서 잘 쓰지 않을 문장들이었을 뿐이지 아버지 세대의 분들은 익숙한 늬앙스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거두절미하고 본론만 간단히 말하는 게 아니라 지난 날의 기억들을 한편의 수채화처럼 몽글몽글 겹겹으로 둘러서 기술하며 서로 농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그 시대 분들의 대화법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시가 되어야 할 필요도 편지가 되어야 할 필요도 딱히 없는 말투.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다. 그건.


똑같네. 똑같아
이걸 틀렸다고 고쳐 놨으니
화가 날 만도 했겠어.
낭만을 몰랐네. 내가


그렇게 세대 차이에서 생긴 에피소드로 묻어 버린 기억의 한 조각이 불현듯 목에 걸린 것은 그로부터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야간 근무를 마치고 젖은 솜뭉치처럼 녹아버린 몸으로 택시를 잡아 탄 채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지난 날 우리 가족이 살았던 집이 있던 동네를 지나치자니 오랜 시간 암으로 투병한 끝에, 함께 누워 자던 아내에게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하고 하얀 휴지 조각을 손에 꼭 쥔 채 숨을 거두셨던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이 정지 화면처럼 떠올랐다. 채 마저 다 감지도 못하고 아내가 누워 자는 방향에 멈춰있던 시선, 잊혀지지 않는 그 텅빈 눈동자.


그렇게 유심히
뜯어 보지 말 걸 그랬어


혼잣말이 툭하고 튀어 나왔다.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없어 아버지의 글을 유심히 보지 않을 불특정의 친구들은 어차피 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애둘러 말해도 아버지의 근황이 궁금한 누군가는 찬찬히 읽어 보았겠지. 그리고 알았을 것이다. 몸이 아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인지라 돈은 필요한데 아버지 대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늦게까지 식당일을 하곤 돌아와 지쳐 잠든 아내에게 더 이상 돈 얘기를 할 수도 없는 상황처럼 말 못할 어려움이 있으리라는 것을. 어쩌면 편지를 보낸 것만으로도 아버지의 마음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오래간만에 쓰는 글이라 맞춤법만 틀리지 않으면 그것으로 충분했었다. 무슨 마음으로 빨간펜질을 집요하게 해 댔던 것인지.


틀렸다고 해서
화를 냈던 게 아니었어


늦은 나이에 소식도 묻지 않던 사람들에게 갑작스럽게 편지를 썼던, 간만에 추억들을 건져 올리면서도 그 흔한 밥이라도 함께 먹자는 말 한마디가 없던, 그림을 좋아할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불쑥 그림 사진을 끼워 보내던 아버지. 어버지는 그림을 팔려는 게 아니었다. 수많은 밤 외로움에 기대어 추억 속에 오래도록 간직하고픈 풍경들을 그려내며 못 다 이룬 화가의 꿈을 다시 꾸려했던 마음을, 성공한 모습은 아니더라도 초라하게 무너진 모습으로는 옛친구를 만나고 싶지 않았던 고집을, 아내와 딸에게 미안하지만 해 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을 뿐더러 자기 자신 하나 건사하기도 너무나 버거워 기댈 어깨를 내어 줄 수 없는 가장이 되어 버린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자존심을 팔려는 거였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내의 부담을 덜고 치료를 이어가 건강을 되찾은 가장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었던 거다. 그 간절함도 모르면서 마치 의도한 바를 다 이해하기라도 했다는 듯이 드러내고 싶지 않았을 아버지의 민낯을 가리던 모자를 거침없이 걷어냈던 거구나. 나는.


알아서 고쳐?
알긴 뭘 알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햇살이 쨍한 날 아버지는 그동안 그렸던 그림들을 마당 주변에 빼곡히 줄을 세워 놓으셨다. 3가구가 하나의 외부 화장실을 함께 쓰는 달동네 집 마당이란 고작 10개가 되지 않는 그림으로도 발 디딜 틈이 없어질 만큼 비좁았다. 우리가 세들어 사는 집의 주인이 돌아오기 전에 얼른 치워야 할 텐데 싶었지만 아버지는 몰라보게 헐렁해진 런닝을 걸쳐 입고는 연신 땀을 훔치며 그림을 하나씩 사진에 담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버지를 뒤로 하고 그림과 그림 사이의 한발 크기만한 틈새를 비집고 기어이 집을 나섰다. 말로는 오전에 미술사 강의가 있어서라고 했으나 실제로 강의는 오후에 있었다. 하지만 알게 뭔가?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던 나와 밤늦게까지 식당 주방의 열기 앞에서 쉴틈없이 일해야 하는 어머니, 두 사람은 하루를 촘촘하게 나눠써도 시간에 쫓기느라 숨이 턱에 차곤 했다. 그런데 모두가 일하러 나가버린 집에 홀로 남아 지난 날 그렸던 그림의 사진이나 찍으며 소일거리를 하는 아버지를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히고 심장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차라리 안보는 게 나았다.


1년전 위암 수술을 받고 난 후 퇴원해 통원치료를 다니기에 정규적인 일거리를 가질 수 없기도 하고 여전히 몸이 편치 않다는 것은 알았지만 자업자득이 아닌가? 그렇게 뜯어 말리던 사업을 벌리더니 3번을 연이어 말아 먹고 한술 더 떠서 허구한날 술을 입에 달고 살다가 어느새 나이가 차 버린 후, 돈과의 싸움이라는 병을 얻고 말았던 아버지였다. 아내와 딸에게 드리워진 억척같은 생활고에서 열외되어 버린 아버지의 낭만 따위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보내는 편지를 읽은 친구들의 도움으로 조금이나마 숨통이라도 트이길 내심 바랄 뿐. 무슨 말인지 알아 들을 수 없는 편지를 써 보내는 건 허세라고 생각했다. 그게 내가 아버지의 편지를 완전히 새로 고쳐 썼던 이유였다.


고쳐 써 준대로 편지를 보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거나 그림들은 어느새 하나 둘씩 사라졌다. 하지만 아버지의 투병생활은 암의 재발이라는 절망적인 벽앞에 다다르고 말았다. 그림을 팔아서 재기를 노릴 수 있는 수위를 넘어섰고 이후로 아버지는 내내 집에 칩거하며 서서히 기력을 잃어갔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취업한 회사에서 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방에 누운 채 나를 올려다 보며 내 이름을 불렀다.


현아


때마침 식당일을 마친 어머니가 방으로 들어오며 뭔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알아챘는지 서둘러 나를 내방으로 돌려보냈다. 아마도 아버지가 옷에 실례를 한 모양이었다. 내가 좀 처리를 해주기를 바랬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보다는 아내가 나으려니 싶어서 자리를 피했다. 다음날 아침, 나의 방문을 노크도 없이 스르륵 여는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머니?


네 아부지,
가셨다.


아버지는 전날 밤 나를 올려다 보던 그 자리에 웅크린 채로 미동도 없이 누워 있었다. 조금씩 곁으로 다가가 얼굴이 놓인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마지막 인사였을까? 어제 나를 불렀던 것이. 옷이라도 갈아 입혀드릴 걸 그랬다. 내방으로 가기 전에 잠시만이라도 앉아있을 것을 그랬다. 눈이라도 마주 볼 걸 그랬다. 텅 비어 버렸다. 아버지의 눈동자도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아버지가 그림을 다시 그리던 때 첫번째로 완성했던 노을지는 저녁의 바다를 담은 풍경화 1점 뿐이다. 빌어먹게도 다른 그림은 모조리 완판이었기에. 아버지가 그렸던 그림에 대한 흔적은 그것을 찍었던 사진을 인화할 때 썼을 아날로그 필름 뿐이다. 현광등에 비추어 보니 같은 그림의 사진이 꽤나 여러 개로 각도를 달리하여 찍혀 있다. 내가 나간 후에도 오랜 시간 위치를 바꾸어가며 사진을 찍었던 모양이다. 한참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림을 그리고 딸이 늦은 시간 귀가해서 열고 들어올 녹이 잔뜩 슬어 있던 낡은 철문을.





노을은 여전합니다.



노을이 지는 일출과 일몰에는 낮보다 밝기가 줄어들어 태양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아직 대기가 데워지기 전인 일출 때에는 태양을 중심으로 하늘이 황금빛처럼 밝게 물들고, 대기가 충분히 데워지고 일상의 먼지도 많이 떠있는 일몰 때에는 하늘이 붉게 타오르는 듯 보인다고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항상 우리 옆에 있는 자연이지만 시간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고 말이다.


하늘이 햇빛에 물들어 벌겋게 달아오르듯이 부단한 실패 속에서도 항상 꿈을 꾸지 않은 적이 없었던 아버지의 삶이란 언제나 벌겋게 달아오르듯 붉었던 것 같다. 그림에 새겨 넣은 이니셜 young처럼 늘 젊은 영혼. 새로운 하루를 열 때와 내일을 위해 닫을 때마다 달아오르는 노을을 본다.


언제적일지 모를 저녁은 몹시도 붉더이다.
나를 부르며 바라보던 때를 기억하시는지
이제서야 간절했던 소망들을 떠올립니다.
노을은 여전합니다. 마음에 드실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