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모르는 러브레터
아빠와 엄마, 두 사람의 전쟁 한 가운데 서서 괴로웠던 사춘기 시절 나는 오직 일기장에서만 진심을 얘기했다. 걱정과 슬픔, 분노와 원망, 일기장은 감정의 배설물을 처리하는 해우소였다. 누군가는 내 진심을 훔쳐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나만 아는 공간에 숨겨두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실수처럼 들통나 버리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관여할 수 없는 전쟁의 여파로 내가 얼마나 힘들어 하는지 알아 주었으면 했다.
지긋지긋하게 싸우는 부모에 대한 원망을 한가득 담아 갈겨 쓴 일기의 모퉁이에 낯선 필체가 보였다. 줄에서 벗어나 특이하게 각이 진 것을 보니 아버지가 틀림없다.
현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 엄마도 사랑한다.
혹시 읽은 것일까? 내가 쓴 글들을. 들으라고 떠들었는데 막상 들은 사람의 표정이 우울해지는 것을 상상하니 가슴이 저렸다. 그러면서도 마지막 문구는 갸웃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를 사랑한다고? 언제부터?' 뜻은 이해가 되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믿을 수 있게 행동을 했어야지. 말과 행동이 다르잖아. 하지 말라는 것은 계속하고 아무리 화를 내고 난리를 쳐도 귓등으로도 안 듣더만.
길면 길었을 암투병 끝에 세상을 뜬 아버지, 더 이상의 충돌이 없는 평온이 지속되었지만 외동딸과 사위가 함께 사는 공간 속의 어머니는 밝아보이지 않았다. 이젠 어머니가 식당에 나가 일을 하지 않아도 돈을 벌어 오는 사람들이 있으니 집안 일을 대신 해 주며 지냈기만 하면 되었지만, 그건 딸의 살림이지 자신의 살림은 아니었다. 남의 집 살이와 다르지 않았다.
간밤에 네 아부지가 보이더라.
약 봉투를 쥐어주고 가데
불길한 기운, 개꿈이기를 빌어지만 높은 곳에 계신 분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게 분명했다. 병원에서 암선고를 받은 지 3개월 남짓한 시간 끝에 어머니는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어쩌면 긴 투병에 지쳐가는 가족의 일상을 자신이 몸소 재현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삶이란 붙잡는다고 살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의지를 놓치 않는 시간만큼 조금은 더 연장할 수 있다는 걸 아버지를 보며 느꼈던 까닭에 서둘러 마음을 접고도 남을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몇년 뒤 어린 시절부터 친자매 같이 의지하며 지냈던 분이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문득 먼저 간 어머니가 보고 싶어져서 딸인 나의 목소리라도 들으려고 전화를 했단다. 지난 날 친언니처럼 잘 해주던 어머니의 이야기를 하나 둘씩 꺼내 놓았는데 뜻밖의 말을 들었다.
언니가 형부 생각을 많이 했지
돈만 아니면 싸울 일도 없었을 거라고
언니가 형부 정말 좋아했거든
'저기 잠깐만, 누가 누구를 좋아했다고요?'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기분이었다. 나만 아니었으면 이미 훨훨 자유롭게 떠나고 싶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머니를 잡아두기 위해 나는 반박을 하려던 아버지의 팔을 살포시 잡음으로써 입을 막아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이 그리웠나? 처음부터 끝까지 마음에 품고 있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럼 나는......무엇을 한 것인가.
학교 수업을 마치면 화판과 화구를 들고 바다와 언덕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던 소년, '영'이었다. 17살, 소년은 아직 어린 나이임에도 원치 않게 집안의 가장이 되어 있었다. 사업을 하다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어버린 소년의 부친은 어느 날 아침 세수를 하다가 피를 쏟으시곤 그 길로 가족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아들 4명만을 덩그러니 넘겨 받은 소년의 어머니는 너무도 막막하고 두려운 마음에 도망치듯 사라졌고 아이들만 남았다. 각자 제 살길을 찾아 헤메던 형제들은 간간히 모이곤 했는데, 각자의 생활을 이야기하고 나면 언제나 훈수를 두며 엄한 경로에 빠지지 않도록 단속해야 하는 건 큰 형인 '영'의 몫 이었다. 그림을 썩 잘 그리던 '영'을 지극히 아끼던 미술 선생님은 그가 화가로 성장하기를 염원했으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생소한 인테리어 디자이너의 길, 그건 순수한 예술을 값싼 돈에 팔어 먹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은 그 길을 선택했다. 실망한 미술선생님과는 연이 끊어져 버렸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건설 쪽의 일을 배우며 조금씩 자신의 앞길을 닦아 나갔다.
"너는 예쁘장하니 볼도 빨간 게 그냥 딱 앵두라 해야겠다."고 해서 별명이 '앵두'가 된 소녀가 있었다. 한국인이지만 태어난 곳은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이 맞닿는 곳, 방직공장을 운영하던 소녀의 아버지는 해방이 될 무렵 돈 한푼 챙기지 못하고 그곳에서 쫒겨나 한국에 자리를 잡았는데, 그 와중에 먼저 세상을 뜬 아내의 자리는 곧 새로운 아내로 채워졌다. 핏줄이 같은 언니가 있었고 다른 동생들이 생겨났다. 낳아 준 엄마가 아닌 사람과 한 집에 사는 것이 부대꼈던 소녀는 따로 독립한 언니와 살 요량으로 집을 떠났다. 하지만 전쟁이 발발하면서 모든 것은 꼬여 버렸고 아버지와도 언니와도 연이 닿지 않는 외톨이가 되고 말았다. 소녀는 졸지에 고아원에서 보내졌고 부대 위문 공연을 명목으로 고아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무용단에서 고전무용과 발레를 배워 무대에 올랐다. 소녀는 공연의 요정으로 귀여움을 독차지 했고 그곳에서 친자매와도 같은 동생들과 정을 나누며 제법 잘 지냈다. '앵두'라는 별명은 그때 붙은 애칭이었다. '앵두'는 성인이 되자 그곳을 나와 이곳 저곳을 전전하며 스스로 생활을 유지하며 살았다.
어떤 이유로든 부모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혼자 삶을 개척하듯 살아야 했던 '영'과 '앵두'는 서로의 외로움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두 사람은 억척같이 견디며 살아오느라 지친 서로에게 어깨를 빌려주며 지냈다. 32살 동갑내기, 어쩌면 당시로는 조금 늦은 때 두 사람은 가정을 꾸렸다. 하나 뿐인 보물 '현'이 세상에 나왔고 "자신들처럼 부모의 보호없이 자라지 않게 하겠다."고 두 사람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영'은 미친듯이 일을 했고, 마흔에 근접할 때는 이미 중견기업의 이사 자리를 꿰어 찰 수 있게 되었다. '앵두'는 아이에게 부족함이 없도록 모든 것을 세심하게 살피고, 늦게까지 일하느나 지쳐 돌아오는 남편을 챙겼다. 남부럽지 않게 재산을 모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사는데 지장은 없을 만큼 안정이 되었고 그 속에서 '현'은 천방지축으로 방방 뛰어 다니는 해맑은 아이로 자랐다. 모든 것이 완벽하다 싶을 때, 남이 부러워 할 만큼 튼실한 가정을 일구고 싶다는 욕망이 피어올랐다. '영'의 부친에게 찾아온 불행의 씨앗이 '영'에게도 돋아나기 시작했다.
사기꾼의 유혹에 사업을 벌려 그동안 악착같이 쌓아온 모든 것을 잃어버린 '영'은 조급해졌다.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그는 서둘러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했다. 그는 다시 시도하고 또 시도했다. 자신의 부친처럼 아내와 자식을 빈털털이로 내 몰고 떠날 수는 없었다. 한편, 한때 외롭게 살아온 날들의 보상 같던 시간들을 안겨주던 '영'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앵두'는 겁이났다. 자꾸 일을 벌이지 말고 작더라도 안정적인 곳에서 차곡차곡 다시 시작하자고 했지만 '영'은 말을 듣지 않았다. 나날이 더 깊은 바닥으로 내려 앉고 있는 가정을 보며 두 사람의 희망은 점점 절망으로 변해갔다. '영'은 술이 늘었고 '앵두'는 욕이 늘었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은 '현'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갔다. 지켜주고 싶었던 아이는 두 사람의 전쟁에 재물로 바쳐지고 있었고 두 사람은 아이에게 미안했다.
그럴려고 한 게 아닌데 서로의 고질적 상처를 감싸주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다 서로 간의 거리를 확인하지 못한 채 너무 멀리 경로를 이탈해 버렸다. 아내와 딸, 모두 사랑했다. 사랑하니까 지켜주고 싶었고 어떻게든 지난 날 행복했던 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것이 '영'의 진심이었다. 남편과 딸, 둘은 세상에 홀로 남은 자신에게 유일한 가족이었다. 그건 절대로 나누어질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편이 미운 게 아니라 남편과 점점 멀어지게 만드는 돈이 미웠다. 딸이 거추장스러웠던 게 아니라 딸의 불안한 눈빛에 죄책감이 들었다. 남편만 마음을 다 잡아주면 가정이 깨지는 일은 없을 것이고 아무도 잃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앵두'의 진심이었다.
나의 앵두에게 from 영
두 사람의 전쟁에도 잠시나마 휴전이, 무언의 이해가, 화해에 대한 소망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여전히 반목이라는 틀에 두 사람에 대한 기억을 가둬 두고 있었다. 더 이상 물어 볼 기회도 갖기 어려웠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생존투쟁의 이야기로 변질되어 있었다.
서로를 향해 삿대질을 일삼는 손은 항상
품은 온기가 다다르고 싶은 방향을 가리킨다.
"네 엄마도 사랑한다"는 말, "언니가 형부를 정말 좋아했다"는 말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 마음이 없이 죽는 순간까지 어떻게 반평생을 함께 할 수 있었겠는가?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어머니의 꿈 속에서 약봉투를 들고 나타난 아버지, 그건 약봉투가 아니라 사랑하는 '앵두'에게 '영'이 쓴 러브레터가 아니었을까? 이제 혼자 외롭게 지내는 거 그만하고 나와 살자는, 당신이 없는 곳은 너무 외롭더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