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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웃아찌 Aug 22. 2020

뻥튀기와 혜진이

뻥튀기에 관한 아련한 추억 이야기


'뻥이요~ 뻥!'

깜짝 놀라 창밖을 내다보니 어릴 적에 보았던 뻥튀기 기계에서 나는 소리였다. 아파트 단지 내에 5일장이 열린다더니 뜻밖에 뻥튀기 장수가 온 모양이었다. 뻥튀기를 하는 소리는 나의 아련한 기억들까지 수증기처럼 스멀스멀 피어오르게 하였다. 추억의 뻥튀기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마는 나는 어릴 적 어떤 트라우마로 인해 한동안 뻥튀기를 가까이할 수 없었던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내 어린 시절을 거쳤던 70년대만 해도 먹거리가 그리 넉넉지 않았다. 그 시절 아이들은 늘 배가 고팠다. 동네에서 아이들 주전부리라고 할 만한 것이라고는 삶은 고구마나 감자, 옥수수뿐이었고 동네엔 구멍가게도 많지 않아 요즘처럼 다양한 먹거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이었다. 가끔 동네를 찾는 뻥튀기 아저씨는 뱃속이 허전하기만 한 아이들에겐 가뭄에 단비 같은 반가운 손님이었다.

동네에 뻥튀기 아저씨가 왔다고 하면 아이들은 득달같이 달려 나가 동네 공터에 앞다퉈 모여들곤 하였다. 엄마는 늘 내게 뻥튀기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엄마가 주는 쌀과 옥수수를 들고 동네 공터로 향했다. 먼저 온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고 아이들이 심부름을 오는 경우가 허다했다.

뻥튀기 아저씨는 세탁소 앞 공터 한쪽에 자리를 잡고 뻥튀기 기계를 돌리고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 아저씨 얼굴은 항상 검게 그을려 있었던 것 같다. 뻥튀기 기계를 한참을 돌리다가 '뻥이요~'' 하고 외치면 아이들은 한 걸음씩 물러나 양쪽 귀를 막고 눈을 찔끔 감았다. 그러면 아저씨는 불통을 뺀 뒤 기계를 살짝 수그리고 긴 원통 자루를 기계에 연결한 뒤에 쇠꼬챙이를 비틀었다.

'쉬~익'하는 소리가 나더니 '뻥!' 하고 동네가 떠나갈 듯한 폭발음이 터졌고 고소한 냄새와 함께 하얀 수증기가 눈앞을 가렸다. 서서히 하얀 수증기가 바람에 날려 흩어지면서 다시 사물이 드러나기 시작하면, 마치 요술을 부리듯이 쌀 튀밥이나 옥수수 튀밥이 원통 자루 가득 담겨 있었다. '뻥' 하고 터지면서 밖으로 튀어나온 하얀 튀밥을 아이들은 주워 먹기도 하였다. 인심 좋은 아저씨는 꼬마 아이들이 귀엽다고 뻥튀기 한 줌을 손에 쥐어주곤 했었다. 그걸 받아먹는 재미에 아이들은 옹기종기 모이곤 했었다.

그때 그 시절, 뻥튀기에 대한 추억은 마음 따뜻해오는 정겨운 풍경이고 추억의 맛이다. 그러나 나는 뻥튀기를 생각하면 가슴 아픈 사연으로 마냥 유쾌하지만은 않다. 봐서는 안 될 충격적인 광경을 목격한 까닭이다. 아득한 45년 전의 일이었다. 동네에는 허름한 구멍가게 옆에 세탁소가 있었고 그 앞에 공터가 있었다.

그 세탁소에는 나의 친구인 혜진이라는 예쁜 여자아이가 살고 있었다. 그림도 잘 그리고 성격도 활달해서 같이 어울려 놀곤 했었다. 혜진이는 뻥튀기를 무척 좋아했고 뻥튀기를 하는 날이면 함께 나눠먹곤 하였다. 그리고 7살이었던 혜진이한테는 4살, 2살 남동생이 있었고 동생들을 끔찍이도 아끼던 아이었다. 동생이 없는 나는 그런 귀여운 동생을 둔 혜진이가 무척 부러웠었다.

그날은 초여름이었고 날씨가 꽤 더웠음에도 뻥튀기를 하겠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나는 내 차례가 많이 밀려있어 재료를 맡겨놓고는 잠깐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뻥 소리 횟수를 세면 내 순번을 알 수 있었다. 잠시 후 '뻥'하고 소리가 났다. 당연히 뻥튀기 소리인 줄 알았고 곧 내 차례가 오겠거니 했다.

그런데 평소에 들리던 뻥튀기 소리와는 사뭇 다른 묵직한 소리였다. 잠시 후 '삐~용, 삐~용' 사이렌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나가보니 동네 어른들이 공터에 우르르 모여 웅성거렸고 한 복판에서 어느 아줌마의 절규하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가 보니 혜진이의 엄마였고 어떤 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내 아들 살려 내라고 울부짖는 게 아닌가!

혜진이의 두 살 된 막냇동생이 뻥튀기 아저씨가 주는 뻥튀기를 받으러 아장아장 걸어가다가 골목에서 후진하는 화물트럭에 치어 압사된 것인 걸 알았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시신과 사방에 낭자한 피가 사고의 잔혹함을 여실히 말해주고 있었다. 혜진이 엄마는 울부짖다 정신을 잃었고 어린 혜진이는 저만치에서 주져 앉아 부르르 떨며 울고 있었다. 뻥튀기 아저씨도 어찌 할바를 몰라 멍하니 서있을 뿐이었다. 애들은 가라고 하는 동네 어른들의 말에 사태가 어찌 수습되었는지는 보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와 버렸다. 행복감을 주었던 뻥튀기 공터가 악몽 같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나는 그 사건 이후 잔상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충격에 한동안 잠을 설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줄곧 찾아왔던 뻥튀기 아저씨는 한동안 자취를 감추고 나타나지 않았다. 나뿐만 아니라 동네 아이들도 그 충격의 현장을 본 후로는 뻥튀기 아저씨를 찾지 않았다. 활달했던 혜진이는 그 충격으로 말이 없는 내성적인 아이로 바뀌었다. 나는 어린 나이에 뭐라고 혜진이를 위로해야 할지 몰랐다. 아직도 그때 공포에 떨고 있던 혜진이의 모습이 생생하다.

이처럼 뻥튀기는 나에게 있어서 가난했던 시절 허기를 달래줬던 먹거리로 좋은 추억이자 동생을 잃은 아픔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혜진이를 떠오르게 하는 아픈 기억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동안 잊고 있었고 사라진 줄만 알았던 사연 많은 뻥튀기 하는 장면을 다시 보게 되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것도 바로 도심 속 집 앞에서 어린 시절의 그 까마득한 추억 속의 뻥튀기 장수를 보게 될 줄이야 상상이나 했겠는가. 묘한 감정이 교차했다.

뻥튀기를 하는 날이면 방 안 가득 고소한 뻥튀기 냄새가 가득했고 마음은 부자가 된 듯했던 그때 그 시절이 바로 엊그제만 같다. 한날에 행복과 불행을 동시에 경험했었던 그때 일이 벌써 반백년이 다 되어간다. 뻥튀기를 볼 때면 훈훈했던 추억과 더불어 마치 스토커처럼 어린 혜진이가 어김없이 소환된다.

혜진이를 마지막으로 본 때는 나의 결혼식이었다. 동네 친구들이 소문을 듣고 고맙게 찾아와 주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20여 년이 흘러서인지 조금은 밝은 옛 모습을 찾은 거 같아 보였다. 하지만 세월이 아무리 약이라 한들 그 일이 어디 쉽사리 잊힐 일인가. 그의 그늘진 얼굴엔 여전히 지나온 고통의 나날을 보낸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혜진이는 큰 출판사에서 아동서적 삽화를 그리는 일을 한다고 했다. 어쩌면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미안한 마음과 사무친 그리움을 그림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날 혜진이와 예식장에서 본 후 또 2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결혼을 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려 일산에서 산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혜진이는 지금도 뻥튀기를 먹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혜진이가 사는 동네에도 5일장이 열려 뻥튀기 장수가 오거든, 부디 안 좋은 기억과 아픔은 '뻥'하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훌훌 날려버리고 몇 배로 뻥튀기된 튀밥처럼 행복도 뻥 튀겨 아픈 기억을 안고 살았던 날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죽은 막냇동생 몫까지 더하여 남들보다 더 많은 행복을 누리며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 한 자루 해온 뻥튀기를 보니 흐뭇하기만 하다. 뻥튀기를 먹으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천진난만했던 혜진이와 뛰놀던 그때가 떠오른다. 뻥튀기 한 줌을 혜진이한테 쥐어준다. 혜진이는 동생들과 맛있게 나눠먹는다. 까르르 웃으며 마냥 행복해한다. 그 모습을 상상하니 오늘 먹는 뻥튀기 맛이 유난히 고소하고 달콤하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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