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을 추억하며
식당에서 메뉴판 외에 자주 보는 글귀가 있다. '음식을 남기지 말아 주세요', '음식 남기면 벌금 000원' 등의 문구. 경고의 형식을 갖춘 말이자 음식 낭비를 하지 않기 위한 간절한 부탁이기도 하다. 음식을 남기면 안 되긴 하지만 포만감으로 수저를 놓기가 부담스러워 한두 수저라도 남길 때가 있다. 디저트 먹을 배를 남겨야 한다는 핑계를 대면서. 어쩌면 남긴 음식보다 디저트에 드는 칼로리나 비용이 더 클지도 모른다.
지인을 만난 그날은 달랐다. 나에게는 특별한 지인이다. 우연히 글쓰기 교실에서 동기처럼 만났지만 그때만 해도 몰랐다. 그저 스치는 인연이 아니라 다소 어색하지만 마음을 나누는 글벗이 되리라는 운명을. 어른이 될수록 깊은 생각을 오래 나누기 쉽지 않은 사회적 구조와 시대적 변화를 차치하고서도 말이다.
평소에도 온라인으로 우정을 나누면서 흔히 습관적으로 인사하듯 차 한잔하자고 말은 했지만 무언 가운데서도 안다. 그저 좋은 감정으로 마무리하고 싶은 표현이라는 것을. 설사 그 말이 진심이라 해도 서로 생활 패턴이 다르고 삶이 바쁘다 보니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기도 하다. 그래서 그날의 만남이 더 감사하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았는지도 모르겠다.
벼르고 벼르던 만남이라서 밥 한 끼 후딱 먹고 끝내고 싶지 않았다.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식사가 아니었기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독서와 글쓰기 벗으로 만난 그분은 잠시 글로 소통하고 의견을 나누었던 인연으로 지나치기에는 아쉬운 매력이 있는 분이다. 직접 마주한 나눈 순간도, 기회도 거의 없었는데도 여전히 그분의 글을 읽고 생각을 읽으면서 '좋아요'나 '댓글'의 흔적을 남긴다. 짧더라도 내 생각을 남긴 글을 남길 포인트를 찾는 날이면 마치 보물 찾기에서 쪽지를 발견한 듯 기쁘기도 하다.
그날 도서관에서 수업을 마치고 또 다른 글벗님의 추천으로 근처 식당에 가서 그동안의 소식을 서로 전하며 식사를 마쳤다. 비가 왔다 갔다 하는 날씨였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는 사이기에 자연히 커피숍까지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글쓰기라는 공통 주제를 벗어나 드라마, 가족, 관계, 생활 등 여러 이야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굳이 비슷한 생각이 아니라도 다른 생각을 듣거나 몰랐던 사실을 듣는 행위 자체가 소중하게 느껴졌다. 스몰토크에 별 자신이 없어서 조금 긴장했었는데 지인의 솔직하고 따뜻한 시선을 보며 말하다 보니 나도 덩달아 수다쟁이가 된 기분이랄까.
아쉬운 이별을 하며 집에 돌아오는 길에 그저 지인과의 만남을 기억에 맡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그냥 어쩌다 이루어진 만남으로 날려버리고 싶지 않은 기분. 여행을 가면 다시 보든 보지 않든 사진을 찍지 않나? 경치가 좋아서 혹은 그곳에 갔던 사실을 기록으로 남기도 싶어서. 그날을 돌이키며 다시 한번 느낀 게 있다.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과는 살찔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내팽개치고 그저 그 시간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그래서 연애를 하면 살이 찌기도 하나보다. 친한 친구랑 군것질을 하는 학창 시절도 마찬가지다.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마주쳤다는 생각에 유치한 일기 같더라도 남기고 싶었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근처 스티커 사진이라도 찍으러 갔겠지만. 멋지게 꾸밀 필요도 없이 소박한 글로 남기니 나만의 사진을 추억에 담은 기분이다. 손끝으로 전해지는 나의 되새김이 조금이나마 의미를 머금도 떠다닐지라도...
그분과의 인연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겠다. 빨리 호감이 갔다가 빨리 식는 관계가 아니어서 좋다. 헤어져도 많이 아쉽지 않고 언젠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곳에서 만나고 반가운 인사를 할 수 있으리라는 느낌이 있어서다. 뭐랄까, 믿음이 있다고 해야 하나.
그분과 드문드문하더라도 안부를 묻고 글을 남기는 사이를 소망한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해도 우리에게는 글이 있다. 생각을 담고 진심을 담은 글로 소통과 우정의 오작교가 되길...
불완전하지만 그래도 솔직한 마음을 나눌 수 있어서 또 다른 세상을 알게 해 준 그분을 기억하며 음식이 아니라 글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