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사소한 것들> 저자클레어 키건출판다산책방발매2023.11.27.
1980년대 중반 아일랜드의 한마을에서 석탄 목재상인 빌 펄롱은 현재 아내 아일린과 딸 다섯을 거느린 가장이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지만 아내와의 사이가 좋고 딸들도 끔찍하게 아끼는 아버지이기도 하다.
펄롱의 출생 이야기는 좀 특별하다. 미시즈 윌슨이라는 과부의 집에서 하녀로 일하던 어머니는 16세에 임신하여 펄롱을 낳았다. 역사적으로 가톨릭교도가 많고 관련 제도, 윤리에 큰 영향을 받고 생활하는 아일랜드에서 미혼모의 삶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이런 일을 죄악시하고 배척했던 가족과 이웃과 달리 미시즈 윌슨은 하녀를 내쫓지 않았다. 출산부터 육아를 허용하고 도왔을 뿐 아니라 펄롱이 자라자 글도 가르쳐 주고 결혼 자금을 지원하는 등 그를 자식처럼 대해 주었다. 펄롱의 나이가 겨우 12세일 때 어머니는 급성 뇌출혈로 사망했고 그 후에도 미시즈 윌슨과의 인연은 계속되었다. 미시즈 윌슨은 펄롱에게 또 다른 어머니이자 멘토였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진 시기 펄롱은 석탄 배달 일로 수녀원을 방문했다가 창고에서 밤새 갇혀 벌벌 떨고 있는 소녀를 발견하고 충격에 휩싸인다. 소녀는 겁에 질린 채 자신의 아기에게 젖을 먹이고 싶다며 수녀님께 말해 달라고 호소한다. 비록 펄롱이 수녀원장을 알현했지만 억압적인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 자리를 떠난다. 펄롱은 자신의 딸들을 떠올리며 수녀원의 소녀를 돕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힘든 나날을 보낸다. 고민 끝에 펄롱은 앞으로 예상되는 수많은 불이익과 비난을 무릅쓰고 소녀를 구출하리라 결심하고 길을 나선다.
이 소설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하기에 더욱 강렬한 매력이 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정말 사소할까? 오히려 사소하다는 말이 전혀 사소하지 않다는 의미를 강조하는 듯하다. 상식적으로 작은 일, 하찮은 일을 강조하는 일은 드물다. 제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 책은 하찮은 일을 서술한 재미없는 책에 불과할 것이다. 뭔가 반어적인 어휘를 통해 반전이 있지 않을까 궁금했다.
그렇다면 사소함이란 무엇인가? 사전적으로 '보잘것없이 작거나 적다'라는 뜻이다. 대개는 이 단어를 양의 대소보다는 풀이의 앞부분 '보잘것없다'라는 의미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쓰지 않나 싶다. 펄롱에게 과연 무엇이 사소하며 어떤 의미인지 보자. 초반에 펄롱이 여기는 사소함의 예가 나온다. 딸들이 성당에서 무릎을 꿇어 신 앞에 경외감을 표하거나 상점에서 물건을 살 때 감사를 표현하는 행위는 사소하지만 당연히 해야 하는 삶의 태도이다. 그래서인지 딸들의 이런 모습에 진심으로 감사하며 행복을 느낀다.
둘째 펄롱의 따뜻한 성격이다. 말주변은 없지만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고 막내딸의 두려움에 공감하며 누구보다도 넓은 가슴으로 감싸 안는다. 꼭 해야 하는 일을 스스로 하려 노력하며 가족도 이를 실천하길 바라면서도 강요하거나 고집을 부리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타인을 대할 때나 심지어 자신을 버리고 간 아버지를 상상하는 장면에서도 드러난다. 추운 겨울 펄롱에게 따뜻한 차를 대접하는 이웃 여인을 보고 왠지 자신의 아버지는 다른 삶을 꿈꾸었기에 그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연민일 수도 있지만 아버지를 단죄하거나 원망하지 않는 그의 사색이 놀라웠다.
셋째, 펄롱이 겪는 내면적 갈등을 통해 보게 되는 나에 대한 의식이다. 펄롱과 적대 관계에 해당하는 인물의 태도와 말투에 화가 나면서도 어느 순간 그 분노의 대상은 바로 나를 비롯한 군중의 무관심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평소 펄롱과 아내 아이린은 각자 일터와 집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가족을 돌본 덕에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며 서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린이 수녀원의 불쌍한 소녀 이야기를 듣고도 그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라며 정색하자 소심하게 항의하는 펄롱의 모습은 처절해 보일 정도였다. 만약 미혼모가 된 자신의 어머니가 고용주인 미시즈 윌슨의 이해와 배려가 없었다면 어머니는 물론 펄롱 또한 혹독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게다가 그 소녀와 펄롱 어머니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모두 ‘세라’였다. 수녀원에서 고문에 가까운 대우를 받으며 소녀는 자신의 어머니이자 딸일 수 있었고 펄롱 또한 소녀의 빼앗긴 아기처럼 사라질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엄격한 잣대로 타락한 인간 취급을 하며 무언의 압박을 행사하는 수녀원장보다, 소녀에 대한 친절과 관심에 불편함을 드러내는 젊은 수녀보다 더 실망스러운 대상은 따로 있었다. 오랜 세월 깊게 뿌리 박힌 전통과 윤리의 기준인 수녀원의 처사에 동조하고 소녀들의 비참한 생활을 방관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는 대중들, 수용소의 소녀들은 모두 문제 있는 탕녀이며 벌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무리 혹은 내 삶과 상관없는 일이라며 무시하는 이웃의 냉정함이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라고 이런 부류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미시즈 윌슨이었다면, 펄롱의 입장이었다면 사회의 비난은 물론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 개인을 위해 희생하거나 배려할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행하기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이다. 부당함에 맞서 용기를 내는 일, 특히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사소한 일이라 치부하는 일을 과연 내가 해내고 감내할 수 있을까 싶다.
결국 이러한 인간의 심리를 파악한 작가의 고발 의식이 펄롱의 갈등과 결심, 실천으로 나타나 우리 스스로 비겁한 모습을 알아차리게 했다. 마침내 소녀를 구해 길을 걷는 펄롱의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하거나 모른 척 형식적으로 인사할 뿐이었다. 이후 그가 겪을 불이익과 오해는 불 보듯 뻔하기에 열린 결말로 끝나버린 이 소설이 그저 당연한 비극을 그려낸 디스토피아는 아니라고 본다. 단순히 과거를 비추는 사실주의에 그치지 않고 펄롱과 소녀를 바라보는 우리에게 해답이 있음을 암시하는 희망의 손짓 같았다. 삶은 결국 선택의 문제이고 정의로운 선택이 많아질수록 위대한 역사는 이루어지니까. 비극은 현실을 너무 절망적으로 그려 때로는 허무한 감정만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끔찍한 세상이 어디 있냐며 좌절하고 한탄만 하게 한다. 그렇다고 끝이 무조건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었다면 순간의 허기만 달래는 허구로만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설이니까 가능하다며 비겁한 나의 마음을 슬쩍 모른척하고 책을 덮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펄롱의 용기와 소신 있는 행동에 감사하고 싶다. 자신과 의견이 다름에도 여전히 아내에 대한 사랑을 멈추지 않고 사소하지만 가치 있는 선택을 내리고 실행하는 펄롱.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억울한 약자가 존재함을 기억했다. 수많은 고민과 반성 속에서 미시즈 윌슨의 친절과 아버지처럼 대해 준 일꾼 네드의 배려를 잊지 않았다. 자신도 그런 사랑을 받았으니 소녀를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의지의 발걸음은 그 어떤 영웅보다 위대해 보였다.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가 걸린 일에 베푸는 사랑, 친절이나 관심은 절대 사소하지 않았다. 나비의 사소한 날갯짓은 저 멀리에서 무서운 허리케인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사랑과 용기가 담긴 작디작은 씨앗은 가까운 곳에 떨어져 커다란 나무로 성장해 주변의 모든 생명체를 위한 안락한 쉼터가 되기도 한다.
*동일 서적 원서 독서 에세이(23년) 참조
https://blog.naver.com/mylover7661/223300873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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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Small Things Like These
* Title: Small Things Like These(번역본: 이처럼 사소한 것들/홍한별 역) * Author: Claire Kee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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