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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덜거림과 주체적 삶

by 애니마리아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 서 10장 10절


미사(missa, Mass)는 가톨릭에서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로 나뉜다. 두 가지 다 가장 중요한 축을 이루는 의식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종종 분심(分心)이 들거나 졸기도 하는데 이번 특전 미사 중 신부님의 말씀은 인간의 행위와 주체적 의식에 대해 깊은 묵상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시작은 오늘의 2 독서(가톨릭은 말씀 전례에서 총 세 번의 말씀 봉독(奉讀)-1 독서, 2 독서, 복음이 있다)의 한 구절의 인용에서 강론이 이루어졌다. 오신 지 얼마 안 되는 보좌 신부님은 경험에서 우러난 질문을 하셨다.



"제가 이 성당에 발령을 받고 가장 먼저 투덜거린 게 뭔지 아시나요? 바로 성당 앞에 있는 횡단보도입니다. 거리가 워낙 짧은데 늘 빨간색 신호등이 버티고 있어서 기다리기가 애매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주변을 둘러보고 차가 없으면 그냥 건너기도 했습니다. 여러분은 그곳을 지날 때 그냥 건너시나요, 아니면 끝까지 신호를 지키시나요?"



걸어서 10여 분 남짓 걸리는 거리지만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가 세 개나 된다. 특히 마지막 횡단보도는 삼사 미터 정도로 매우 짧은 거리다. 하지만 주변에 학교가 있고 한 아파트 단지의 출구이기도 해서 안전상 신호등을 설치해 놓은 듯하다. 원칙대로라면 거리에 상관없이 신호등을 지켜야 하는 게 맞다. 나 또한 정말 급하지 않으면 사람이 오고 가는 차가 없어도 기다리는 편이다. 재미있는 것은 내가 그 횡단보도 앞에 제일 먼저 서게 될 경우 뒤따라 오는 사람은 건너려 했어도 멈칫하며 망설인다는 것이다. 대부분 옆과 뒤에 서서 신호등이 녹색으로 바뀔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건너곤 한다. 물론 열에 한, 두 명 정도는 그냥 건너는 사람도 있다.



이와 반대로 제일 먼저 도달한 사람이 빨간 불 상태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뒤따라 가는 사람들 대부분 이렇다 할 망설임 없이 대놓고 건너는 모습을 보인다. 그럴 때 솔직히 나 또한 따라 건너고 싶기는 하다. 동시에' 어차피 1분 있으면 바뀔 텐데 좀 기다리지, 우리 어른이 안 지키면서 아이들에게 지키라고 하기가 부끄럽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이런 나를 보고 옛날 사람이라고, 고지식하다고, 꼰대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두렵기도 하다. 마음속으로는 갈등을 느끼기도 하고 '융통성 없이 나만 기다리는 게 아닌가'싶기도 하지만 웬만하면 기다리는 편이다. 교통법규 하나 잘 지킨다고 내가 도덕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신부님도 이런 경험과 생각을 하신 듯하다. 부화뇌동(附和雷同). 줏대 없이 타인을 따라 하는 상황에서 부정적으로 쓰이지만 '나만은 원칙을 지킨다'는 소신을 지키기 어려운 세상이다. 무엇인가를 지키는 것도 괜히 튀는 행동 같아 대중에 묻어가는 게 편하기도 하고 혼자 지키면 바보 같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괜히 눈치를 보기도 한다.



"빨간 불일 때 길을 건너면서 우리는 생각합니다. '저 사람도 건너는데 내가 안 건너? 뭐 어때. 다 건너는데. 차 없을 때 지나가면 되지.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저도 인간이니까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저는 그냥 기다립니다. 조급함을 버리고 신호등이 바뀔 때까지 그냥 기다립니다. 그러면 뒤따라 오는 분들도 '나도 지켜야지'하고 달리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생각해 보는 건 어떨까요? 신호등을 건너는 문제는 사실 선행과 악행으로 나누기에는 사소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타인의 잘못을 보면서 '나는 저 정도는 아니야. 저 사람에게 나쁜 일은 그럴 만한 짓을 했을 거야. 나는 저 사람보다는 나아. 겨우 신호등 하나 어겼을 뿐인걸.'이라고 말이죠. 사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보다 낫거나 나쁜 기준은 무엇일까요? 중요한 건 타인이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해서 저절로 내가 더 잘난 것도 아니고 타인이 더 잘하거나 착하다고 해서 내가 못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타인에 따라 내 생각과 행위를 정하는 게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 생각하기에 옳은 일, 바람직한 생각에 따라 행동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자신의 과오를 타인의 탓으로 돌리거나 투덜댐의 핑계로 삼지 않고요."



남이 한다고 다 따라 하는 게 아닌 주체적인 삶을 살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신 말씀과 묵상의 시간이었다. 나는 나를 다시 돌아보고 소신과 주체적 행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만의 원칙을 지키면서 혹여나 타인을 비판만 한 건 아닌지, 나 스스로 지나친 비하나 오만의 늪에 빠진 건 아닌지도.



투덜거림에서 시작한 말씀은 그렇게 한 귀로 들어와 한 귀로 나가지 않았다. 마음의 울림을 주시고 의심에서 벗어나게 해 주신 그분의 사랑에 감사드린다. 깨달음의 순간은 어른으로서 조금이라도 나를 성장하게 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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