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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un 14. 2024

머피의 법칙과 샐리의 법칙 사이

 집을 막 나서려고 할 때였다. 익숙지 않은 종소리가 들렸다. 웬만해서는 듣기 힘든 경비실의 호출. 순간 '뭐지?' 하고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지만 우선 통화 버튼을 누르고 응답했다. 

  "혹시 가족 중에 ***라고 있으신가요? 지갑을 잃어버리신 것 같은데요."

  "어머, 그래요? 제 딸아이 것인데. 감사합니다. 찾으러 갈게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돌발 상황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호출이 온 경비실 초소는 집에서 꽤 멀어서 최소한 5분 이상 걸릴 터였다. 단순한 외출이면 고민을 하지 않겠지만 과외를 하러 서울로 가야 했기에 갈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을 나서는 순간에도 결정하지 못했지만 우선 아이가 이런 상황을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다. 얼추 하교 시간이 되었기에 혹시나 하고 전화를 걸었으나 받지 않았다. 지갑만 찾고 바로 일하러 가려고 하는데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초지종을 들은 아이는 카드 없으면 학원도 못 간다고 꼭 자신에게 전달해 달라고 했다. 순간 짜증이 났다. 지갑에는 얼마 전  아이가 발급받은 주민등록증 및 교통카드 및 내가 아이 대신 힘겹게 발급받은 청소년증 등 중요한 소지품으로 가득했다. 아이가 학교에서 집까지 기다리면 최소 20분은 더 걸릴 텐데 이미 나는 출발 시간을 놓치고 있었다. 아이와 잠시 실랑이를 벌인 끝에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내가 다시 아파트로 가서 1층 우편함에 지갑을 넣은 후 일하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최소한 5분 이상 걸렸으며 외적으로 유난히 힘이 들었다. 양어깨 시술 후에도 약해진 상태에 통증까지 남아 있어 여전히 무거운 것을 잘 들지 못한다. 수업 자료 및 책 등으로 이미 배낭 무게가 누르는 압력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상황이 상화이니만큼 최대한 달려야 했다. 아이는 택시라도 타고 가라고 했지만 잡는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다. 서둘러 보고 정 늦을 것 같으면 학생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는 내내 머릿속은 여전히 복잡했다. 나는 대개 느린 편이나 누군가와의 약속 시간에 늦는 것은 싫어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당장은 알 수 없었다. 정확한 도착 시간을 알 수 없었다. 목적지까지 버스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했고 중간에 건너야 할 횡단보도, 걷는 거리 등이 도착 시간을 예상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첫 횡단보도를 건너고 첫 버스를 타야 하는데 모니터에 내가 타야 할 버스가 이내 온다는 표시를 보았다. 일, 이분 후에 버스를 탔고 곧 다시 내렸다. 4시 30분에 출발했어야 하는데 벌써 5시가 다 되어 갔다. 환승역에서 내리니 갈아타야 할 버스가 3분 내외로 온다는 표시를 보았다. 자주 오지 않는 버스인데 그나마 다행이라 여겼다. 잠시 숨을 돌리고 길 찾기 앱을 켜서 이동 시간을 계산해 보았다. 거의 약속시간에서 +혹은 - 1분 내외로 간당간당했다. 그것도 전속력으로 달려야 하나 무거운 배낭을 메고 횡단보도를 몇 개 건너야 하는 상황이라 불안한 감정 때문에 더 힘겨웠다. 점점 더워지는 날씨에 수업 자료를 넣은 가방은 더욱 나를 잡아당기는 듯한 착각은 왜 드는 것일까?

  그렇게 정신없이 걷다, 뛰다를 반복하며 수업할 아이의 집에 도착하니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추게 되었다. 엘리베이터를 누르고 오래 지연되지 않길 바라면서 끝까지 조마조마했지만 벨을 누르고 마주한 아이는 반갑게 인사해 주었고 나는 잠시 숨을 고르며 수업에 임했다. 평소와 달리 내 숨 가쁜 모습에 아이가 너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길 바라면서…….

  수업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가벼워진 마음으로 귀가할 수 있었다. 귀에는 블루투스를 끼고 있었지만 내가 뭘 듣고 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몇 시간 전 공포에 버금가는 혼란스러운 상황을 복기하는 데 마음에 빼앗긴 탓이었다. 그러면서 중간에 딸에게 한 말이 다시 떠올랐다. 

  '네 지갑을 찾아 준 사람이 누군지 모르지만 정말 감사해야 해. 이름도 안 남기고 보상도 바라지 않았더라.'

   딸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 나 자신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딸이 어떤 마음으로 반응할지는 알 수도 없고 강요할 수도 없으니 나라도 화살기도를 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의 선행으로 복을 받게 되었다. '당장 갚을 길이 없으니 나도 기회가 되면, 누군가를 도울 일을 마주친다면 외면하지 말아야 할 텐데'라고 스스로 타이르며.

'착하게 살아야 해. 그래야 복을 받아'라는 말이 있다. 요즘 세상에 이런 말을 하거나 듣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어떤 반응이 나올까? 뜬금없이 무슨 공자 시절 이야기하고 있나 속으로 비웃을지도 모르겠다. 살다 보면 이런 언행이 오히려 바보 같다는 소리도 듣게 되고 재수 없게 악행을 당할 때도 있다. 좋은 말이지만 현실성이 떨어지는 데다가 자칫 '호구'되기 딱 좋은 순진한 말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가끔 이렇다 할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비극을 겪는 사람들의 기사를 접하면 더욱 그런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시대에 맞지 않는 명언일지도 모른다.

  딸에게 일어난 일은 언뜻 '머피의 법칙'일 수도 있지만 그 일을 수습하며 내게 일어난 일은 '샐리의 법칙'일 수도 있었다. 신호등이 바로바로 켜졌다든지, 버스가 빨리 왔다든지 해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으니까. 중간에 힘들었지만 결국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살다 보면 이런 언행이 오히려 바보 같다는 소리도 듣게 되고 재수 없게 악행을 당할 때도 있다. 어떤 법칙에 끼워 넣는 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기적인 선택을 하든, 이타적인 선택을 하든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라질 수도 있고 결국 선택의 문제일 테니까. 착하게 살면 복이 올까? 그 말을 증명할 수 있는가? 확신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과 과학으로만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는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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