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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un 24. 2024

할머니의 야구공


제목: 할머니의 야구공

글쓴이:전 리오

발행: 2024년 5월 10일

출판사: 초봄책방



이 책과의 인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야구의 '야'자도 모르던 사람이었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한국에는 수많은 야구팬이 있지만 내게 야구는 그저 재미없고 지루한 게임에 불과했다. 홈런을 제외하고는 야구에 대해 아는 게 없고 규칙은 더욱 이해가 가지 않았다. 특히 '병살타'니 화면의 '타율, 볼 넷'과 같은 수치가 도대체 뭘 의미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어린 시절에 본 '공포의 외인 구단'과 같은 만화나 영화를 본 게 다지만 그나마 야구 자체보다는 그 안의 갈등과 사랑 이야기, 배우의 연기에만 눈길이 갈 뿐이었다. 



 그런 내가 왜 이 책의 제목에 끌렸을까 생각해 보았다. 작년부터 우연히 보게 된 텔레비전 프로그램 '최강 야구'가 있다. 실제 경기장에서 보았을 때 잘 보이지도 않고 이해도 안 가는 수많은 장면을 해설과 느린 화면으로 반복해서 설명을 해 주고 맛깔난 표현으로 흥미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라 나도 모르게 반복을 거쳐 상당 부분 이해가 갔을 뿐만 아니라 야구에 점점 빠지게 되었다. 아직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요 게임 규칙이나 선수들의 움직임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고 축구처럼 야구 또한 혼자 하는 경기가 아니며 가끔 드라마와 같은 장면이 연출된다는 데에서 묘한 매력을 느꼈다. 그래서인지 처음 이 책의 출간 소식을 알았을 때 왠지 궁금하고 관심이 많이 갔다.



  표지만 얼추 보았을 때는 레트로 감성에 독특한 소재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청초한 느낌의 젊은 여성이 어딘가를 응시하는 모습이 있었지만 아동용 동화나 청소년용 추억 에세이 같기도 했다. 막상 책을 받아보니 500쪽에 가까운 장편소설임을 알았을 때 과연 제한된 시간에 이 책을 읽을 수 있을까, 그만큼 재미가 있을까 다소 걱정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4일도 채 되지 않아서 단숨에 읽었다. 다른 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할 일을 해 놓고 손에서 이 책을 놓기 싫었다. 마치 추리소설을 읽듯 그다음이 궁금했다. 



 * 작품 속으로


   제목만 봐서는 할머니와 손주의 야구놀이가 나올 것 같기도 했다. 물론 나의 편견이었지만.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전통적인 이미지, 포근하고 손주를 예뻐하는 넉넉한 할머니와 영화 '집으로'에 나오는 손주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칫 스포일러가 될까 봐 조심스럽지만 이 소설은 뭐라고 해야 하나? 내 짧은 식견으로 감히 평하기는 부족하리만큼 방대한 메시지와 내용을 담고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서 AI가 떠오르는 현대까지의 시대를 배경으로 역사의 굴곡이 담겨 있으며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가 있다. 시각적인 유혹이 휘두르는 강력한 힘 못지않게 서사적 이야기는 마치 토지의 플롯을 연상케 하고 드러날 듯 드러나지 않는 로맨스는 설렘보다는 빛바랜 사진처럼 안타까운 추억을 따라가게 한다. 직접적으로 묘사되진 않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저항하듯, 발악하듯 투쟁하는 주인공의 내면이 느껴져 몇 번이고 가슴이 먹먹해질 때면 어릴 때 읽었던 일본 소설 '오싱'이 떠올랐다. '파친코'처럼 한민족의 아픈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이 이렇게까지 벅찬 고통은 감내해야 하나 눈물이 난 적도 있다. 



  * 내용 맛보기


  책을 펼치면 '최윤경'이라는 커리어 우먼이 나온다. 방송국 PD로 얼마 전에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고 있는데 고이 포장된 '야구공'을 발견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나처럼 야구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외할머니, 외동딸인 엄마를 포함해 그 어느 누구도 야구와 외할머니의 연관성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윤경은 이에 대한 궁금증을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었고 야구공에 새겨진 작은 글씨를 단서 삼아 하나씩 하나씩 그 비밀을 풀어나간다. 



  소설의 도입 전에 안내 사항이 나온다. 일본식 연호가 자주 사용된다는 말과 과거 일본의 학제와 같은 문구가 나온다는 말. 솔직히 그런 안내 문구가 더욱 이 소설이 읽기 어렵고 고리타분할지도 모른다는 편견을 갖게 했다. 앞에서 역사소설이자 로맨스가 들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에 더해 스포츠와 미스터리가 있고 재미있는 기행문 이야기처럼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하나하나 알아가는 기쁨이 쏠쏠한 '여행 에세이'의 특징도 있었다. 야구에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전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도 했는데 용어 및 연관된 내용을 확인하느라 챗 GPT와 용어집, 사전 등 화면을 띄워 놓고 수시로 검색하며 읽었다. 물론 귀찮고 힘들기도 했지만 새로 알게 되는 사실이 혹은 허구가 이 소설을 열심히 읽게 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되었다. 



 이와 더불어 이 소설을 쓴 작가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 읽은 <파친코>라는 소설의 작가 이민진 님은 완성까지 수십 년이 걸렸다고 했는데 이 책을 쓴 전리오 작가님도 그에 못지않은 노력과 조사를 하신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작품 후기에 작가님은 심신이 거덜 날 정도로 이 책에 모든 것을 갈아 넣었고 다시는 이런 소설을 쓰기 힘들 것 같다고 하셨다.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이 말을 읽으니 이해가 간다. 일본 창씨개명, 한 야구 선수의 미스터리한 선택과 죽음에 대한 이유가 너무 궁금해 그 발자취를 따라가며 얼마나 화가 나던지. 아무리 소설이지만 있을 법한, 가능한 일이었다. 현실과 허구를 묘하게 구성한 작가님의 기발한 재치는 덤이다. 



  개인적으로 새로 알게 된 포인트가 있다. 추가적으로 인터넷을 이리저리 검색하며 메모를 해 둘 정도로 흥미로웠다. 몇 가지만 소개하면,



-창씨개명; 창씨와 개명은 다른 개념이며 윤동주 시인은 개명이 아닌 창씨만 했다는 사실


-일본식 표기법에서 성은 한자 두 개로 만든다는 사실


-야구의 용어로 '입스 yips'를 겪는 선수는 얼마나 공포스럽고 고통스러운지에 대한 사실


-우리나라 화진포에 <김일성 별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기회가 되면 한 번 가보고도 싶다)


-피카의 독화살



등등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져도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오랜만에 소설을 읽는 기쁨을 만끽하게 해 준 작가님, 출판사, 그리고 격동의 시대를 넘어 우리에게 공감과 교훈을 준 한국인들에게 감사하고 싶다. 



  요기 베라라는 야구 선수가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It ain't over till it's over)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이 시사하는 바가 워낙 커서인지 여러 사람이 여러 분야에서 활용하는 명언처럼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이 책을 읽은 게 아니니 직접 읽고 느껴보면 또 다른 감정, 느낌을 받고 생각하게 될 것이라는 말장난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리뷰어클럽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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