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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ul 03. 2024

스몰토크 길들이기


  얼마 전 최재천 교수님의 '스몰토크와 어색한 순간의 극복'이라는 주제로 영상을 보았다. 한국인으로서 개인적으로도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소탈한 모습으로 친근하고 쉽게 설명해 주시는 덕분에  평소에 어렵다고 생각한 주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생명 과학이 전공이시지만 교수님이 스몰토크에 대해 말씀하신다니 더욱 관심이 갔다. 


  한국인이 스몰토크를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며 몇 가지 예를 드셨다. 기억나는 사례가 몇 가지 있는데 하나는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이야기였다. 



외국에서 버스를 탈 때 일본인이 버스에 올라 저 끝자리에 다른 일본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조용하지만 밝고 상냥한 태도로 미소와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중국인은 같은 상황에서 처음부터 큰 소리로 인사하며 시끄럽지만 반가워하며 초면에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고 한다. 한국인의 경우는 어떨까? 버스에 오른 순간부터 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챔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몸짓으로 인사말도 제대로 건네지 않고 모르는 척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버스를 탈 때 일본인이 버스에 올라 저 끝자리에 다른 일본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조용하지만 밝고 상냥한 태도로 미소와 인사를 건넨다고 한다. 중국인은 같은 상황에서 처음부터 큰 소리로 인사하며 시끄럽지만 반가워하며 초면에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간다고 한다. 한국인의 경우는 어떨까? 버스에 오른 순간부터 저편에 앉아 있는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챔에도 불구하고 어색한 몸짓으로 인사말도 제대로 건네지 않고 모르는 척 자기 자리를 찾아 앉는다는 것이다.

(최재천의 스몰토크 영상에서)






  물론 모든 한국인이 그런 것은 아닐 테니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라고 지칭할 수도 있다. 나이가 든 세대일수록 이런 태도가 굳어진 한국인이 더 많겠지만 MZ와 같은 젊은 세대라고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어느 정도는 스몰토크와 같은 교류 문화가 상대적으로 약한 부분은 있어 보인다.  



 또 다른 예는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나왔다. 엘리베이터를 타면 인사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고 심지어 일부러 피하며 다른 곳을 응시하거나 굳은 표정으로 바닥을 본다. 아예 처음부터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대화나 인사를 차단해 버리고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엘리베이터에서 인사를 망설이는 이유는 뭘까? 일반적으로 서로 바쁜 일정에 괜히 인사나 대화를 시도하며 상대방의 시간을 빼앗으면 예의가 아니라는 대답을 내놓을 것이다. 혹은 어차피 잘 모르는데 인사하는 것도 우습고 인사하고 나서도 무슨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서라고 한다. 또는 영혼 없이 인사하고 미소를 짓는 게 가식에 불과한데 해서 뭐 하냐고 할 수도 있다. 



  나의 경우 나이와 상관없이 낯을 많이 가리고 내성적이라 친근한 표정의 사람이 아니면 미소나 인사말조차 나오지 않는다. 더구나 무뚝뚝한 표정의 남성이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괜히 무섭기도 하고 인사를 했다가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혼자 상상의 나래를 펴다가 피곤해서 그냥 침묵을 지키고 만다. 간혹 우연히 알게 된 다른 층 주민이나 같은 층 이웃에게  눈인사와 같은 간단한 인사를 건네기도 하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날씨 이야기라도 할까 고민하는 동안 문이 열려 각자의 갈 길을 가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처음 보는 사람과 혹은 이웃과 인사 나누는 게 왜 이리 어려울까? 나 혼자 시도하는 게 단지 용기가 아니라 아예 굳어진 한국의 문화를 바꾸는 일이기에 더 어려운 게 아닌가 싶다. 외국에서는 존댓말은 없어도 스스럼없이 인사를 나누고  친교를 나누는 게 오랜 세월 형성된 문화인 것처럼. 



  그래서인지 최 교수님은 날씨 이야기라도 하는 게 어디냐며 좁은 엘리베이터에서도 최대한 인사와 대화를 시도하신다고 한다. 때로는 상대가 반응이 없을 때도 있고 교수님을 오해하며 이상한 표정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친근함과 소통의 태도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신다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원래 사람이 안 하던 행동을 하기는 어렵지만 많이, 오래 연습해서 뭔가 새로운 행동을 해도 계속하지 않으면 다시 어색해져서 안 하게 되니 말이다. 안 하면 편하고 에너지 소모도 줄일 수 있으니 더 안 하게 되고 변화하지 않게 된다. 개인이 아니라 점점 많은 한국인이 권하고 해 보자고 마음먹은 후 노력하면 충분히  가능한 문화라고 본다. 한때 우리는 버스 줄도 안 서고 상가 문을 잡아주지도 않았으며 미안하다, 감사한다, 사랑한다는 말도 어색해 무뚝뚝한 나라의 대표주자이자 불한당 같은 모습도 있었지 않은가? 하지만 오랜 세월 캠페인을 벌이며 하나씩 하나씩 실천하다 보니 선진국의 좋은 모습을 많이 닮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어색한 태도가 꼭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가장 가까운 사이로 연결된 가족끼리도 그럴 수 있다. 올해 둘째 아이는 고3인데 다행히 하고 싶은 분야는 있지만 나름 스트레스가 많아 보인다. 원래 어렸을 때는 말이 많고 종종 엄마에게도 장난도 치며 어리광을 많이 부리는 아이였지만 사춘기 시기에 접어들면서 대화가 많이 줄었다. 다행히 외향적인 성격이라 친구들도 많고 밖에서는 활동적이며 에너지가 넘친다. 아이와 별로 공통점이 많지 않은 나는 그저 끼니를 가끔 챙기고 아이가 집과 학교를 오갈 때 인사 정도만 하지만 늦게 귀가하곤 해서 내가 먼저 잠이 들면 얼굴도 제대로 못 볼 때가 많다. 



  마침 기말고사가 시작되는 시기라 잠깐 아침을 운동을 나간 사이에 아이가 문자를 보냈다. 


  '학교 다녀올게.'   


간단한 말이지만 그래도 인사를 하고 나가는 아이가 기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동시에 우리의 스몰토크가 그리웠었다. 아이의 관심사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지만 마치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어색한 이웃처럼 선뜻 말을 걸지 못할 때가 있다. 아이도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잘 하지 않으나 그래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하며 지나가곤 한다. 그렇게 하는 게 아이를 좀 더 편안하게 해주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좋자고, 내 기분 풀자고 무조건 다가가도 아이는 불편해할 것 같았다. 사실 첫째와도 이런 시기를 겪었는데 가끔 내가 '이야기 좀 하자. 뭐, 고민 있니? 문제 있니?'라며 직접적으로 대화를 시도하는 게 부담스러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가 대학에 가고 군대에 가서야 이런저런 이야기, 사는 이야기, 안부 등을 전하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게 되었다. 남편 다음으로 종알거리며 친구처럼 말할 수 있음에 감사하다.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어도 진지한 이야기가 아니어도 자연스럽게 하루를 이야기하고 웃을 수 있다면 그게 행복인 것 같다. 드물긴 하지만 글로리아(둘째)가 이런 행복을 느끼게 해 줄 때가 있다. 올해 봄인가 아이가 며칠 머리도 못 감고 정신없이 생활하던 어느 날 내게 다가와 이렇게 말을 걸었다.



  "엄마, 내 머리 냄새 맡아봐. 며칠 못 감았더니 떡이 되었어. 냄새나?"


  "아휴, 당연히 나겠지. 안 맡아도 아니가 어서 머리 감아."


  "그래도 맡아봐. 심한가?"


  "음, 사양하고 싶은데! 헉 냄새!"



  나는 기겁을 하며 피하려고만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3 아이의 장난이 재미있기도 했다. 물론 엄마로서 딸이 위생 관리를 잘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말했지만 이런 소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하지만 아이가 너무 급작스럽게 질문을 한다거나 뭔가 내가 집중하고 있을 때 와서 빠른 속도로 말을 하거나 자기가 만든 약자를 쓰면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 당황스럽기도 하다. 무시당한 듯한 기분이 들어서다. 직설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있는 아이는 그런 나를 답답해하고 나는 혼자 상처받을 때도 있으나 점점 그 횟수가 줄고 있으니 아이가 나름 엄마를 배려해 주려고 노력한다고 여긴다.



 나는 딸에게 재미없는 엄마일 것이다. 잔소리에 책 읽고 조용히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와 삶의 패턴이 달라서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언젠가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이해하며 가끔 소소한 대화를 하고 추억을 나눌 수 있는 인생의 동반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이가 좀 더 편안해지고 나와 나눌 수 있는 공통 화제가 많아질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스몰토크를 연습해야겠다. 비록 많지는 않지만 헬스장에서 반갑게 맞이해 주는 직원, 아파트를 청소해 주시는 환경미화원님(명칭을 어떻게 해야 최대한 예의 바른 지 늘 고민이다), 가끔 만나는 아파트 이웃,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치열한 삶을 이어나가는 우리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매일 만나고 나눌 수 없다면 기도 중에라도 기억하려 한다. 오늘 그들의 수호천사가 함께 해 달라고. 행복하고 건강한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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