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애니마리아 Jul 05. 2024

20화: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불의의 사고가 일어났다. 

7월 1일 늦은 밤에 일어난 교통사고에서 희생된 사상자들과 가족들의 이야기는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전혀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예상치 못한 시각에 예상치 못한 사고로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된다면? 준비도 없이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처럼 잔인한 게 있을까 싶다.

추측과 억측이 난무하는 나날이다. 사건의 전말이 언젠가는 밝혀지겠지만 가해자도 희생자의 가족도 평생 지워지지 않는 트라우마를 안고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그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버겁다.

다음 날 오후 안드레아는 문자로 아들의 연락을 전달했다. 군인의 신분으로 평일 낮에 전화 통화는 거의 불가능하다. 안드레아는 말로는 아이가 부대에서 뒤늦게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고 서울에서 근무하는 아빠는 별일 없는지 묻는 전화였다고 한다. 문제의 사고는 시청역 근처이고 남편의 근무지는 여의도이다. 하지만 아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했고 무사하다는 말을 듣고서야 통화를 마쳤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뉴스를 접한 선임들이 먼저 걱정해서 확인해 보라며 아이에게 전화를 권했다고 한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는 군우(軍友) 지만 가족의 마음으로 서로 신경 써주니 감사하면서도 여전히 마음이 무거웠다. 단순히 '나는 아니니까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것조차 너무 이기적이고 무심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며칠 후 아이에게 소식을 들었다. 파견 근무를 나간다는 소식이었다. 군사 기밀이 될 수 있기에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당분간은 면회도 할 수 없다고 했다.

  "저는 나라를 지키러 갑니다. 엄마, 아빠가 안전하고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요. 잘 다녀올게요. 걱정 마세요. 음식은 더 잘 나온대요."

아이의 밝고 태연한 목소리를 들으니 오히려 찡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우리가 걱정할까 봐 더 씩씩하게 말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말이다. 옆에서 남편 역시 밝은 목소리로 대답한다. 

  "그래, 아들. 허리 조심하고. 여자친구도 못 만나고 더 외롭겠네. 지겹기도 할 테고 잘 다녀와라."

 한국에서 남자가 군대를 갔다 오면 진짜 남자, 진짜 어른이 된다는 말을 들었다. 성인이 된다는 게 주민등록상으로 나이가 차고 운전을 할 수 있으며 술도 마음껏 마실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상태가 다가 아닐 테니까. 군대나 군인에 대한 소식이 들리면 가장 먼저 아이를 떠올리고 마음을 졸이게 되는 부모. 반대로 부대에서 세상의 파란만장한 사고를 들으면 가족의 안위를 걱정하는 아이들. 각자의 상황에서 내면의 힘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며 자유와 가족을 떠올리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눈 깜짝할 새에 유명을 달리하는 상황이 아니라도 극한의 상태나 위험에 빠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가족이라고 한다. 평소에 데면데면하고 서로 갈등이 많았어도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이 들면 마지막으로 남기는 문자에 남기는 말은 결국 '사랑해, 미안해, 고마워'라고 하지 않는가. 쑥스러워서 혹은 하기 싫어서 망설이는 말 '사랑해'를 말하고 싶다는 말을 못 하더라도 그 마음은 잊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내가 숨 쉬는 이 순간 너를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너를 기억하리라.

내 의식이 남아있을 때까지 네가 보고 싶구나.

내 사랑을 네가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작가의 이전글 스몰토크 길들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