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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ul 10. 2024

*차와 친해지기: 오늘의 차 1, 캐모마일



               오늘의 차: 캐모마일 Chamomile




   익숙한 것과의 이별 연습을 하면서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아직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수준은 아니라서 습관을 들이려고 노력 중이다. 좋든 싫은 커피는 거의 매일 나와 함께 한 음료였고  30년 가까이 마시던 커피를 대신할 음료와 친해지기란 쉽지 않다. 차를 즐기려는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 건강을 위한 차선책이라는 의도에서 비롯되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캐모마일은 커피숍에서 종종 보이는 메뉴라 비교적 들어본 차였지만 그렇게 호감이 간 차는 아니었다. 국화과 차여서 왠지 꽃가루가 날릴 것 같고 녹차나 다른 잎으로 만든 차와 다르게 보여서 친해지기 쉬운 차는 아니라고 여겼다. 몇 년 전에 무용과 학생을 과외한 적이 있는데 아직 십 대인데도 커피숍에서 캐모마일 차를 주문해 좀 놀란 적이 있다. 그때는 그저 다이어트 및 건강을 위해서 그렇겠거니 했지만 망설임 없이 차를 대하는 모습이 참 신선해 보였다. 



   2월에서 5월 사이는 내 편두통이 가장 극심하고 약도 잘 듣지 않던 때라 커피를 일시 중단하고 물 외에 나를 위로해 줄 차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맛은 포기해야 했고 무조건 카페인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으로 찾은 게 네 가지 정도였다. 다행히 집 주변 상점에서 혹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할 수 있는 차였다. 캐모마일, 히비스커스, 루이보스, 놀랍게도 민트 차도 있었다. 오늘은 캐모마일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아주 드물게 마셔 본 적이 있어 캐모마일을 먼저 구입했다. 맛은커녕 나와 궁합이 잘 맞을지 모르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고 결정해야 했지만 사실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아직 어떤 제품이 좋은지 모르는 자주 들어가는 쇼핑몰에서 추천하는 차를 선택했다. 이 쇼핑몰은 자체 검수팀이 있어서 이상한 상품은 거의 없다는 평이 있었기에 그나마 믿고 구입할 수 있었다. 그냥 사 마시는 것보다 양도 많으니 오래 마실 수 있다는 계산에서였다. 




  기상 후 갑상샘 저하증 약을 빈속에 먹은 후 한 시간이 지나면 무언가를 마시거나 먹을 수 있다. 예전에는 당기든 당기지 않든 물을 끓이고 커피부터 찾았는데 오늘은 큰마음을 먹고 캐모마일 티백을 하나 꺼내 차를 우려냈다. 반투명한 녹차 티백보다 안이 잘 보이고 풍성하게 담긴 꽃잎과 관련 조각들이 담겨 깔끔하게 우러나는 모습을 잠시 감상했다. 



  원래는 80도 정도의 물을 부어야 좋다고 하지만 기다리다 잊을까 봐 팔팔 끓인 물을 그대로 부었다. 당연히 바로 마실 수는 없다. 방으로 차를 가져온 후 몇 분이 지나고 나서야 향을 맡거나 마시면 좋았다. 전에는 아무리 뜨거운 커피나 음식도 상관없이 입안에 넣고 보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정말 무식한 버릇이었다. 이제는 입안이 잘 헐기도 하고 뾰루지 같은 게 생기면 오래가서 많이 불편하기에 바로 마시지 않게 되었다. 아침 루틴이 꽤 많은 나는 가끔 차가 다 식어버릴 때까지 모르다가 탄식을 할 때도 있지만 한두 모금이라도 마시려고 한다. 차와 친해져야 하기도 하거니와 그냥 버리면 차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



  오늘은 한참 미뤄왔던 차 이야기를 쓰려고 한 날이라 조금이라도 차 맛을 묘사해 보고자 의식하면서 찻잔도 고르고 향도 맛도 좀 더 진지하게 보려고 했다. 


한 모금, 아직 잘 모르겠다. 여전히 밍밍하다. 조금만 더 우려내고 마셔야겠다 싶었다. 



  아차, 너무 우려냈는지 온도도 많이 내려갔고 가루가 좀 보이는 게 너무 진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진한 차를 잘 안 마셔봤기에 새로운 도전이라 생각하고 마셔보았다. 



 생각보다 달큼한 맛이 입안을 채운다. 둥굴레차나 루이보스처럼 구수함이 더해져 편안함까지 느껴졌다. 평소에 마시던 정도보다 좀 더 진하지만 커피가 진할 때처럼 쓴맛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마른 국화의 은은한 기운이 좀 더 더해진 기분이다. 약 같기도 하고 뭔가 딱 맞는 표현이 떠오르지는 않지만 약한 기운 속에 끈질긴 생명력이라고나 할까. 카페인의 강렬한 자극은 없지만 차가 나의 몸 구석구석 은근히 퍼지며 살포시 나를 깨운다. 나를 감싼다. 알듯 모를 듯한 생각에 잠기게 한다.





  청송 백자를 택했다. 남편의 오랜 친구가 만든 머그컵으로 우리나라 전통 찻잔이 생소하기도 하고 왠지 조심스러워 구입 후 쓰기를 한참 망설였다. 이후 먼저 커피를 담았지만 역시 차가 잘 어울린다. 하얀 바탕에 파란 선이 멋을 더한다. 내 입장에서는 머그컵이 꽤 비싼 가격이어서 고이 모셔만 두었다. 커피를 마시던 시절(얼마 안 되었지만 벌써 아득하다)에도 괜히 커피의 검은 얼룩이 배이지 않을까 노심초사했었다. 



  차의 효능 여부에 영향을 끼치는지 모르겠으나 스콘, 떡 혹은 요거트와 함께 하면 좋을 듯하다. 좀 더 달짝지근한 맛이 느껴진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좀 더 마시게 하는 힘이 있다. 커피에 비해 끄는 힘이 약하다 보니 반도 못 마실 때가 종종 있어서다. 확실히 맛이 배가 된다. 아침에 늘 먹는 꾸덕꾸덕한 요거트의 넘김을 원활하게 하고 식은 차의 맛을 음미하게 한다. 오후에 스콘과 같은 빵이나 떡 하고도 어울릴 듯하다. 단, 너무 달지 않은 간식과 마시는 게 좋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달지 않은 차보다 간식에 더 눈길이 가서 차를 멀리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릭 요거트와 블루베리를 다 마시고 차를 마시니, 국화향이 좀 더 난다. 가을의 코스모스와 어우러져 옆에 피어 있는 국화를 보는 느낌이다. 왜 그럴까? 순간 '코스모스처럼 국화도 가을에 피었나' 하고 의문이 든다. 검색해 보니 9월에서 11월 사이에 주로 핀다고 나온다. 뜬금없는 생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


  후반부를 마셔보니 약간 느끼한 냄새가 난다. 마시고 나면 캐모마일의 원래 향이 남아 있는데 마시기 전 너무 숨을 들이마시지 않는 게 좋겠다. 마시기 전 향은 따뜻한 기운이 있는 때가 더 나은 듯하다. 맛은 식은 후에도 좋다. 신기하게도 우러난 정도에 따라서도 맛이 다르지만 식은 정도에 따라서도 맛의 느낌이 조금씩 다르다.



   캐모마일과 같은 차를 마시면 입안이 그리 텁텁하지는 않았다. 우유가 든 커피가 가장 심하지만 커피를 마시면 이뇨작용이 혀에서부터 나는지 느낌이 별로 좋지 않을 때가 있다. 매일 자주 마실 때는 혀에 끼인 설태가 보기에도 좋지 않았지만 답답한 느낌에 기분이 안 좋아지기도 했다. 아메리카노보다 우유가 든 카푸치노나 카페라테를 마실 때 더욱 그렇다. 양치를 자주 하는데 남아 있는 찌꺼기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때는 자주 양치를 해서 치약의 민트향으로 순간적인 느낌에 만족할 뿐이었다.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친해질 계획이다. 오래 함께 가야 하는 사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사람도 자주 보다 보면 정이 드는 것처럼 차도 드문드문일지언정 자주 만나다 보면 나의 또 다른 벗이 되지 않을까. 어느 심리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사랑한다면 자유를 주어라. 사랑이든 우정이든 습관이든 강요하지 않고 자유 안에서 바라보며 가까워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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