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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애니마리아 Jul 17. 2024

오늘의 차 2: 루이보스


  "고객님, 커피나 차 한잔 드릴까요?"


  "괜찮아요, 번거로우신데. 안 마셔도 돼요."


  "아휴, 그래도 한참 기다리셔야 하는데 차라도 드세요."


  "그럴까요? 그럼 차 주세요. 요새 제가 카페인 거부반응 때문에 차 마시는 연습하고 있거든요."


  "아, 그러세요? 저도 차 즐겨 마시는데. 루이보스 마셔보시겠어요?"



  미용실에서 새로 알게 된 디자이너 선생님이 주신 루이보스를 보고 왠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차라고는 녹차나 홍차 혹은 캐머마일 정도만 알고 있었고 루이보스는 카페인이 없는 차를 알아보면서 알게 된 차였다. 최근에 이런저런 차를 한꺼번에 구입했지만 상대적으로 이 차만은 양이 적은데 가격은 더 비싸서 집에서도 아껴 마시는 중이었다. 



  얼마 전에 차와 친해지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캐머마일에 대해 감상을 적어 본 적이 있다. 캐머마일은 잎이 아닌 꽃 부분이 주재료라는 특징이 있어 향도 맛도 강한 것 같다. 어떤 설명에 보니까 사과향이 난다고는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느낌보다는 그냥 국화꽃을 말린 향 같다. 내가 워낙 차에 대해 문외한이라 초보 단계를 벗어나지 못해 정확한 묘사가 힘들 수도 있다.



  오늘의 차는 루이보스다. 갓 우려낸 차의 상태에서 완전히 식은 후까지의 맛을 음미해 보리라 마음먹고 오늘도 각 잡고 차를 마셔 보았다. 






  뭐가 좋은지 몰라서 이 역시 인터넷 쇼핑몰 추천 제품을 골랐다. 처음에는 생각 없이 마셨는데 오늘은 티백부터 자세히 보니 노란색 꽃이 유난히 눈에 띈다. 마치 마치 개나리꽃 같기도 하고 작은 튤립이 피다 만 듯한 어린 묘목 같기도 하다. 알고 보니 원산지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도 450m 이상 고산지대에서만 생산되는 차라고 한다. 다른 허브차에 비해 비싼 이유가 그런 희귀 성 때문이었나 보다. 



  물이 끓는 동안 티백을 꺼내 보니 1706년부터라는 문구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게 루이보스 차에 해당하는지 홍차나 여러 다른 차로 유명한 회사의 연혁인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영국에서 시작한 찻집을 소개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든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래 지켜온 전통의 흔적은 뭔가 경이와 존경을 자아내는 힘이 있다. 이런 차에 못지않게 긴 역사를 자랑하는 녹차와 홍차를 못 마시게 되어 많이 아쉬웠는데 나와 같은 한국인도 즐길 수 있는 차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이번에도 2~3분 우려내고 싶었는데 뜨거운 물을 붓자마자 진한 색이 빠르게 우려 나와 잠시 당황했다. 캐머마일 때도 너무 진해서 평소처럼 마시기가 약간 버거웠던 기억이 있어 내 마음대로 빠르게 숫자 열을 세고 얼른 티백을 끄집어냈다. 인공적인 조명 없이 그냥 봐서인지 인터넷 사진처럼 빨간 느낌은 나지 않고 붉은색이 많이 가미된 차의 느낌이었다. 히비스커스보다는 어둡고 홍차보다는 밝은 적색의 이미지. 



  붉은빛이 좀 더 선명해서 자칫 홍차와 구분이 안 될 수도 있으나 따뜻한 수증기에 코를 대고 맡은 기운에서 부드러운 향이 좋았다. 다소 묵직한 느낌을 주는 홍차에 비해서 좀 더 산뜻하고 가벼운 향이다. 캐머마일은 뜨거운 상태일 때 한 번 맡고는 식을 때까지 향을 맡고 싶지는 않았는데 루이보스는 뜨거운 기운에도 불구하고 여러 번 향을 맡아보았다. 그리 달지 않지만 시지도 않은 작은 귤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수수한 꽃 향 같기도 하다. 조금 더 식은 후에 맡은 향은 약간 구수한 향도 나는데 아마 콩과라서 그렇지 않을까 싶다. 다시 노란빛의 루이보스 꽃 이미지가 떠오르며 수줍은 새색시의 모습이 그려진다. 



  여름이지만 아직 따뜻할 때 마시는 차가 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진정되면서 긴장이 점점 풀리며 편안해지는 느낌. 캐머마일처럼 강렬하고 단맛은 없으나 오히려 너무 이국적인 느낌이 나지 않아 좋았다. 뜬금없이 허난설헌이 이 차를 마시며 시를 지으면 참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내가 아니고 조선시대의 허난설헌이냐고? 나도 모르겠다. 여류시인하면 '버지니아 울프'가 떠올랐는데 이 차와는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나는 아직 시가 어렵게 느껴지고 왠지 모르게 시대를 앞서간 조선의 여류시인이 떠올랐다. 



  일부러 차를 식혀 두고 나중에 마셔보았다. 신기하게도 맛이 그대로다. 온도만 내려갔을 뿐, 맛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아서 좋았다. 캐머마일의 경우 식었을 때 약간 비린 듯한 냄새가 나서 많이 마시지를 못했는데 루이보스는 차가워져도 상관없었다. 잘 끌인 보리차를 너무 차지 않게 마시는 느낌과 비슷하면서도 입안이 깔끔했다. 역시 '차는 식었을 때도 맛있어야 좋은 차'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나와 맞는 차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부분의 차가 비슷한 효능이 있겠지만 루이보스의 좋은 점을 다시 확실히 알고 싶어 검색해 보았다. 



               카페인이 없어 숙면에 도움이 되고             


               칼슘, 구리, 철과 같은 미네랄이 풍부해 치아 및 뼈 건강에 도움이 되며             


               폴리페놀도 있어 항산화 작용 및 면역력 강화에 일조한다             


               혈액 순환 및 혈압을 낮추는 효과도 있고             


               위의 부담이 적어 복부 질환 완화 및 안전하게 임산부나 아니도 마시기 좋다는 정보가 나왔다. 전 건강 검진을 할 때 위벽이 약간 헐어있다는 진단을 받았는데 위에 자극을 주지 않으니 이른 아침 빈속에 마셔도 될 듯하다. 



  향과 맛이 강한 캐머마일, 향이 좀 더 강한 것에 비해 루이보스는 식어도 맛이 한결같아 좀 더 많이 마시게 된다. 가격이 좀 세다는 게 흠이지만 다른 차와 번갈아가며 조금씩 하지만 오래 친해지고 싶은 차다. 나도 이런 루이보스 같은 편안한 향과 맛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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