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에서 살아 남아요, 우리
스타트업은 정글 같은 곳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나운 원숭이가 모자를 훔쳐 가고, 풀숲에 숨어있던 맹수가 지나가기도 한다. 이제 그만 정글을 떠나야 하는데, 지름길을 옆에 두고도 보지 못해 몇 시간을 빙빙 헤매게 되기도 한다. 배도 고프고 목도 마르고 다리 힘마저 풀린다. 그런가 하면 아주 잠깐이지만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숨 막히게 아름다운 경관을 볼 기회도 있다.
겨우 빠져나온 뒤엔 '망할 놈의 정글, 이따위 곳 다시는 안 온다!'며 호언장담을 하고 도심으로 돌아갔다가, 고작 두어 달 만에 시름시름 상사병이 나고야 만다. 위험천만하고 예측불가하지만 중독성 강한 곳이 바로 스타트업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스타트업에 중독되게 만드는 걸까? 스타트업만이 아진 특별한 매력이 무엇이길래. 나는 그 답을 성장이라는 키워드에서 찾았다. 누군가 큰 회사와 스타트업의 가장 큰 차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성장에 제한이 없는 곳
이 말을 달리하면 성장해야만 하는 곳이라는 뜻도 된다. 안일하고 수동적으로 일하다가는, 정글 속의 미아처럼 내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겉돌지도 모른다.
스타트업이 처음인 내가 가장 고민하고 노력한 지점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어떻게 하면 계속 PO로서 성장할 수 있을까? 흔히 말하는 '스타트업 마인드'는 어떻게 가지게 되는 걸까?
이 답은 도저히 나 혼자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제품에 대한 공부는 팀원들과 한다지만, 어떤 방식으로 일하는 게 좋을지는 어디서 답을 찾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난 선임도 없고, PO인 동료도 없는데? 게다가 스타트업도 처음인데?' 이런 막연한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처음에는 대학시절로 돌아간 마음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시중에 있는 PO나 제품 관련 책부터 훑었다.
솔직히 말하면, 미국 실리콘밸리를 기준으로 쓴 책 내용은 다소 이상적이었고, 우리나라의 PO들이 쓴 책도 이미 대기업이라고 부를만한 회사를 배경으로 쓴 것이라 초기 스타트업에 다니는 내게 와닿지는 않았다. 0에서부터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각 잡고 쓴 책 보다 하나의 주제를 짧게 전하는 강연이나 메시지가 실무에는 훨씬 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스타트업에서 업무를 시작하는 분들이 성장을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자기계발 3단계를 소개한다.
어찌 되었든 인풋이 있어야 한다. 초보라는 겸허한 마음으로 정보를 흡수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나의 경우는 포지션과 제품의 생애 주기 때문에 시중의 책들이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기본기를 다지기에는 역시 책만 한 것이 없다. 각자 포지션에 맞게 기본서가 될 만한 책을 고르되, 출판일이 현재에 가까운 것을 선택하여 최신 트렌드를 최대한 반영한 내용으로 공부해 보자.
IT 트렌드를 훑어볼 수 있는 매거진 형태를 정기적으로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최신 경향을 살펴볼 수 있는 데다가, 때로는 업무 아이디어를 얻기에도 좋다. 특히 매거진 중 반드시 한 곳은 영어권에서 운영하는 매거진으로 구독하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 더 넓고 앞선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조금 더 상세하고 사적인 정보를 위해서는 이곳 브런치를 충분히 이용해 보길 바란다.
해외 IT 매거진
https://readwrite.com/
국내 IT 매거진
https://yozm.wishket.com/magazine/
내게 가장 많은 도움이 된 것은 강연이었다. 비슷한 제품을 론칭하고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선배 PO나 CPO들의 강연이나, 조직 관리를 위해 팀장들의 강연을 주로 선택했다. 내가 맡은 제품의 도메인 지식을 위해 현업에 종사하는 유튜버 등의 영상을 보기도 했다. 강연의 경우 질의응답 시간이 있기 때문에 내가 고민하는 지점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다는 점과, 책 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현실적인 내용을 빠른 시간 내에 습득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전반적인 IT 실무를 배울 수 있는 곳
https://heyjoyce.com/
개발 관련 실무를 배울 수 있는 곳
https://spartacodingclub.kr/
미국에서의 취업은 인맥이 99%라는 말이 있다. 실리콘밸리뿐만이 아니라 미국은 전반적으로 인적 네트워크와 레퍼런스를 중요시하는 듯하다. 우리나라의 스타트업 신도, 네트워크가 중요해지고 있다. (모든 스타트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향 평준화된 팀원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 철저히 검증된 사람을 뽑고자 하는 것이다.
적어도 대표급들은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네트워킹을 하고 있다. 인맥 자체도 자산이지만, 거기서 얻는 알짜배기 정보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네트워킹을 단순한 작당모의나 술모임 정도로 폄하하면 곤란하다. 특히 비개발자들의 경우 나를 알리고 증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네트워킹 수단을 찾아야 한다.
비교적 허들이 낮은 온라인 네트워킹부터 시작해 보자. 링크드인(https://www.linkedin.com/) 프로필은 반드시 필요하다. 실제로 헤드헌터뿐만 아니라 IT 업계의 채용 매니저들이 적극적으로 러브콜을 보내기도 하니, 우선 프로필부터 업데이트해야 한다. 링크드인은 다른 SNS와는 결이 다른 비즈니스용 SNS이므로 일상보다는 요즘의 성과나 어려운 점, 업무적 관심사 등을 올리는 것이 좋다. 그리고 비슷한 필드의 사람들이나 관심 있는 회사의 사람들과 1촌을 맺어두면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활용하는 것도 좋다. 블라인드(https://www.teamblind.com/kr/)의 IT 라운지에서는 특정 비즈니스 주제를 가지고 만든 오픈 채팅방에 대한 홍보가 간간히 올라온다. 나 역시도 <IT 기획, PM, PO방>, <기획 정보 공유방>, <마케팅 뉴스 큐레이션방> 등에 속해 있는데, 눈팅만으로도 쏠쏠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편하게 질의응답을 할 수도 있고, 유용한 강의나 아티클 홍보 글이 올라오기도 해서 가끔씩 들여다보곤 한다.
온라인 네트워킹을 마쳤다면 그다음은 오프라인 네트워킹이다. 다른 업계에 비해 IT 쪽은 오프라인 네트워킹도 활발한 편이다. 한 번은 IT에 종사하는 동문 네트워킹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동문이라는 테두리 덕에 가감 없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링크드인을 활용한 오프라인 네트워킹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때는 우리 팀의 디자이너/개발자 몇몇과 팀 미팅 형식으로 참여했다. 상대 팀 또한 우리 회사와 비슷한 시리즈 A 수준의 스타트업이었고, 아직 정식 제품을 론칭하기 전 베타 제품을 내고 고민하고 있는 단계여서 함께 나눌 정보들이 아주 많았다. 특히 그 팀이 사용하고 있던 데이터 베이스를 취합하는 방식과 VC를 관리하는 방식 등은 우리 팀에 큰 귀감이 되었다.
위의 내용들은 결국 나 자신이 성장하기 위함이지만, 바깥으로 뻗어나가기만 한다면 반쪽짜리 성과라고 생각한다. 앞서 두 단계에서 배운 것을 우리 제품과 우리 팀에 맞게 적용해서 실제 업무 성과로 이어질 때야 비로소 완전한 성장의 결실일 것이다.
우리 제품과 우리 팀에 맞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습득한 내용을 팀 내에 전파해야 한다. 때로는 회사 전체에 전파하는 것도 필요하다. 노션 페이퍼로 만들어 공유하거나, 간단한 내용은 슬랙을 통해 공유해도 충분하다. 만약 공유한 내용 중에 우리 팀에 맞는 유의미한 피드백들이 접수된다면 그 내용을 발전시키는 것 또한 내 몫이다.
우리 팀의 경우, 다른 회사의 팀과 미팅을 한 이후 배운 것을 디자이너의 주도로 바로 다음 달 업무 방식에 적용해 보았다. 나 스스로 성장하기 위한 시작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팀원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기회였고 우리 업무도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성장은 건강한 자극을 동반한다. 처음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결심했을 때를 돌이켜 보면, 결국 이 건강한 자극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사실 건강한 자극을 계속 만드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내부에서 그 자극을 찾으려면 매우 어렵다. 일하기만도 벅찬데, 언제 스스로 공부하고 배우란 말인가. 그렇지만 한번 이 건강한 자극의 맛을 보고 나면, 그동안 알지 못했던 우물 밖 세상을 본 느낌이 될 것이다. 아, 이렇게도 일할 수 있구나! 하는 감탄과 함께 말이다.
스타트업을 퇴사하고 방전된 마음으로 보낸 시간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이제 다시 스타트업 신으로 돌아갈 마음을 먹은 것을 보니, 그동안 건강한 자극을 수집했던 나날들이 헛된 시간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이제 다시 다음 성장을 위한 발 구르기를 해야겠다. 누군가에게도 오늘의 글이 건강한 자극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