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드백 그리고 평가
전 직장에서 성과평가 당시 승진 대상자 한 명을 제외하고 모든 팀원이 B를 받은 적이 있다. 1년에 한 번뿐인 성과평가였기에 A/B/C 중 중간 점수를 받은 것도 아쉬웠지만, 그보다도 일률적으로 다수가 똑같은 점수를 받은 점이 황당하다 못해 화가 났다. 상대평가였기 때문에 팀에서 해당 등급을 받을 수 있는 숫자는 정해져 있었는데, 누군가의 A를 빼앗아 C를 받을 팀원에게 B를 준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 C를 받을 팀원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내 생각은 그랬다. 철저하고 냉정하게 평가를 한다면 어떻게 한 명 뺀 나머지가 모두 같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느냔 말이야, 툴툴댔던 기억이 난다.
스타트업 생활이 적응될 즈음 팀원 평가를 하게 되었다. 내 직책은 PO이자 제품팀의 Lead였기 때문에, 우리 팀에 속한 팀원 모두와 1on1이라는 일대일 미팅을 하고, 미리 작성한 평가지를 바탕으로 3개월간의 업적평가 결과를 들려주어야 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이 상황에 닥치고 보니 B를 주었던 그 팀장님의 얼굴이 스치는 것이 아닌가(!). 꼴등을 만들지 않기 위해 일등도 지워버린 평가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팀장님의 심경이 어느 정도는 이해되었다.
'누군가에게 낮은 점수를 주고, 쓴소리를 하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구나.'
위와 같은 마음 때문에 처음에는 제대로 된 평가를 하지 못했다. 구구절절 세세한 피드백을 적기는 했지만, 대부분 장점을 부각하는 것들이었다. 3개월마다 진행하는 평가이다 보니 다음 평가 때 쓸 말이 거의 비슷하기도 했다. 어느덧 평가가 형식적이 되어버린 것이다.
평가는 리더의 업무 중 가장 어렵고 동시에 중요한 업무이다. 객관적인 근거로 냉정하게 평가하되 팀원의 자존감을 해치지 않아야 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되 발전 가능하도록 이끄는 방향이어야 한다. 어떻게 평가를 하면 좋을까에 대한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나름의 법칙을 만들었는데, 이 피드백과 평가 방법을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 팀원이 나의 적은 아니지만 피드백과 평가를 앞두고 리더가 넘어야 하는 산인 건 맞다. 그런 의미에서 팀원마다 가지고 있는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 산을 조금 더 쉽게 넘을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팀원마다 가지고 있는 강약점을 강화하거나 보완할 수 있는 방향으로 피드백을 주어야 한다.
사례 1.
알렉스는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분명한 팀원이었다. 본인이 관심 없는 일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아 팀 전체 업무 중에 놓치는 부분이 발생하기도 했고, 싫은 일을 맡으면 영 속도가 나지 않았다. 소위 말하는 베짱이 유형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월급루팡을 희망하는 친구인 걸까, 하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는데, 그 팀원이 원하는 것은 당위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 저 일을 내가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니까 하기 싫었던 것이다. 물론 회사 일이 으레 그렇듯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지만,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팀원이 스타트업에는 훨씬 더 많다. Z세대의 특징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알렉스에게는 업무를 지시할 때나 피드백을 줄 때 당위성에 근거해서 조금 더 많은 배경 설명을 곁들였다. 평가를 할 때도 마찬가지로, 이 평가의 당위성을 다른 팀원들보다 더 꼼꼼하게 설명해 주었다. 간혹 본인의 기대보다 낮은 평가를 받았을 때 알렉스의 꼬리 질문으로 토론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설령 알렉스를 납득시킬 수 없다고 할지라도 시간을 투자해서 최대한 많은 설명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사례 2.
조이는 의욕이 업무 능력을 앞서는 팀원이었다. 분명 누구보다 업무나 회사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데, 그래서 아이디어도 산더미 같은데, 이 일을 진행하고 갈무리하는 능력은 조금 아쉬웠다. 그래서 피드백이나 평가에서는 매번 좋은 점수를 받지 못하곤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존감도 조금씩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 조이를 위해 평가 시기가 아니어도 평소에 조금 더 자주, 간략한 피드백을 주었다. 특히 업무 결과물을 만드는 속도가 느린 조이를 위해 기한과 범위를 명시한 피드백을 주로 주었는데, 예를 들면 '내일 스크럼 시간에 1차 리서치 결과 공유해 주세요.'와 같은 형태였다.
또 조이에게는 가급적 긍정적인 뉘앙스의 피드백을 주려고 노력했다. 알렉스에게는 때로 조금 따끔한 피드백을 주었다면, 의욕이 업무의 밑천이 되는 조이에게는 이 부분을 북돋아 줄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리서치 결과 공유가 너무 늦습니다.' 대신 '리서치 내용이 너무 많은가요? 공유할 수 있는 내용까지만 공유하실 수 있나요?' 식으로 완곡하게 표현하곤 했다. 업무가 더딘 팀원을 채근하기보다 응원하는 쪽을 선택한 것인데, 실제로 이 방법은 꽤 효과가 있었다.
사례 3.
윈터는 야무지고 손이 빠른 팀원이었다. 업무 능률이 좋다 보니 업무에 대한 갈증도 남들보다 1.5배는 되는 듯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업무 공백이 생기면 초조해하곤 했다. 또 유난히 본인에 대한 평가는 박하기도 했는데,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가 높아 발생한 것으로 이해했다.
단거리 달리기 선수 같은 윈터를 위해서는 여유 있는 피드백 시간을 마련하려고 노력했다. 업무 외적인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나눈 팀원이기도 하다. 잠시 숨 돌릴 틈을 주고 싶었다. 그리고 중장기 프로젝트성 업무를 마련해 윈터에게 해당 업무를 리딩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긴 호흡으로 몰입해야 하는 업무가 윈터의 업무 갈증을 채워주면서도 동시에 회사에서 롱런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장기 프로젝트가 윈터에게 지속적인 업무 동기가 되어 주어 결과적으로 팀에도 큰 도움이 되었던 기억이 난다.
평가에 관해 투명하고 공정한 잣대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문제는 우리가 AI가 아닌 사람이라는 점에 있다. 팔이 안으로 굽듯 뭘 해도 믿음직스러운 팀원이 없다고 하면, 솔직히 거짓말이다.
이전 회사들을 팀원으로 다녔을 때 스스로 돌아본 나의 모습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그 자체였다. 할 말은 해야 직성이 풀리는 지랄견(?) 같은 성격 덕에 열심히 일하고도 다소 아쉬운 평가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를 평가할 위치가 되면, 사사로운 감정이나 선입견 없이 그 사람을 팀원 그 자체로만 보고 평가해야겠다고 늘 다짐해왔다. 그러려면 역시 가장 중요한 건 정확하고 객관적인 평가이다. 이를 위해 크게 두 가지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했다.
Tip 1. 시기의 중요성
평가의 기준이 되는 시기에 맞추어 그 안에 일어난 일로 평가해야 한다. 기존에 부진했던 팀원이더라도, 이 시기 동안 좋은 성과를 보였다면 높은 점수를 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암묵적인 '에이스'가 생겨 고정된 점수를 주는 실수를 할 수 있다.
시기는 업무의 진행 속도와도 관련이 있다. 평가 시기에 운 좋게 업무가 마무리된다면 업무 결과로 판단할 수 있지만, 모든 업무가 그렇지는 않지 않은가. 각각의 업무마다 수확이 되는 시기는 모두 다르다. 평가 때는 이 점을 고려해서 해당 업무 진행 속도와 그때까지의 결실을 두고 평가해야 공정할 것이다.
Tip 2. 근거의 중요성
누구나 본인의 잘못은 금방 잊는다. 비즈니스 애티튜드가 좋지 않은 팀원에게 '비즈니스 매너를 기를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보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지난번 API 관련 미팅에서 노아님과 언쟁이 있었을 때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다소 공격적이었어요. 비슷한 일이 지난 분기에도 있었는데, 이 점은 조심해 주셨으면 합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근거 수집을 위해서는 그때그때 이슈를 메모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나의 경우 팀원마다 차트를 만들고 해당 차트에 기록하는 식으로 다음 평가 시기를 위한 피드백을 수집했다. 조금 치사해(?) 보일 수 있지만, 나 역시도 기억이 온전하지 않을 수 있기에 특별한 사항들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기록하면서 일종의 증빙자료를 마련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 편이, 평가 시기에 가서 '느낌적인 느낌'으로 평가하는 것을 막기에도 굉장히 큰 도움이 된다. 평가는 특정 기간 동안의 평균 점수를 내야 하는 것인데, 평가 시기에 반짝하는 인상으로 평가하는 실수를 막을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팀원들이 받는 평가조차 리더인 나의 디렉션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나의 팀원이 좋지 못한 성과를 냈다면, 1차적으로는 그 팀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업무 환경의 문제든, 팀원의 자질 문제든 원인을 빨리 파악하고 교정하는 것이 리더의 몫이기 때문이다.
팀원 평가는 곧 리더로서의 업무 수행에 대한 자기 평가이다.
리더는 수련원의 교관이 아니다. '이곳은 지옥입니다.'라고 으름장을 놓거나, 내 멋대로 점수를 남발해선 안 된다. 피드백과 평가는 팀원과 팀의 성장을 위한 것이지, 내 권력을 휘두르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팀원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주기 전에 <이 팀원에게 내가 제대로 업무를 지시했는지, 좋은 업무 환경을 조성해 주었는지, 내가 나서서 정리해 주어야 할 일은 없었는지>를 먼저 돌아본다면 평가자가 아닌 진짜 리더로서 리딩 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