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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희 Jan 20. 2024

T형 엄마와 F형 딸이 만나면

수학시험 망치고 우는 딸아이를 더 크게 울게 했던 이야기


수학시험을 망치고 와서 "엉엉" 우는 초등생 딸아이에게 내가 했던 말,

"너 공부 안 했잖아~근데 왜 우는 거야? "

(공부 안 하면 시험 못 보는 건 당연한데, 왜 우는지 정말 궁금해서 물었을 뿐이다.)

그 말을 하자마자 울음소리가 잠시 그치는가 싶더니, 더욱 큰 소리로 "아~~ 앙"하면서 울려 퍼지는 울음소리에 당황했던 시절이 있었다.


이 이야기를 어디 가서 할 때마다 사람들의 뜨악한 표정을 볼 때마다 나는 또 놀란다.

이게 이렇게 모두들 경악할 만한 이야기였던가?

그런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건가?

나는 사실 아직도 일정 부분 이해가 안 가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당연하게 아이 마음을 알까?


나는 소위 매우 T형 인간이다.

"너 T 야?"라는 말이 아주 공감력이 떨어지거나 팩트 폭력을 일삼는 사람에게 던지는 비난에 가까운 말로 쓰이는 요즘이다.


T형 인간에 대해서 혹시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MBTI유형에서 T형의 의미를 설명해야 할 것 같다.

MBTI에서 T와 F를 가르는 기준은 의사결정방식에 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

이때 사람마다 고려하는 요소가 다르다.

어떤 사람은 근거와 논리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실제 객관적 데이터를 활용하며, 공정성을 유지한다. 이런 사람들을 T형(Thinking, 사고형)이라고 부른다. 마음보다는 머리로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결정이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이들을 F형(Feeling, 감정형)이라고 부른다.

T형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 적합한 상황이 있고, F형으로 의사결정하는 것이 적합한 상황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 판단을 잘하는 사람을 현명하다 할 것이며, 성숙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이 판단을 잘해야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T형은 대부분 상황에서 머리로 판단하고, F형은 대부분 상황에서 가슴으로 결정한다. 


내가 아이를 키우기 전에는 T형으로 의사결정 하는 것에 대해 늘 칭찬을 받아 왔었다.

그래서 다른 방식으로 의사결정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다 나와 같이 생각하는 줄 알았다.

주로 회사에서 숫자를 다루는 회계사의 일이란 것이, 감정적으로 하는 것보다는 논리적으로 데이터에 근거한 의사결정이 적합한 경우가 90프로 이상이었다. 물론 회계사라고 하더라도 고객을 유치하고 영업을 해야 하는 포지션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랐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가 되기 전 나는 중간관리자역할을 했었다.  T형으로만 의사결정을 해도 무리가 없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내 결정방식이나 소통방식에 문제의식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이다.


사실 내 의사결정방식이 타인과 문제를 일으킨 것은 딸아이가 처음은 아니었다.

신혼 초 남편의 오해도 내 의사결정 방식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남편이 신혼 초에 나에게 매우 서운해했던 적이 있었다.

아플 때 아내가 자신에게 너무 무관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이때도 사실 나는 조금 놀랐다.

나에게 "아프다"는 것은 그저 해결해야 하는 하나의 문제일 뿐이었다.

아프다는 사실에 슬퍼지는 마음을 잘 이해 못 한다. 

(아픈데 왜 슬프지? 그저 불편한 거 아닌가?)

아프면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약을 타오면 이미 그 문제는 해결된 것으로 보아서 더 이상 다룰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었다.

문제가 아닌 것은 더 이상 관심도 두지 않는 것도 T형의 특징일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원하는 것은 좀 달랐다.

약은 먹었는지 물어봐주고, 지금은 기분이 좀 어떤지 관심 가져주기를 원했다.


T형인 나는 이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아~ 우리 남편은 아플 때 자주 안부를 물어봐 주어야 화가 나지 않는구나.

머리로 알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래서 그 부분의 갈등은 더 이상 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관계는 너무나 다이내믹해서 이러한 원칙을 만들 틈이 없었다.

계속 자라나며 변화하는 아이들과는 매번 새로운 갈등의 요소들이 터져 나왔다.


T형인 나는 결국 조금 더 문제를 광범위하게 보기 시작했다.

이건 매번 갈등이 생길 때마다 해결해서는 안 되는 영역이었다.

공부하기 시작했다. 육아서적을 매일 읽었다.

책에서 배운 것을 이렇게, 저렇게 적용해봤다. 뭔가 좋아지는 면도 있었지만, 어느새 새로운 문제로 다시 갈등이 생겼다.

아주 근원적인 원인을 알게 된 것은 코칭 덕분이었다.


코칭클리닉 수업에서 만난 한 코치님이 "감수성 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을 소개해 주셨다.

처음 그 수업에 갔을 때는 어색하기 짝이 없어서 매우 불편했다.

'감정'을 말하라고 하는데, 나를 비롯해 사람들이 계속 '생각'을 말했다.

생각과 감정조차 구분하지 못했던 내가 드디어 감정(Feeling)과 생각(사고, Thingking)의 차이를 인지하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코칭을 배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하나만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바로 이 부분이다.

드디어 아이들이 왜 내 말에 화를 내고, 분노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난 그녀들의 감정을 알아주는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시험 못 봐서 속상하구나~" 이 말이 먼저여야 했다. 

내가 속상하지 않을 상황이라도 누군가는 속상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공감하기!

그게 바로 모든 대화의 시작이었다.

T형이 공감하기를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건 사람이 못 되서가 아니다. 자신의 감정도 의사결정에 반영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나와 남의 감정에는 관심을 둘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다 효율적인 의사결정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면 T형은 변할 수 있다.

논리적으로 설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과 같은 F형 인간들이 세상에는 매우 많다는 사실, 그리고 T형이나 F형이나 자신의 감정을 누군가 알아주었을 때 안도감을 느끼고, 편안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고와 감정의 차이를 인식 한 이후, 대화의 체계적 방법을 배운 것은 "비폭력대화"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우리는 화 나는 감정 뒤의 욕구를 이해해야 하고, 타인의 감정 뒤의 욕구를 알아주어야 한다.


감정을 알아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 나는 딸아이들을 이해하게 되었다.

내 언어도 바뀌기 시작했다.

또한 우리 아이들도 자라면서 엄마가 자신들과 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제는 아이들이 속상해서 울 때, 마음껏 울도록 기다려준다. 

"그게 울일이냐?"라고 되묻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좋은 것도 있잖아~"라며 슬픈 감정에서 빨리 데리고 나오려고 조바심 내지도 않는다.

충분히 그 슬픔을 끝까지 느끼고, 스스로 그 감정을 추스를 수 있다고 믿어준다.

정혜신 정신과 선생님의 "당신이 옳다"역시 공감의 힘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 책에서 분명하게 공감은 배울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지는 못하다.

며칠 전에도 대학생 딸이 시험 잘 봤다고 자랑하는 말 끝에 "넌 너에 대한 기대가 낮구나~(더 잘할 수 있는데 그 정도에 만족하다니.. )"라고 말했다가 아이들의 어이없는 눈빛을 받아내야 했다.

사람이 쉽게 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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