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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예희 Mar 01. 2024

슬퍼하는 자녀에게 하지 말아야 할 말들

임시보호했던 강아지를 떠나보냈던 이야기

나는 강아지가 너무 무서웠다.

어려서 할머니댁에 가면 마당에 개집이 있었다.

하얀 털이 보숭보숭 있는 5~6Kg정도의 강아지가 그 집 주인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귀여운 강아지지만, 5살 어린 나이의 나에게는 꽤 위협적인 존재였다. 

마당을 지나다가 강아지가 날 쳐다보면 무서워서 뛰었다. 

강아지는 내가 놀자고 하는줄 알았나보다. 나를 막 쫓아왔다.

난 너무 너무 무서워서 계속 마당을 빙빙 돌며 도망다녔다.

기억은 안 나지만 강아지는 꼬리치며 날 따라 달렸을 것 같다.

그날 이후였을까? 난 골목에서 강아지를 마주치면 몸이 얼어 붙었다.

내가 뛰면 더 쫒아오는 줄도 모르고 매번 뛰었다.

(그 때는 주인 없는 강아지들이 지금보다 많았던 것 같다.)

고등학생 때 어느날  산책하던 강아지가 벤치에 앉아있던 내개 다가왔다. 

날 공격하는줄 알았다. 그래서 비명을 지르며 손사래를 쳤다. 


오늘 아침 식탁 밑에서 강아지가 내 발을 핥았다. 소금이였다. 

"소금"이는 우리 딸들이 임시보호중인 유기견의 이름이다.

우리 딸들은 세번째 유기견 임시보호를 하고 있는 중이다.

강아지를 무서워했던 나도 이제는 조금 적응이 되었다. 

딸들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반려견과 같이 사는 세상.

우리 딸들이 처음 유기견 임시보호로 데려왔던 강아지 "율무"는 11세정도 13kg이 넘는 엄마개였다.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

입양이 결정되고 헤어질 생각에 아이들이 정말 많이 울었다.

그런데 이동봉사자(해외로 가는 사람들 중 입양을 위해 강아지를 데리고 가 주는 사람)가 사정이 생겨서 떠나 보내는 날짜가 미루어졌다. 잠시 이별의 시간이 유보되었지만, 그 시간은 결국 오고야 말았다.

떠나는 날엔 비까지 내렸다. 

인천공항까지 강아지를 데리고 가줄 검정 택시가 집 앞에 도착했다.

우리 가족 모두 1층으로 내려갔다.

율무를 "캔넬"(이동형 개집)에 넣어주었다.

차 문을 닫고, 떠나는 검정차가 멀어지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내 마음도 슬펐다.

우리 딸들은 집에 와서 또 많이 울었다.

율무는 내 인생 처음으로 우리집에서 기른 강아지이고, 아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책임하에 맞이한 첫 강아지라서 우리 가족 모두에게 의미가 크다. 특히 큰 아이가 지금도 율무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애틋하다.


미국공항에서 잘 도착했다며 봉사자들이 보내준 사진과 입양 후 새 주인인 미국 할아버지와 같이 찍은 사진은 아이들에게 큰 안도감을 주었지만, 그 이후 더 이상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율무와의 이별은 나와 아이들 모두에게 강렬한 경험으로 남았다.

아이들에게는 사랑하는 존재와 이별하는 슬픔을, 나에게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슬퍼하는 것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을 알게해 주었다.


아이들은 하염없이 울었다. 꺼이꺼이 울었다. 엉엉 울었다.

아이들이 계속 울 때 엄마의 마음 속에서 올라오는 말들은 무엇인가?

"그게 그리 슬플일이니?"

"그만해라, 그 정도 했으면 됐다"

"넓고 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살꺼니까, 이제 그만 울고 행복을 빌어주자."

 

내가 코칭을, 공감의 중요성과 방법을 배우지 않았더라면 나 또한 그랬을 것이다.


"'그만해라, 그 정도 했으면 됐다'라는 말은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내 슬픔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극단의 고립감을 부추기는 무서운 말입니다"(출처: 정혜신의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p27)


"슬픔을 슬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은 그래서 사람을 살리는 일입니다"(출처: 정혜신의 죽음이라는 이별 앞에서 p31)


그래서 난 아이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허락했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울다, 추억을 말하며 웃다, 다시 이별의 슬픔에 울다를 반복했다.

난 그만 울라고 말하지도, 화제를 전환시켜 슬픈 감정에서 벗어난게 하려고 애쓰지도 않고 그녀들이 그렇게 슬픔을 마음껏 느끼도록 해주었다. 


그 시간 이후 아이들은 더욱 성숙해졌다. 나 또한 성숙해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다시 유기견을 임시보호하기로 했다. 떠나는 슬픔을 이미 예상했지만, 견딜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모양이었다. 두번째 강아지 손님은 "수수"라는 아기 강아지였다. 생후 3~4개월에 우리집에 와서 이것저것 물어 뜯고 개구장이처럼 놀다가 또 해외로 입양되어 떠났다.

두번 째 이별에도 아이들은 슬퍼했지만, 처음보다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세번째 임시보호. .


처음부터 입양을 염두에 두고 임시보호를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본인도 알 수 없단다.

이제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는 그 날의 이별을 견뎌 내야 하겠지만, 그녀들은 잘 해 내리라 믿는다.


우리가 살면서 꼭 필요한 것이 공감하는 능력이다.

"공감이라는 심리적 무기를 가질 수 있으면 사는일이 홀가분해진다.(중략) 사람 관계에서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대폭 줄일 수 있다"(출처: 당신이 옪다, p116)


정신과 의사 정혜신은 공감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공감은 다정한 시선으로 사람 마음을 구석구석, 찬찬히, 환하게 볼 수 있을 때 닿을 수 있는 어떤 상태다. 사람의 내면을 한 조각, 한 조각 보다가 점차로 그 마음의 전체 모습이 보이면서 도달하는 깊은 이해의 단계가 공감이다. 상황을, 그 사람을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상대를 더 이해하게 되고 더 많이 이해할수록 공감은 깊어진다. 그래서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내 걸음으로 한발 한발 내듣으며 얻게 되는 무엇이다." (출처: 당신이 옪다, p125) 


우리 아이들이 슬퍼할 때 우리가 제일 먼저 해야할 일은 찬찬히 물어보는 것이다. "율무"가 떠날 때 아이들이 슬퍼하는 이유는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녀와 율무의 관계를 삶 속에서 충분히 보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이가 슬퍼한다면 우리는 다정한 시선을 가지고 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상시 그런 질문이 가능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으레 던지는 힘들었겠다는 말은 사람 마음에 의미 있게 가닿지 않는다"(출처: 당신이 옪다, p127)


어떤 학원이 성적향상에 도움이 되는지 아는 것 보다, 아이가 슬플 때 엄마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드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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