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런 말이구나!" 문해력의 기쁨>이 세상에 나온 지 8개월째에 접어들었다. 이제는 신간 딱지를 붙일 수 없는 구간이지만, 시간이 흘러도 두고두고 읽힐 거라는 믿음은 지금도 변함없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얼른 중쇄 소식을 듣고 싶다! 교정본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오탈자를 뒤늦게 발견하고 나선, 그게 그렇게 거슬릴 수가 없다. 문장 호응이 맞지 않거나 오탈자를 보면 어떻게든 바르게 고치고 싶은, 일종의 직업병이 도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 중쇄의 의미는 책이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걸 알려주는 지표이자 진작에 찾아냈어야 할 오탈자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랄까. 다음 책은 반드시 잘 잡아내야지! 다짐한다.
문해력을 주제로 책을 짓는 동안, 다음 책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다. 당장 마감해야 할 원고도 마무리하지 못했으면서, 다음 책이라니. 여유를 부려도 때를 봐야 하는데 말이다. 꼭 바쁠 때, 급할 때 딴생각에 빠진다.
글쓰기. 다음 책은 글쓰기에 대해 써야 할 것 같았다. 첫 책을 쓰면서 더욱 또렷해졌다. 왜냐고? 글을 써서 밥벌이하는 직장인이라서?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서? 아니다. 글로 밥벌이하면서도 끝내주게 글을 쓰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 앞에 나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게다가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은 이미 서점 서가에 넘치게 꽂혀 있다. 글쓰기를 시작한 사람은 자기에게 맞는 글쓰기 안내서를 골라 책이 이끄는 대로 꾸준히 쓰고 고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쓰는 근육'이 조금씩 붙는다. 처음이 어려울 뿐이다.
문제는 글을 쓰고 싶고 또 잘 쓰고 싶지만, 쓰는 행위 자체에 엄두를 못 내는 경우다. 마음은 굴뚝같은데, 몇 번 시도하다가 포기하기를 여러 번, '글쓰기는 나와 맞지 않는다'라며 결국 포기하는 경우를 꽤 자주 봤다. 굳이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까지 들먹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글쓰기는 정말로 시작이 반이다. 시작하기까지가 관건이다. 시작만 하면 글쓰기 실력을 키워줄 방법은 얼마든지 많다.
왜 글쓰기를 포기하는 걸까? 어려워서? 힘들어서? 그렇다면,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하게 된 데는 이유가 있을 거다. '글쓰기=어렵다', '글쓰기=힘들다'라는 등식을 머릿속에 자리 잡게 한 무언가가 말이다. 글쓰기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한 그 '무언가'를 극복해야만 글쓰기의 첫 발을 뗄 수 있다. 곰곰 생각해 봤다. 부정적인 감정을 갖기 전에, 애초에 글쓰기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어떨까?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자기를 표현하는 방법 중 하나로 글쓰기를 인식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왜 우리는 글로 자기 마음과 생각, 감정 따위를 표현하길 주저하는 걸까?
보통 우리가 처음 글쓰기를 접하는 순간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다.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이 내주시는 숙제 중에서 가장 하기 싫었던 '일기 쓰기'. 하루에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쓰면 된다는데, 도통 모르겠더라. 무엇보다 쓰고 싶은 게 없었다. 그 시절 일기의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그날 있었던 일을 시간 순서대로 줄줄이 나열하고, '참 재미있었다'나 '즐거웠다' 같은 느낌을 적거나 '다음에는 이렇게 할 것이다' 같은 다짐의 말로 글을 마무리했다. 숙제니까 어떻게든 해냈지만, 누군가 "도대체 일기는 왜 써야 하는 거야?"라고 묻는다면, 그때의 나는 아마도 이렇게 말했을 거다.
"매일 똑같은 날의 연속인데, 어제 일기나 오늘 일기나 내일 일기나 다를 게 뭐가 있지? 특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이 쓸데없는 일을 이제 그만하고 싶어!"
(일기 쓰기를 끔찍하게도 싫어했던 나는 요즘, 매일 일기를 쓴다. 그 시절과 다른 점이라면 그날 있었던 일을 그날 기록하는 '오늘' 일기 대신 전날 있었던 일을 되돌아보면서 '어제' 일기를 쓴다. 어제 일기를 쓰면서 깨달은 건, 나 자신과 거리를 두고 지나간 시간을 돌아봤더니 기록할 거리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다. 어제와 오늘로 시간을 나누고, 어제 일어났던 사건과 그때 나의 감정, 생각 따위를 한 곳에 펼친다. '그래, 어제 그런 일이 있었지. 어제의 나는 그때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왜 그런 감정을 느꼈을까?' 오늘의 내가 어제의 나에게 묻고 답하다 보면, 하루치 분량을 훌쩍 넘겨 기록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저 그런 하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는 방법을 터득한 셈이다.)
<"아, 이런 말이구나!" 문해력의 기쁨>에도 언급했지만, 글쓰기에 재미를 느낀 건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다. 일주일마다 돌아오는 방송을 준비하면서 대본을 써야 했는데, 쓸 거리가 없어서 고민한 적이 거의 없다. 계절의 변화, 학교 매점에 새로 등장한 간식 메뉴, 시험이 끝난 홀가분함, 친구와의 관계, 인기 가수가 새로 발매한 앨범 이야기 등 그때그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썼다. 일기 쓰기와 대본 쓰기. 글의 형식을 따져 봐도 전자보다 후자가 어려울 법한데, 이상하게 대본 쓰기가 훨씬 수월했다. 가끔 방송 시간보다 멘트가 길어져서 속사포 진행을 해야 할 만큼. 방송을 마치고 반으로 돌아가면 열혈(?) 청취자인 친구들이 기다렸다는 듯한 마디씩 건넸다.
"오늘 멘트 진짜 좋았어!" "나도 이따 매점 가서 그거 사 먹을래." "다음 주에는 이 노래 좀 틀어 줘."
'그래, 이 맛에 방송하지.'
글쓰기 책을 계약하고 나서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인생 첫 글쓰기였던 일기 쓰기를 끔찍하게 싫어했던 초등학생이 글로 밥벌이하는 직장인으로, 책을 짓는 작가로 살게 한 결정적인 순간을 떠올렸다. 그곳에 다음 책의 힌트가 숨겨져 있다고 확신했다.
"엄마랑 글 쓸까?"라고 말을 건네면 고민 없이 "좋아!"라고 답하는 아이에게도 물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아이는 한글을 떼지 못했던 7살 때부터 자기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매일 꾸준히 쓰지는 못하지만, 글쓰기에 대한 감정이 좋은 편이다.)
"엄마가 궁금한 게 있어." "응? 뭔데?" "달콩이(태명임)는 글 쓰는 걸 좋아하잖아. 왜 글 쓰는 게 좋아?" "음,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그럼 글을 쓰면 왜 기분이 좋아? "내 생각을 쓸 수 있으니까." "그럼 말이야. 엄마가 '우리 같이 글 쓰자'라고 하면 쓰기 싫은 적 없었어?" "응, 없었어." "왜?" "엄마는 항상 마음대로 쓰라고 말해주니까."
!!!!!!!!!! 이거다!
엄마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종이에 적어 달라고 했더니, 아이는 책상에 있던 포스트잇에 이렇게 적어서 건넨다. 여기에서 또 다음 책의 '힌트'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