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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리안 Aug 21. 2022

여기에 사랑이 들어왔어

하루 중 대부분은 아이가 너무나 예쁘고 사랑스럽고 애틋하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깨물고 싶을 만큼 귀엽다' 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한 번도 바닥을 디뎌보지 않은 여린 발을 볼 때 그랬고 지금도 발까지는 아니지만 오동통한 팔뚝살이나 뱃살을 볼때는 아직도 그렇게 와구와구 깨물어 버리고 싶을 만큼 귀엽다.


그런데 육아는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애틋한 사랑과 쌍소리가 나지 않게 입을 꽉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 분노가 공존한다. (물론, 아이에게 큰소리 한번 내지 않고 사랑만으로 키우는 엄마도 있으리라 믿는다!)



 아이는 어린이집 하원부터 뚱한 표정으로 나와 계속 칭얼칭얼 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장난감을 왜 안가져왔냐를 시작으로 지금 당장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는 등 불편한 감정을 표현했다. 내가 아이의 기분을 풀어주려 계속해서 달랬지만 아이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렇게 집에 도착 후, 여전히 부루퉁한 아이를 겨우 달래 손을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저녁밥을 하는 동안 아이는 부엌에 장난감을 하나씩 하나씩 가져왔고 좁은 부엌에서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내내 발에 걸린 장난감을 피하고, 중간중간 아이의 역할극에 동참해가면서 드디어 먹을 만한 저녁밥을 완성했다.

아이는 밥을 한 숟갈 먹고 장난감을 가져오고 한 숟갈 먹고 물을 쏟았다. "지금 밥먹는 시간이야." 라고 열 번쯤 말하면서 내 목소리에도 짜증이 묻어났다. 아이도 안다. 지금 엄마의 마음도 불편하고, 계속 짜증을 내다가는 엄마한테 혼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식탁에 팔을 괴고 앉아 애정이라고는 하나도 담겨 있지 않은 목소리로,  "꼭꼭 씹어 먹어."를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중이었다.

아직 반도 비워지지 않은 식판을 두고 손에 기름기를 잔뜩 묻힌 채로 또 방으로 장난감을 가지러 식탁의자를 내려오는 아이를 보는 순간, 나는 도저히 참지 못하고 "이럴 꺼면 먹지마!"하고 아이가 보는 앞에서 보란듯이 식판을 설거지통에 쾅하고 내려놓았다.  

아이는 놀란표정에서 이내 슬픈표정으로 변해 울먹거렸다.

"엄마, 밥먹을거야."라고 말하지만 나는 "아니야, 그렇게 먹기 싫으면 먹지 아도 돼." 하고 대꾸했다. 그후 우는 아이를 달래주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마음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다. 아이의 마음이 아니라 내 마음이 진정되기를. 그렇지만 나는 시종일관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관심을 바라며 멀뚱히 주위를 서성거리는 아이에게 나의 '화'를 표현하며 벌을 주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짓인가. 고작 5살아이에게 화가 나 어쩔 줄 모르는 엄마라니.


잠잘 시간이 되어서 아이를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불을 끄고 누웠다. 아이와 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고, 나는 아이를 내 쪽으로 끌어당겨 안고 사과했다.

"아까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그리고는 가슴을 토닥이며 평소에 재울때 흥얼거리던 말을 해주었다. 나쁜 마음 멀리멀리 가라, 좋은 마음만 남아라~, 라고 시작되는 이상한 타령같은 말이다.

그 순간, 아이가 자기의 가슴을 토닥이던 내 손을  자기 가슴에 꼭 붙잡아두고 말했다.

"엄마, 여기에 사랑이 들어왔어" 라고.



아이를 키우는 모든 부모들은, 모두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아이가 주는 사랑은 때때로 정말 어마어마하게 커서,

나는 아주 많이 아이에게 미안한 사람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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