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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블리안 Aug 23. 2022

오늘도 하염없이 천장을 보고 있을 당신에게 1

남편과 살던 집을 나와 친정집에 머물고 있을 때, 아이아빠에게서 온 첫 번째 연락은 강아지 사료 좀 주문해줘, 였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담긴 문자는 아닐지라도 ‘그날은 정말 미안해, 아이는 잘 있니,’ 정도의 말 정도도 기대하지 않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결혼하기 전, 10여 년을 살던 방에서 다시 돌아와 아이와 둘이 잠을 청했다. 이미 해가 떠오는 시간이라 아이도 나도 쉽사리 잠들지 못했다. 아이는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겠지만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나는 아무것도 말해 줄 여력이 없었다. 그날 밤은 그랬다.


바로 다음 날부터 아이를 재우고 새벽이 올 때까지 아이와 단기간 살 집을 검색했다.       

단기 투룸, 단기 빌라를 검색하다가 부동산에서 올려놓은 사진을 보고는 도저히 내키지 않았다. 처음 집을 떠나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구했던 대학가 근처의 허름한 자취방이 떠올랐다. 10여 년을 지나 친정집에 돌아와 있는 지금, 다시 그와 비슷한 방을 보고 있으려니 나의 10년이 허공에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에어비앤비에서 조금은 낭만적으로 보이는 잘 꾸며진 주택을 찾았다. 주광색 전구가 달린 소박한 마당, 아기자기한 그릇, 거실 한 켠에 마련된 새하얀 원형 식탁이 마음에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당장의 현실에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여기에 머무른다면 잠시 여행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마음.   

어린이집에서 차로 10분 정도, 위치도 적당했다. 생각보다 높은 금액에 수십 번을 고민하다 날이 밝고 오전 아홉시가 되자마자 호스트에게 전화를 걸었다. 두 달 정도 머물 예정인데 가격을 조금 깎아 줄 수 있겠냐고 내가 가진 최대한의 공손함을 모아 말했다. 생각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가격흥정을 보고 3일 뒤에 들어가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 새벽 도망치듯 아이 손을 잡고 나온 그 밤을 기억한다. 친정집에 돌아와 아무도 말이 없던 그밤, 안방에서 부스럭 부스럭 잠이 들지 못하는 엄마와 기어코 다시 집으로 들어온 자식과  자식의 아들의 이불을 펴주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도저히 끝나지 않는 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끝일 것 같은 기분, 기뻤던 적이 도대체 언제였었는지 까마득한 기분,  나에게 좋은 일이라고는  다시는 눈꼽만치도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분을 안다. 정말이지 알고 있다.

 


그리고 몇시간이고 하염없이 바라보던 천장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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