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등이 빛나는 밤
최초의 여행 기억
이 글을 쓰면서 아주 깊숙한 곳에 묻혀 있었던 작은 기억을 하나 꺼냈다. 사실 다른 도시에 대한 기억을 쓰려고 했지만, 아주 어렸을 적 그 기억이 되살아나면서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진주는 부산이나 거제도와 가까이 있는 경상남도 지역이라 그런지 초등학생 때의 기억부터 가지고 있는 도시이다. 외가 친척의 결혼식 때문에 진주에 갔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는데, 유등축제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도시 곳곳에 걸려있었던 것으로 보아 9월 말이었던 것 같다. 진주성 촉석문 앞 남강변에 장어집이 줄지어 있었고 그중 한 식당의 이름이 내 이름과 같았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남강으로 내려가 오리배 페달을 열심히 밟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오리배를 타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진주라는 도시에 대한 최초의 기억은 유등축제 현수막과 오리배였다.
이 글의 안동편을 쓰고 있을 때까지 중학교 3학년 때 간 그 날의 여행이 보호자 없이 떠난 최초의 여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같이 떠난 장본인을 얼마 전 그녀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기 위해 만났는데, 그녀는 그 전에 나인지 누구였는지 친구끼리 경주에 갔다 온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안동 가서 절에 갔었잖아, 거기를 어떻게 알고 갔을까?? 그리고 그네 뛰었던 거기가 어디지???”
“네가 가자고 해서 간 거잖아, 근데 월영교는 기억이 안 나는데.. 간다면 하회마을에 갔을 것 같아”
“아니야 그때 드라마 세트장 확실히 갔었어”
“나 그전에 중학교 2학년 때 누구랑 갔었는지 기억은 안나는 데 경주에도 갔다 왔어, 첨성대 사진 찍어놓은 게 우리 집에 있어”
“응? 나는 너랑 중학교 때 경주에 간 기억이 없는데...”
“우리 무슨 사회 숙제한다고 갔었는데”
“응?? 뭐지 그게???”
- 사투리 각색
이 대화를 집에 돌아와서 곱씹어 보니, 분명히 나도 이 숙제를 했었다. 우린 같은 중학교였으니까. 사회 시간에 내 준 역사 유적지를 다녀와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숙제였다. 그리고 내가 다녀온 곳은 경주가 아니라 진주였다. 얼마 전에 시집간 이 초등학교 동창 친구와는 중학교 내내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어서, 그때의 그 숙제는 같은 반 친구와 둘이서 해냈다. 따지고 보면 오로지 ‘여행’을 목적으로 떠난 건 ‘안동’이 처음이지만 보호자 없이 부산을 벗어난 건 그때의 그 역사 숙제로 인한 진주로의 견학이 최초였다.
물론 멀리 가지 않고 부산에서도 할 수 있는 숙제였지만, 그때만 해도 남들과는 다른 것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과 욕심이 넘쳐났을 터였다. 생소하지만 역사성이 있는 도시가 어딜까 생각하다 임진왜란과 논개로 알려진 곳인 ‘진주’를 생각해냈다. 그리고 부산을 벗어나긴 하지만 숙제를 하러 간다고 하니 반대할 부모님이 계시겠는가. 그 숙제를 위해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디지털카메라를 샀다.
그때 처음으로 진주성에 올라 박물관까지 둘러보면서 사진을 요리조리 찍어보던 기억이 어렴풋이 나는데, 늘 보던 것과는 다른 새로운 풍경에 크게 들떠있었다. 그리고 자신감도 넘쳤다. 그때의 그 숙제는 썩 마음에 들어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꽤 오랫동안 보관해두고 있었다.
같이 갔던 그 친구와는 지금 연락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자연스레 그 기억도 잊혔던 것이겠지만, 돌이켜보니 역사의 현장에 흥미를 가지게 된 건 그 숙제로부터가 아니었나 한다. 이 글들의 기원이 된 도시라고 해야 할까.
사진이 남아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몇 장 겨우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