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정말 치안이 좋다. 거의 세계에서 가장 좋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새벽 한, 두 시에 거리를 걷고 있어도 무섭다거나,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이 정도면 안전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다.
미국에서 새벽 한시에 어둑한 길거리를 걷는다? 총을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다. 체코에서는? 마약쟁이들이 다가와서 같이 마약을 하자고 주사기를 내밀 것이다. 아침에 프라하 역 근처 공원을 가보라. 마약쟁이들이 쓰고 버린 주사기 10개 정도는 늘 볼 수 있다. 역 주변뿐만이 아니다. 프라하 센터 골목 쪽에는 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두툼한 외투를 입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생긴 건 멀쩡하지만 마약을 판다. 두툼한 외투 안에는 갖가지 마약들이 외투 안쪽면에 줄줄이 달려있다. 유럽에서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 두툼한 코트를 입고 있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근처에도 가지 마라.
꼭 대로로 다니자. 사람 많은 곳으로.
친구가 프라하에 놀러 와 늦게까지 센터에서 술을 마시고 논 적이 있다.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밤에 혼자 밖을 돌아다녔던 상황이었던 것 같다. 밤 10시, 11시 정도 됐었는데 대중교통보다 택시가 더 위험할 수도 있겠다 하고 지하철을 타러 가는 잘못된 판단을 했다.
프라하센터 지하철로 향하는 지하도로를 걷는데 한 술 취한 백인 남자가 따라붙었다.
외국에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꼭 중동 난민이거나 흑인일 거라는 생각을 버리자. 백인 중에 나쁜 놈들도 정말 많으니, 얼굴이 하얗다고 잘생겼다고 좋은 사람일 거라는 착각은 제발 버리자. (피부색깔로 구분해 이런 얘기를 하기가 참 껄끄럽지만, 이건 인종차별이 아니라 실제로 정말 이런 인식들이 많다)
'설마 날 따라오는 건 아니겠지, 그냥 같은 방향으로 가는 거겠지, 날 그냥 지나쳐가겠지?'
하는 바람과 반대로 그 사람은 술냄새가 맡아질 정도로 내 옆에 가까이 와서 헬로~~ 헬로~~~ 하이~~~! 하고 추파를 던지는 것이다. 내가 걸음을 아무리 빨리한다 해도 그 키 큰 남자의 발걸음의 속도를 능가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차라리 후진을? 그건 더 이상하다.
'아이씨, 택시 탈걸!!'
하고 으아아아아아아~ 낮은 비명을 지르며 지하철 승강장으로 막 가는데 다행히도 나를 쫓아오던 그 남자가 자기 술김에 못 이겨 뒤로 퍽 엉덩방아를 찧으며 넘어지는 것이다. 그 틈을 타 마구 달려 승강장으로 도착해서 가쁜 숨을 몰아쉬고 난 후 지하철을 탔다.
하아... 사방이 술 취한 남자들이다.
체코 지하철은 사람들이 마주 보고 앉게 의자가 배치되어있다. 내 맞은편에 한 술 취한 남자가 앉는다. 어디서 왔느냐~왜 여기 사냐~ 뭐하다 집에 가냐~ 능글거리는 질문이 끊이지가 않는다. 대답을 안 하면 시비를 걸 거 같고 대답을 하면 계속 능글거릴 것 같고.
내가 한 선택은 미소를 지으며 예의 바르게 '네몰루비체스키'라고 말하는것이었다. (체코 말할 줄 몰라요)
좋은 선택이었다.
좀 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데 미소만 지으며 계속 고개를 양옆으로 저었다. '난 바보예요, 영어도 체코어도 몰라요~'라는 의미로.
남자는 몇 마디 더 하다가 능글거리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후 다시는 밤에 지하철을 타지 않았다.
유럽에서 살면서 무서운 게 사람만일까?
아니, 개도 무섭다. 유럽은 보통 아파트먼트에서 사는 경우보다 주택에서 사는 경우가 많아 맹견들을 많이 키운다. 물론, 목줄도 하고 입마개도 하지만 아닌 경우도 있다.
한 번은 아이들을 데리고 길을 걷고 있었는데 한 SUV 안에서 어떤 건장한 남자가 자신의 개의 목줄을 채우려고 하고 있는 걸 봤다. 그 개는 사냥개처럼 생긴 맹견이었고 SUV의 문은 열려있었다. 나는 개를 무서워하는 편이라 멀찍이 떨어져 경계를 늦추지 않고 걸었다. 경계를 하려면 내가 그 개를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 그 SUV는 내가 걸어가던 곳에서 30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나와 개의 눈이 마주친 시점으로부터 1, 2초가 지나지 않아, 그 개는 정말 빛과 같은 속도로 내 아들의 다리까지 달려와 물어뜯을 기세로 맹렬하게 짖어댔다.
정말 개 빨랐다.
그 개의 주인인 남자가 부리나케 달려와서 정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자기 개의 얼굴을 주먹으로 한대 갈기더라. 그 정도로 위험한 상황이었다는 얘기다. 건장한 남자도 맹견이 컨트롤 안될 때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그나마 맹견의 수가 적어 그런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릴 경우가 적은데, 유럽은 사방천지에 맹견이다.
내가 아는 분은 개가 잘생겼다고 만졌다가 제대로 손을 물렸다. 정말 조심하자. 별 일을 다 겪는다.
유럽, 가봤는데 안전한 것 같아요 하는 사람들은 그냥 운이 좋아서 범죄나 사건에 노출이 안되었을 뿐이다.
프라하 센터 근처를 여행하다 정말 위험해 보이는 순간들을 볼 때가 있는데 여자 혼자서 밤에 역 근처를 배회하는 것이 그럴 때다. 그것도 유럽여행 온 기분을 내려고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주변에 노숙자들이 어슬렁거리고 있어도 위험한지를 모르고 불량해 보이는 사람이 말을 걸어도 그냥 웃고 있다. 차를 세워서 위험하다고 말을 해줘야 하나, 아님 아예 내 차에 태워야 되나 싶다가도 괜한 오지랖인가 하고 그만둔다. 그 노숙자나 불량배가 나한테 시비를 걸면 나 스스로도 방어가 안되니까.
여행을 다닐 때는 안전이 최우선이다. 정말 조심하자.
여자 혼자 유럽여행? 이런 거 하지 말자.
밑 줄 쫘악 긋자. 빨간색으로 두 번 긋자. 유럽에서 오래 살아 분위기를 잘 아는 나도 밤엔 너무 무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