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같지 않은 순간의 착각
돌아보면 나는 어릴 때 꽤 예민한 아이였다. 마음속 생각이 흐트러지거나, 일이 기대한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쉽게 화가 났고, 그런 감정 앞에서 나는 유난히 서툴렀던 것 같다. 그땐 감정을 참는다는 개념조차 익숙하지 않았고, 참을 생각도 별로 없었다. 감정을 숨기기보단 있는 힘껏 밀어붙였고, 마음에 걸리는 건 말로, 표정으로, 혹은 관계를 끊는 방식으로 드러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내 감정에 솔직하다는 자부심과도 닿아 있었다. 나는 불의나 부당함을 잘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고, 할 말은 다 해야 직성이 풀렸다. 어린 시절엔 그런 모습이 꽤 멋있다고도 생각했다. 항상 화를 내는 건 아니지만, 화를 내야 할 땐 거침없이 화를 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감정적으로 건강한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씩 흘러 다양한 세계의 구성원이 되어 살아가다 보니, 감정을 드러내는 것만큼이나 감정을 다루는 태도도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의 감정을 꼭꼭 숨기기만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에도 방향과 속도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된 순간엔 스스로에게 자주 물었다. ‘지금 나는 어떤 상태일까.’ ‘예민하구나.’ ‘화가 났구나.’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졌구나.’. 그런 순간에는 최대한 사람과의 접촉을 줄이려 했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그 상태로 누군가와 충돌하면, 또 내 방식대로 말을 쏟아낼 테고, 결국은 상처만 남고, 오래 후회하게 될 걸 알았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본 영상 속 한 스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화가 난다는 건, 내가 옳다는 믿음이 선명하다는 뜻이다.” 그 말이 영상을 끈 이후에도 오래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생각지도 못한 관점이었고, 곱씹어 보니 맞는 말 같았다. 내가 유난히 내 생각이 옳다는 마음이 강한 사람이었구나. 내가 옳다고 굳게 믿고 있으니, 그 믿음과 다른 세상의 반응이 불편했던 게다.
그날 이후부터 감정 앞에서 한 템포 쉬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왜 이렇게 화가 났지? 정말 내 생각만이 유일한 답인가'하고 자주 스스로에게 되묻기 시작했다. 질문을 던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마음이 조금씩 풀리는 걸 느꼈다.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굳이 화를 낼 필요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상황은 누군가가 ‘틀린’ 행동을 한 게 아니라, 그냥 ‘내 생각과 달랐던’ 것뿐이었다. 사람마다 생각의 결이 다르고, 받아들이는 속도도 다르다. 나는 내 기준이 보편적이라고 여겼지만, 그 기준조차 결국은 ‘나만의 것’이었다. 그걸 인정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속에 자연스레 하나의 문장이 자리 잡았다. “그럴 수도 있지.”그 말 하나가 내 안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예전 같으면 욱했을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설 수 있었고, 이해할 수 없는 반응 앞에서도 “완전히 틀렸어”라고 단정하지 않게 됐다. 생각해 보면, 나조차도 늘 논리적이고 일관된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지금도 부정적인 감정이 드는 순간이 당연히 있다. 화뿐 아니라, 우울함, 허무함, 공허함 같은 것들. 예전의 나는 그런 감정들을 그저 견뎌야 하는 통증처럼 여겼다.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려 한다. 왜 이렇게 허무하지? 왜 이렇게 마음이 가라앉지? 혹시 또 나만의 기준으로 나를 몰아붙이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질문들이 마음속에 여유를 만들어줬다. 감정은 감정일 뿐, 내가 곧 감정은 아니다. 이제는 감정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와 시선이 생겼고, 그 덕분에 마음도 덜 흔들린다는 뜻이다.
가끔은 감정도 일종의 습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자주 화를 내던 사람은 아무 일 없이도 예민해지고, 쉽게 무너지는 사람은 작은 실망 앞에서도 깊은 우울을 느낀다. 어릴 땐 나도 그랬다. 감정이 올라오면 그게 곧 나였고, 그 감정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지금은 조금 다르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되, 감정이 나를 끌고 가게 두지도 않는다. 화를 다스린다는 건 단지 강해 보이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내가 항상 옳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그 여지를 인정할 수 있을 때, 세상과 덜 싸우고, 나 자신과도 덜 부딪히게 된다. 그게 더 나은 관계를 위한 태도라는 걸, 이제는 안다.
그 깨달음 이후 또 하나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상황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정이 올라올 때 침착하게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고, 나부터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예전처럼 모든 걸 내 기준으로 재단하지 않고, 일단 들어보려 한다. 그리고 들어보면, 다 이유가 있었다.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지만, 적어도 그 감정이 ‘틀렸다’고 말하긴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엔 잘못된 감정이 존재한다고 믿었지만, 지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감정은 그 자체로 옳고 그름을 가릴 수 있는 게 아니라, 결국 어떤 생각에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감정은 억제하거나 잘라내야 할 게 아니라, 내가 품고 있던 생각의 반응일 뿐이다. 그래서 감정을 조절하려면 감정을 다그치기보다는, 그 감정이 자라난 ‘생각’에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믿게 됐다. 그리고 그 스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그 성찰을 삶 속에서 조금씩 실천해보려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는 생각과 마음들이 많아졌다.
요즘 나는 자주 이 말을 마음속으로 되뇌곤 한다. “그럴 수도 있지.”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마음을 가장 조용하게 만들어주는 말이다. 이 말은 내가 세상을 향해 내미는 이해의 언어이자, 나 자신을 조용히 다독이는 방식이다. 내가 그만큼 너그러워졌다고는 감히 말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예전보다 감정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달라졌다고, 그래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작은 말이, 많은 부정적인 순간들 속에서 나를 유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줄 것이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