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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런 마음이 있었다.

아스라한 단어, '직감'

by 모스




직감이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조금 아스라하다. 분명한 언어로 되어 있는데도, 막상 그게 뭐냐고 묻는 순간 말은 자꾸 겉돌고, 정의하려 하면 딱 잘라 말하기 어렵다. 누군가 “왜 그렇게 생각했어?”라고 물으면 내 입에서는 늘 같은 말이 흘러나온다. “그냥.” 그냥 좋았어. 그냥 그랬어. 그냥 해야 할 것 같았어. 언뜻 들으면 성의 없어 보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외엔 표현할 길이 없다. 이유는 말할 수 없지만, 마음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 나는 그런 감정을 직감이라 부른다.


나는 대체로 신중한 사람이다. 쉽게 판단하지 않고, 선택 하나에도 오래 고민하고 여러 가능성을 저울질한다. 그래야 나중에 후회가 덜하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삶에서 정말 중요한 갈림길 앞에서는 그 모든 계산이 무용지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진로나 인간관계, 인생의 어떤 결정적 순간에 불쑥 튀어나오는 확신 같은 것. 설명은 되지 않지만, 그 길이 마치 나를 오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마음 깊숙이 선명하게 자리 잡는다.


처음엔 그런 직감을 의심했다. 이유가 없으니 믿을 수 없었고, 설명할 수 없으니 입 밖에 꺼내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특히 진로나 사랑처럼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들일수록 더 그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직감이 알려준 방향을 따랐던 순간들에서 나는 거의 후회를 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땐 잘했지’ 하고 스스로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오히려 직감이 강하게 발동할 때는 그 감각을 믿는 편이다. 왜 그랬는지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직감들이 내 삶의 결을 조금씩 바꿔놓았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했고, 어떤 길을 놓게 했고, 또 어떤 계절엔 묵묵히 한참을 걸어가게 했다.


이상한 건 직감이 꼭 긍정적인 방향으로만 작동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그런 감각을 흔히 ‘쎄하다’라고 말하곤 한다. 딱히 뚜렷한 근거나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해지는 순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딘가 삐걱거리는 느낌. 돌아보면 그런 쎄한 느낌을 따랐을 때도 후회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아, 그때 안 하길 잘했구나” 하고 안도하는 일이 많았다. 설령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해도 이상하게 그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었다. 직감은 그렇게 때때로 우리를 조용히 보호하기도 한다. 신기한 감각이다.


생각해 보면 어쩌면 직감은 허공에서 갑자기 내려오는 예감 같은 게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가 미처 자각하지 못한 채 켜켜이 쌓아온 기억과 경험, 감정과 감각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연결되어 어떤 방향을 가리킬 때, 우리는 그걸 직감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이성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빠르게 작동한 이성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마음속 어딘가에서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응답 같은 것.


사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연애를 포함해, 결국 인연이 이어졌던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처음부터 어딘가 ‘느낌이 좋았던’ 경우가 많았다. 말 몇 마디 나누기도 전에, ‘저 사람 오래 마음에 남겠다..’는 예감. 그때도 마찬가지로 근거를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다. 눈빛이나 말투, 말과 말 사이의 리듬 같은 사소한 것들이 나도 모르게 마음에 들어왔고, 이유 없이 마음이 먼저 반응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직감이란 결국 ‘나 자신을 믿는 감각’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유나 결과가 어떻든, 그 선택이 온전히 내 것이었다는 자각. 타인의 잣대가 아니라, 내 마음의 흐름을 따른 결정. 그래서 후회가 적은 건 아닐까. 잘못된 선택이었다 해도, 그 선택만큼은 내가 내린 것이니까.


삶은 결국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고, 우리는 언제나 그 어딘가에서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 순간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침반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주 작게 불어오는 바람 같은 감각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바람은 어쩌면 아주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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