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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답게 산다는 것에 대하여

혐오와 갈등의 파도 속에서

by 모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는 왜 이렇게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아야 할까. 행복은 왜 항상 돈과 연결되어야 하고, 왜 남보다 떨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불행하다고 느껴야 할까. 강사로 일할 당시, 수업 전에 아이들과 나눈 짧은 대화 속에서도 그런 마음이 스쳤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말하는 ‘좋은 전공’, ‘좋은 직장’, ‘좋은 집’이라는 단어들 속에는 이미 이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이 묻어 있었다.


마치 당연한 듯, 그렇게 사는 게 ‘정상’이라 여기는 모습에 나는 이상하게 마음이 답답해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고 있었을까. 내 삶을 내가 판단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낫거나 못하다는 식으로 줄을 세우며 살아온 지 참 오래된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원하는지는 흐려지고, 결국 남들의 기준 안에서만 나를 재단하게 된다.


해외 중산층 기준을 다룬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미국에서는 부당함에 저항하고, 사회적 약자를 도울 수 있어야 중산층이라 했고, 프랑스는 악기를 다룰 줄 알고, 자신만의 요리를 만들 줄 아는 사람이, 영국은 신념이 뚜렷하고 불의에 의연한 태도를 가진 사람이 중산층의 조건이라 했다. 말하자면, 삶의 중심이 ‘나’에게 있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중산층이라 하면 자가 아파트가 있어야 하고, 아이 사교육을 감당할 정도의 소득이 있어야 하며, 남들보다 우위에 있는 커리어나 명함이 있어야 한다고 여긴다. 이상하리만큼 개인의 가치나 삶의 방식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소비해야 안심할 수 있는 구조. 그래서 삶의 목표가 ‘내가 만족하는 삶’이 아니라 ‘남보다 나은 삶’이 되어버린 사람들을 우리는 너무 많이 본다.


이런 감각은 SNS 같은 일상 속 플랫폼에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원래는 삶을 나누던 공간이, 이제는 비교와 과시의 무대가 되었다. 여행은 사진을 찍기 위해 가고, 식사는 인증을 위해 먹고, 순간은 즐기기보다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 정작 중요한 감정은 흘려보낸 채, 그 시간에 얼마나 예쁘게 찍혔는지만 기억에 남는다. 그러고 나면 또다시, 우리는 남들의 모습을 보며 자신을 조용히 깎아내린다. 왜 나는 저렇게 못 살지, 나는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이란 없다. 좋은 집, 좋은 직업, 좋은 학교, 좋은 사람이라는 말속에는 늘 ‘누가 보기엔’이라는 전제가 숨겨져 있다. 진짜 중요한 건, 그 길이 나에게 맞는지다. 남들이 말리는 길이라도 내가 편하고 행복하다면, 그것이 곧 나에게 좋은 길이다. 모든 선택이 정답일 순 없지만, 적어도 나답게 사는 길은 내가 선택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는 너무 자주 ‘정해진 틀’을 강요한다. 30대 초반에 자가 아파트, 외제차, 안정된 직장, 결혼과 자녀계획까지. 그런데 아무것도 없이 20대 중후반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그 모든 걸 갖춘다는 건 계산적으로도 말이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삶을 기준으로 삼고, 그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고 불안해한다. 어쩌면 그건 현실이 아니라, 조작된 기준에 길들여진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우리는 조금 더 유연해져야 한다. 사회의 평가와 기준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나 자신만큼은 그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기를... 삶은 단단함보다 유연함이 더 필요할 때가 많고, 중심은 언제나 나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내게 꿈이 뭐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 누군가에게 금전적으로 아쉬운 소리 하지 않을 삶. 일주일에 두 번쯤은 내가 먹고 싶은 걸 자유롭게 먹을 수 있는 삶. 하루를 마치고 돌아가면 반겨주는 가족이 있고, 그들과 소소한 일상에 웃을 수 있는 삶. 취미 두어 개쯤은 가지는 삶. 그게 내가 바라는 성공이다. 누군가는 작다고 말하겠지만, 나에겐 충분하다.


행복은 누가 정해주는 게 아니다. 비교 속에서 찾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알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이미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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