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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독립일기

오롯이 내 몫의 삶을 감당해 낸다는 것

by 모스




나는 스물한 살에 경제적, 지리적으로 독립했다. 누군가는 빠르다고 하고, 누군가는 무모하다고 말했지만, 그 시기의 나는 다른 선택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그저 당연하다고 여겼다. 부모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좀 별나게 보일 수 있겠지만, 성인이 되었음에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당연하게 누리는 나 자신이 견디기 어려웠다. 내 몫의 삶을 내 손으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게 잘 사는 거든, 간신히 버티는 거든 말이다.


20살 어느 날 마루야마 겐지의 '인생 따위 엿이나 먹어라'를 처음 읽었을 때, 그런 말이 있었다.
“이 세상은 너를 구해주지 않아. 네 인생을 누가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니고. 그러니 그냥 살아. 망가져도 좋아. 그래도 살아.” 이 문장은 무언가를 결심하게 만드는 그 단순하고도 투박한 힘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누가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적어도 내 두 발로 서 있어 보자.'라고 말이다.


군대에 있는 동안 월급을 차곡히 모았다. 제대 직후엔 고향의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사실 카페에서 일하고 싶었지만, 그때의 현실은 20대 초반 가페 경력이 없는 남자에게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남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고, 그래서 들어간 곳이 PC방이었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생각 이상으로 힘든 일이었다. 게임도 잘 모르는 내겐 낯선 환경이었고, 거기서 나는 주문을 받고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고 컴퓨터 문제도 해결해야 했다. 하루에 몇 시간씩 쉬지 않고 뛰어다녀야 했고, 어느 날은 말없이 무너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거기서 2개월 이상 버틴 사람은 극소수였다. 고되긴 했지만, 돌아보면 그 시간은 분명 나를 단련시켰다. 몸이 먼저 지치기 전에 마음부터 단단해져야 하는 일이 있다는 걸 그때 처음 배웠다.


복학을 앞두고, 내 손엔 처음으로 ‘내가 번’ 목돈이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이제 하고 싶은 일을 해보자. 그러곤 야간학교 교사에 도전했다. 유퀴즈에 출연한 야간학교 교사님의 이야기를 보고,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이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실제 현장은 내가 상상한 모습과는 조금 달랐다. 교육보다는 관계가 우선이었고,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과는 다른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2주 만에 그만두었다.


그즈음 자취방 근처에서 수학 강사를 구한다는 학원 공고를 봤다. 지원했고, 바로 일하게 됐다. 예상치 못하게 충동적으로 선택한 그곳에서의 시간은 내 20대 초반을 가장 충만하게 채워줬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건 기쁘고 보람 있는 일이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하고 진심을 다하면, 학생들은 그걸 고스란히 받아줬다. 학생들의 질문을 받느라 퇴근시간을 넘기는 일이 다반사였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분명 나는 보수를 받으며 일을 하는 것이지만,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냥 그 순간이 대체로 즐거웠다. 그리고 원장님도 그런 노력을 좋게 봐주셨고, 덕분에 또래에 비해 좋은 보수를 받을 수 있었다. 자립한 삶이 단순히 ‘버티는 일’이 아니라, 충분히 ‘누릴 수 있는 삶’이 될 수 있음을 그때 처음 느꼈다.


이후 연구실 생활과 함께 학원 일은 자연스레 정리하게 되었고, 지금은 연구실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그 이후로 학기 중에도 짬을 내어 과외를 병행다가 현재는 연구실에만 몰두를 하고 있다. 때론 너무 바빠 숨이 턱턱 막히지만, 이상하게도 불행하진 않다. 누군가의 도움이 아니라, 온전히 내 손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실감은 자주 나를 일으켜 세워줬다. 그 감각은 피곤함보다 더 오래갔다.


다시 마루야마 겐지의 말을 빌리자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삶을 알지 못한 채 남이 정해놓은 길을 따라 걷다가,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때는 이미 늦은 경우가 많다.” 나는 아직도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이 뭔지 선명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하지만 적어도 남이 정해준 길이 아닌, 나 스스로 고른 길 위에 있다는 확신이 있다. 길이 험하든, 때로는 돌아가든, 그래도 그건 내 선택이었다는 사실이 내겐 비빌 언덕이었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살다 보면 '독립'이라는 말 자체가 종종 과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어떻게 보면 조금은 오만한 말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도 완전히 혼자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의 어떤 시기에는, 무언가를 '내 몫으로 받아들이는 감각'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믿는다. 힘들어도 견뎌내야 할 고유의 무게. 그 무게를 알아본 후부터는, 나는 나 자신에게 조금 더 정직해졌다.


지금도 나는 그 과정을 계속 살아가고 있다. 다 끝난 이야기가 아니라, 여전히 이어지는 이야기다. 어떤 하루는 자립을 이룬 듯 느껴지고, 어떤 하루는 다시 흔들리며 돌아서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택한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언젠가 이 시간들 위에, 내 인생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쌓여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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