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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사전] - 나쁘다

by 늘푸른

받고 싶지 않은 질문이다. 태교를 어떻게 했어? 나를 이상한 싸이코 엄마라고 생각하겠지. 대답해 본 적 없다. 내 남편만 아는 사실이다. 태교를 ‘『그것이 알고 싶다』로 했다. 험한 세상에서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방어 기제를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사고는 어떤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런 나쁜 놈을 안 만날 수 있는지 힌트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표창원 프로파일러의 인터뷰 중에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나쁜 행동을 할 때 두려움과 죄책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리고 자기가 적발되었을 때 받게 될 불이익 때문에 일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그런데 사이코패스나 범죄자는 죄책감이나 두려움, 불안감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나쁜 짓에만 집중할 수 있다고 했다. 나쁜 사람들은 남들이 하지 않은 것, 나쁜 것에만 집중하니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거나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내가 감히 나쁜 사람이라고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다. 모든 일은 상대적이다. 누군가에겐 나쁜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그렇게밖에 할 수 없으므로.

시간강사 5년 차쯤, 의욕에 불타오르던 시절이다. 워크숍이다. 한 학기에 한 번 발표를 하는 시간이다. 교수들이 모인 곳에서 과목의 평가 기준에 대해 발표해서 준비하라고 했다. 모유수유를 하면서 일을 할 때라 잠을 쪼개서 책을 찾고 작업해서 카페에 업로드를 했다. 다음 날 발표가 시작되었다. 나보다 10살 많은 여자 강사가 먼저 시작을 했다. ’내가 준비한 거랑 비슷하네, 응? 뭐지?‘ 처음부터 다음 장까지 훑어 봤다. 성과 가로채기. 논문 스틸. 내 발표 차례가 되었다. 기가 막혀서 묻지도 따지지도 못했다. 준비가 덜 되었다는 말만 하고 내려왔다. 내가 속이 좁은 것일까 생각도 해 봤지만 지금 그녀의 나이가 되어 보니 알겠다. 죄책감, 두려움, 불안감 따위 느끼지 않고 살아가는 그녀는 진짜 나쁜 년이라는 것. 난 그 학교에서 다음 학기에 잘렸다.

친구는 나와 같은 결을 갖고 있다. 직장에서는 나와 같은 결을 갖은 사람은 한 명이 있거나 아예 없거나. A 강사는 나에게 말했다. Y를 조심해. 무슨 소리야. 사람이 선입견이 없어야지. 내가 직접 겪어본 것만 믿을 거야. Y 주위에는 늘 사람이 없었다. 그 사람의 나쁜 행동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친절하게 대했다. Y는 나에게 학교 정보도 주고 선물도 줬다. 회식을 하고 난 후, 나에게 말했다. “나는 이런 말 아무한테나 안 해. 선생님이 얘기를 잘 들어주니까 그렇지. 선생님 말하지마.” Y는 나에게 털어놓는 비밀이 점점 많았다. 그럴수록 나는 입을 닫고 그분 옆에서 들어주고 공감했다. 나르시시즘. 그리스 신화에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을 사랑하며 그리워하다가 물에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된 나르키소스라는 미소년의 이름이다. 이런 사람을 만나 본 적 있는가? 자신의 자랑과 동시에 상대방을 낮추는 말들이 이어졌다. “나 연예인 OOO 닮지 않았어?”, “선생님은 자존감이 낮아서 어떡해?”, “선생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일을 하는 거야? 이런 것을 할 수 있어?”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그 사람은 3단계로 사람을 누르기 시작했다. 첫째, 상대방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한다. 둘째,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든다. 셋째,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려고 한다. 가스라이팅의 원조녀다. 자신에 대한 사랑에 빠져서 미쳐서 날뛰는 여자의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상상할 수가 없다. 후배가 들어오면 얘기해 줘야지. Y를 조심해.

’나쁘다’의 끝을 이어가기가 두렵다. 가볍고 즐겁게 쓰고 웃고 싶은데. 이번 주제는 쓰면서도 참 어렵다.

서울대 수의학과를 나온 친구는 수의사를 포기했다. 그리고 양초를 만드는 공방 주인이 되었다. 이유야 있겠지만. 왜 공방일을 시작했는지 묻지 못했다. 사실 수의사 일을 왜 안 하는지 더 궁금했다. “애들을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다시는 마주하지 못하겠어. 난 자신이 없어.”

겨울 방학, 딸과 애묘 카페에 다녀왔다. 고양이가 울고 있다. 간식을 많이 먹어서 통통해야 하는데 상태가 영 아니다. 슬퍼 보인다. 사장은 유기묘를 돌볼 목적으로 카페를 운영한다고 했다. 수익금으로 유기묘 밥을 주고 치료를 한댄다. 너무 수고하신다고대단하다고 말씀드렸다. 고양이를 놓고 왔으니 봐 달라는 전화가 자주 온다고 했다. 누가 이렇게 버리고 갔을까. 누가 이렇게 아프게 했을까. 길고양이 밥에 농약을 타서 3마리가 죽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쁘다. 하지만 악 뒤엔 선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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