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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깜냥깜냥 Nov 16. 2020

마지막 가을

written by 강 세화




학기 중에 나는 충청남도 태안, 학교 기숙사에 산다. 정확히는 ‘태안캠퍼스’에 산다. 본 캠퍼스는 서산에 있다. 근로든지, 일이 있을 때면 통학 버스를 타고 종종 본 캠퍼스로 간다. 본캠으로 나가는 뻥 뚫린 길에는 바다도 있고 넓은 평야도 있다. 근데 사실 그 평야가 원래는 땅이 아니었단다.


 혹시 서산 간척지라고 들어봤는가?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이 1970년대에 거대한 배로 바닷물을 막고, 무려 4,660만 평에 달하는 공간을 모두 매립해 만들어낸 간척지, 내가 본 평야가 바로 그것이다. 봄과 여름에는 트랙터가 논과 밭을 가르며 푸르른 곡식들을 키워내다 가을에 추수를 마치고 나면, 텅텅 빈 평야 위에 마시멜로처럼 생긴 짚단(베일 사일리지)이 귀엽게 서 있다. 요즘 내가 보는 풍경이 그러하다. 한 가지 특징이 있다면, 그 평야 위로 찾아오는 손님이 있다는 것. 바로 철새다.


 넓은 땅, 땅이 넓은 만큼 추수 후 남겨진 곡식들, 중간중간 자리한 호수, 내륙지방에 비해 높은 온도까지, 서산 간척지는 철새 도래지로 완벽한 장소이다. 실제로 멸종위기종을 포함한 수많은 철새가 이곳을 지나쳐 세계인이 찾는 탐조 관광지가 되었다. 본격적으로 탐조대까지 만들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 철새가 찾아오지 않는 날이 오겠구나.



 철새가 이동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추위나 더위를 피하고자, 또는 번식을 하기 위해 본인들의 습성에 알맞고 먹잇감이 풍부한 장소를 찾기 위함이다. 개체마다 그 시기와 장소는 다양하다. 남쪽 더운 지방에서 시원한 곳을 찾아 올라온 여름 철새도 있고, 북쪽 추운 곳에서 따듯한 곳을 찾아 내려오는 겨울 철새도 있다. 그러나 지구온난화 때문에 그 시기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더 빨리 추워지고 더 빨리 더워지기 때문이다. 봄과 가을이 사라지고 여름과 겨울만이 존재하는, 계절의 양극화다.


 영국 애든버러대학의 우수이 타쿠지 박사 연구팀은 온도가 1도 오를 때마다 철새들이 여름 서식지에 평균 하루 일찍 도착한다는 결과를 발표했다.(1) 겨울 철새도 마찬가지로 시기에 변화가 이루어진다. 문제점은 종에 따라 온도에 영향을 받는 정도의 차이가 있어 어떤 종은 하루보다 더 빠르게, 어떤 종은 늦게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종이 한 서식지에 도래하는 분포에 변화가 일어나면서 철새들이 먹이를 찾고 둥지를 틀 수 있는 최적의 시기를 놓칠 수 있다. 종래에는 새끼들의 번식 시기와 생존 가능성까지 영향을 받는다. 분명 좋지 않은 일이다.


 지구온난화에 따라 변화하는 건 철새들뿐만이 아니다. 사람에 따라 다소 징그러울 수 있는 이야기를 할 테니 읽는 것에 주의해 주길 바란다. 나는 벌레, 특히 절지류를 혐오 수준으로 무척, 정말 싫어한다. 그런 고로, 친오빠가 대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호주를 그렇게나 칭찬하고 꼭 가보라고 했는데도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거대한 벌레들 때문에. 무슨, 거미가 주먹보다 크다나. 바퀴벌레 한 마리에도 벌벌 떨고 무서워하는 사람이 난데 어떻게 그곳에 가서 살 수 있을까.


 그러나 어쩌면 호주가 아니라 한국에도 곧 큰 벌레들이 득실거릴지도 모른다. 계절이 여름과 겨울뿐일 경우, 특히나 겨울이 춥지 않고 여름이 길어질 경우 벌레의 크기는 더욱 커질뿐더러, 그 개체 수도 급증한다고 한다. 겨울의 추위 속에 죽어야 하는 알들이 따뜻한 겨울을 지나 봄에 모두 부화해버리기 때문이다. 올여름 뉴스에서 내내 언급되었던 매미나방이 대표적인 예시이다. 해충에 몸서리치던 사람들의 인터뷰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불만이 잔뜩 섞인 인터뷰는 곧  인류 모두의 고충이 될 수도 있다.


 개체 수 조절의 역할을 하던 계절이 위태로워지면서 생태계 균형도 같이 흔들리게 되었다. 환경이니 지구니 멀리 볼 것도 없이 인간의 일상 하나만 놓고 보고도 많은 것이 바뀐다. 그것은 비단 해충과 관련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한편 올해 겨울은 또 굉장히 빠르고 강하게 찾아왔다. “뭐야, 지구온난화라면서요?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천만의 말씀이다. 수평을 유지하던 저울이 한 번 흔들리면 급하게 요동치는 것과 같다. 계절의 변화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부터가 자연의 경고라고 생각할 수 있다. 기후가 바뀌는 것은 어떤 주기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그 수치가 이제는 한계에 가까워져 왔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자는 인류, 우리임에 틀림이 없다. 지구의 입장에서 우리는 늘 전례 없는 이변을 들고 온 해로운 존재들이었다. 이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이상 이것을 알고도 모른 척, 지나가 버리면 너무 무책임하고 위험하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요즘 동물권과 환경을 보호하는, 비거니즘에 관심을 두고 있다. 대체 지구온난화와 비건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답은 지구온난화와 메탄의 관계성에 있다. 소 한 마리가 하루에 배출하는 메탄가스의 양은 약 600L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0년 2/4분기 가축 동향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한우는 333만 마리.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가 하루에만 약 20억 L에 달하는 셈이다. 그런데 축산업이 이들뿐인가? 육류로 섭취하는 소에, 젖소, 돼지, 양 등등을 합하면, 그리고 전 세계의 농장들을 합하면, 또 그게 1년 365일 동안 이 지구 대기를 채운다면 그 양은 가히 천문학적이다.


 나는 아직은 입문자의 ‘ㅇ’도 시작하지 못한 사람이지만 정말 조금씩이나마 이 축산업의 수요에서, 환경오염에서 멀어져 보고자 한다. 너무 질색하지는 말아줬으면 좋겠다. 물론 지향점은 완벽한 채식에 가까워짐이 맞겠지만, 비거니즘을 지향한다고 모두 풀만 먹는 비건이 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비거니즘을 지향하는데 비건이 될 필요가 없다고? 채식은 채소, 유제품, 계란, 어류, 닭고기, 붉은 고기의 선택 범주에 따라 그 형태가 굉장히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 플렉시테리언이 되는 것을 제안한다.


플렉시테리언은 기본적으로 채식주의를 지향하지만, 회식처럼 육식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설정한 허용범위 안에서 육류를 먹는 경우이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하자면 대부분의 축산업은 공장식 축산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농장에 갇혀 자라나는 동물들은 그들이 생명체로 갖는 기본적인 욕구, 그리고 습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인간에게 제공할 살덩이만을 위해 태어나고 죽는다. 앞서 잠깐 얘기했듯이 비거니즘은 동물권 보호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공장식 농장에서 생산된 육류만 먹지 않는 것도 플렉시테리언의 범주에 속한다. 처음엔 이 범주에 속해 보는 것이 어떨까.


중요한 것은, 당신이 어떤 범주에 속하기를 택하든 간에 최선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나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꼭 채식이 아니더라도 지구온난화를 막는 방법은 다양하다. 게다가 우리가 모두 아는 상식선의 이야기다. 간단하게는 분리수거에서, 일회용품이 아닌 스테인리스 빨대나 텀블러와 같은 리유저블 제품을 사용하는 것. 최소한의 소비를 지향할 것, 그리고 낭비하지 않을 것. 당연한 것들이다.



환경오염, 그리고 지구온난화에 대한 해결을 다음 세대에게 떠넘길 수 있는 것도 한계점에 다다랐고, 이제는 우리 코앞에 바짝 다가와 있다. 우리 인류는 아직 '운 좋게' 일상을 살아갈 뿐, 휘청거리는 자연에 언제 휩쓸려 사라질지 모른다. 가을이 사라질 때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철새처럼 멸종할 수도, 또는 거대해진 벌레들이 인간의 공간에 침투하는 것처럼 우리의 터전이 잠식되어버릴 수도 있다. 큰 해일과 같은 재난에 먹혀버릴 수도, 또는 알 수 없는 질병에 고통받으며 사라질 수도 있다. 문제점과 자연의 경고를 명백히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을 해결할 수는 없되 적어도 나쁜 쪽에 힘을 보태서는 안 된다.


우리는 지금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게 되지 않는 아픔을 모두 함께 겪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나의 노력에 동참해주기를 조심스럽게, 또 강하게 권고한다. 가을이 사라지고 더 이상 철새들이 날아들지 않는 땅이 되지 않도록, 훗날 오늘을 돌이켜 봤을 때에 당연히 찾아왔던 가을이 마지막 가을이 되지 않도록. 우리가 계속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다.



    ⑴ Takuzi Usui, 『 Temporal shifts and temperature sensitivity of avian spring migratory phenology: a phylogenetic meta‐analysis(2016.11.18』



____ 강세화 glorysehw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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