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유명 토크쇼 프로그램에 정신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출연해 정신과 및 ‘정신과 약’에 대한 편견을 언급한 것을 봤다. 그는 “환자 분들이 정신과는 정말 많이 고민하고 오신다”며 “용기를 내어 병원에 방문하더라도 약 봉투나 결제 내역을 보고 진료를 받으러 가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사람들이 ‘내과 약’이라고는 안 하지만, ‘정신과 약’이라고는 자주 이야기한다”고 덧붙이며 아직도 만연해 있는 편견을 깨야 함을 강조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앞서 언급했듯 나 역시 한때 ‘정신과는 정말 심각한 상황에 처한 사람만 가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 보니 아니었다. 거긴 그냥 ‘내가 아프다 느낄 때 찾아가는 곳’이었다.
내 안의 편견은 모두 깨졌지만, 정신과에 대한 다른 이들의 생각은 아직 여전하다. 물론 예전보다는 문턱이 낮아졌다고들 한다. 하지만 여전히 정신과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운 편이다.
작년 가을, 태어나 처음으로 정신과에 진료를 받으러 갔다. 쉼 없이 달리기만 해서 그런지,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있었다.
어렴풋이 진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어쩐지 선뜻 병원을 예약할 수가 없었다. 그때 까지만 해도 정신과 병원에 대한 편견이 내 안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너무 유난 떠는 것은 아닐까’, ‘주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등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어렵게 마음을 먹고 병원에 방문했다. 심리 검사 문항에 체크하고, 교감 신경과 부교감 신경 검사를 했다. 누군가에게 그렇게 날것의 생각을 드러내 본 적이 없는 데다 이런저런 고민 때문에 상당히 긴장했다.
몇 번 진료를 받고, 약을 타 보니 병원에 대한 편견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긴 특별한 곳이 아니라, 치과나 내과처럼 스스로 아프다고 느낄 때 방문하는 병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주변 몇몇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평소 ‘네가 정신과를 왜 가’, ‘거긴 더 심각한 사람만 가는 곳이야’ 등의 말을 서슴없이 하는 지인들을 만날 때 나는 병원 방문 사실이나 약 봉투를 숨기곤 했다. 그러면서 조금 억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난 달 발간된 ‘2019년 건강보험통계연보’를 보니, 재작년 대비 작년에 정신의학과 의료기관을 방문한 환자 수가 6.5% 증가했다고 한다. 병원 방문율은 늘어나는데, 안타깝게도 정신의학과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은 상당히 더디게 변화하고 있다.
나는 한국이 정신과와 정신 질환에 대한 의미 있는 대화가 오가는 곳이 되었으면 한다. 증상 자체도 위험하지만, 더욱 아픈 건 편견과 낙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았으면 한다. 단순히 증상을 숨기게 할 뿐 아니라 치유를 위한 골든 타임을 놓치게 한다는 것을 말이다. 내과, 정형외과, 치과에 다녀온 사람은 ‘나약한 사람’이라고 낙인 찍지 않는데, 정신과에 다녀온 사람은 왜 ‘나약한 사람’으로 낙인 찍느냐고 되묻고 싶기도 하다. 그저 똑같이 ‘아픈 사람’일 뿐인데. 배가 아프고, 이가 아픈 사람처럼.
언제쯤 병원 방문 기록을 걱정하지 않게 될까. 언제쯤 주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약한 사람’이라는 낙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까. 나는 한국이 이제 정말 변화해야 한다고 본다. 편견과 조롱 없이, 진심으로 귀를 기울이는 성숙한 사회가 되기를. 오늘도 소망해 본다.
____ 범쥬 its.me.boms@gmail.com